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래 칼럼] 유튜브 공화국

조형래 부국장 2024. 7. 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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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시간 압도적 1위
혐오 편가르기 조장하고
광고·음악·쇼핑 등
시장 독점 갈수록 심화
국내 기업 역차별 불만도
거대 플랫폼 폐해 막을
최소한의 방어막은 있어야
유튜브 로고를 배경으로 한 남성이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인은 이제 유튜브로 뉴스를 본다. 글을 읽는 것보다 영상을 보는 게 편한 데다 마법 같은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 구미에 맞는 콘텐츠만 골라서 보내준다. 내가 민주당 열성 지지자면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 영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한번 빠져들면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게 되는 중독 현상, ‘토끼굴 효과’가 나타난다.

유튜브의 세계에서는 사실(fact)과 다양한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불편한 진실보다는 누가 우리 편이냐가 더 중요하다. 여기에선 대통령을 “무식한 주정뱅이”라고 모욕해도, 야당 대표에게 “칼 맞은 김에 죽지”라고 저주해도 반박하는 사람이 없다. 같은 편끼리만 보는 영상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더 자극적으로, 더 극단적으로 몰아