"비닐 충전재 퇴출" 외친 아마존... '아마존 살리는' 아마존 될까 [찐밸리 이야기]

이서희 2024. 7. 2. 0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1> '환경 파괴범' 아마존의 변신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 과다" 지적에
비닐 충전재, 북미서 종이로 대체키로
전문가 "플라스틱 포장재 모두 없애야"
편집자주
내로라하는 기술 대기업이 태동한 '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거주민 중 흑인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화려한 이름에 가려진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얼굴을 '찐밸리 이야기'에서 만나 보세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올해 말까지 북미 지역에서 제품 배송에 쓰이는 비닐 공기 충전재(왼쪽 사진)를 종이 충전재(오른쪽)로 모두 대체하겠다고 지난달 20일 발표했다. 아마존 제공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아마존에서 전날 주문한 휴대용 배터리가 집 앞에 도착했다. 아마존 박스를 집어서 둘레를 감싸고 있는 종이 테이프를 제거하자, 배터리보다도 큰 종이 충전재가 눈에 띄었다. 몇 주 전만 해도 공기가 빵빵하게 채워진 비닐 소재 충전재가 들어 있던 자리다.

100% 재활용 소재만을 활용해 제작했다는 종이 충전재는 일반 복사 용지보다 훨씬 빳빳하고 두꺼웠다. 직접 만져 보기 전에는 '비닐 충전재만큼 내용물을 잘 지켜주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으나, 이는 너무 오랜 기간 비닐 충전재에 익숙해 있던 탓에 갖게 된 기우였음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존에 따르면 종이 충전재는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반면, 비닐 충전재의 경우 충격을 튕겨 내 오히려 보호해야 할 제품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 비닐 충전재는 압력이 가해지면 터질 가능성이 있지만 종이는 이를 이겨 내면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기자가 아마존에서 주문한 휴대용 배터리가 종이 충전재와 함께 배송 상자에 들어 있다. 아마존은 북미 지역의 모든 배송에서 올 연말까지 비닐 공기 충전재를 없애고 종이 충전재를 사용할 계획이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아마존이 이날 함께 배달한 종이 충전재는 앞으로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지역의 모든 주문 건에 적용될 친환경 소재다. 아마존은 지난달 20일 "북미 지역 배송에 사용되던 비닐 공기 충전재의 95%를 종이로 대체했으며, 연말까지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는 아마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아마존은 "이를 통해 연간 약 150억 개의 비닐 공기 충전재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창사(1994년) 이래 시행된 플라스틱 포장 감축 노력 중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종이 충전재 도입 자체가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체가 아마존이기 때문에 그 의미도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2022년 미국에서만 47억9,000만 건의 배송을 완료했다. 하루 평균 약 1,310만 건, 분당 9,100여 건을 처리한 셈이다. 아마존의 작은 조치 하나가 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음은 물론, 사회 전체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올해 말까지 북미 지역에서 제품 배송에 쓰이는 비닐 공기 충전재를 종이 충전재로 모두 대체하겠다고 지난달 20일 발표했다. 아마존 제공

"아마존, 연간 지구 200바퀴 비닐 충전재 써"

지난 수년간 아마존에는 '세계 최악의 환경 파괴범'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엄청난 사업과 매출 규모에 비해서 환경 보호에 들이는 노력은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아마존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 아마존(남아메리카 열대우림)에 가장 큰 해를 입히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명을 바꿔야 한다는 운동까지 일었다.

아마존이 주는 편리함에 가려 있던 '환경에 대한 해악'이 본격적으로 미국 소비자의 관심을 받게된 것은 2020년부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 쇼핑이 전례 없이 성행하면서 아마존이 역대 최고 수준 매출을 올리던 그 해, 환경보호단체 오세아나는 아마존이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는지 추정치를 계산해 공개했다.

오세아나에 따르면 아마존은 2021년, 전년도 추정치보다 9.5%가량 많은 약 2억800만 파운드(약 1억9,000만㎏)의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을 발생시켰다. 특히 비닐 충전재 사용량이 너무 많았다. 한 해 동안 쓰인 비닐 충전재만으로 지구를 200번 이상 돌 수 있을 정도라고 단체는 지적했다. 아마존이 배출한 폐기물 중 약 10%는 바다와 강 등에 유입될 것으로도 추정됐다. 오세아나는 "플라스틱은 해양 환경에 유입될 때 생물 다양성에 막대한 해를 끼친다"며 "바다거북 같은 동물들은 아마존이 쓰는 비닐 등을 음식으로 착각해 섭취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석과 더불어 오세아나는 아마존에 대해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폐기물을 충분히 줄일 수 있음에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환경 소재 활용을 법제화한 독일, 영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아마존과 대비한 것이다.

해당 발표는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 아마존 주주는 사측을 향해 '배송 포장에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쓰고 있는지 정확히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플라스틱 폐기물 탓에 기업 평판이 손상되고 환경 영향 상쇄 비용, 규제 등으로 더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였다. 주주들 주도하에 '플라스틱 사용 재고안'이 2022년 아마존 주주총회 안건으로 오르기도 했다. 결과는 부결이었지만, 이 역시 가까스로 51%를 얻는 데 그쳐 도리어 환경 보호 필요성을 부각시켰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한 아마존 배송 센터에서 직원이 배송용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직원 옆에 아마존이 올해 말까지 북미 지역에 전면 도입할 예정인 종이 충전재가 쌓여 있다. 아마존 제공

플라스틱 '제로(0)' 배송 센터 짓고, AI 활용도

여론 악화에다 주주 반발까지 맞닥뜨린 아마존은 이때부터 미국에서 친환경 행보를 눈에 띄게 늘리기 시작했다. 당장 2022년 말 처음으로 그 해 전 세계 배송에 8만5,900톤의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오하이오 배송 센터를 '플라스틱 제로(0) 센터'로 개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은 상품이 배송 센터에 도착하면, 이른바 '비전 터널'을 먼저 통과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AI는 상품의 품목과 크기 등을 파악하고, 제품에 대한 자체 데이터와 그간의 배송 데이터, 이용자들의 피드백 등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포장 방식을 찾아낸다. 청바지 같은 의류에는 별도 충전재 없이 종이 봉투 포장을, 깨질 위험이 있는 그릇은 종이 충전재를 가득 넣으라고 각각 권하는 식이다. 이는 파손 없는 배송을 위한 것이기도 하나, 과잉 포장을 막는 효과도 낸다. 아마존 측은 "AI는 매년 200만 톤이 넘는 과잉 포장재를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AI 도입 전에도 사람이 같은 작업을 했었지만, AI만큼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존의 지속 가능한 배송 전략을 총괄하는 패트 린드너 부사장은 "(비닐 충전재 퇴출의) 다음 단계로 비닐 우편봉투 퇴출을 구상 중"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비닐 우편봉투는 이른바 '뽁뽁이'라고 불리는 공기 충전재가 붙어 있는 얇은 봉투 형태로, 현재 북미 지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아마존 포장재다. 이 역시 종이 소재 봉투로 100% 대체하는 것이 아마존의 목표라고 한다.

아마존의 배송 방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온 미국 소비자단체 공익연구그룹(PIRG)의 세레스트 마이프렌 스완고 디렉터. 스완고는 지난달 2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의 일관된 행동을 이끌어내려면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아마존이 움직이면 다른 회사들도 따라갈 것이고, 개별 기업들의 조치가 모여 더 깨끗한 공기, 공원, 거리, 바다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완고 디렉터 제공

전문가의 일침 "아마존, 아직 환경 위해 할 일 많아"

연말까지 비닐 충전재를 없애겠다는 아마존의 발표는 환경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아마존의 배송 방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온 미국 소비자단체 공익연구그룹(PIRG)의 세레스트 마이프렌 스완고 디렉터는 "아마존은 그간 플라스틱 소재 포장 도구를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만 했을 뿐, 명확한 일정은 제시한 적이 없다"며 "그런 점에서 최근의 약속은 올바른 방향으로 평가할 만하고, 업계 전반에 낭비적인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게 스완고 디렉터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재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한 구체적 이행 일정을 설정하고, 플라스틱 필름 같은 부수적인 일회용 포장재도 모두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PIRG에 따르면 아마존은 플라스틱 포장재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대부분 포장재는 재활용되지 않고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직행한다고 한다. 이를 감안할 때 "아마존의 궁극적 목표는 플라스틱 자체를 전혀 쓰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스완고 디렉터는 아마존의 일관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수년에 걸쳐 아마존에 '플라스틱 충전재를 없애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아마존의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아마존이 움직이면 다른 회사들도 따라갈 것이고, 개별 기업의 조치가 한데 모여 더 깨끗한 공기, 공원, 거리, 바다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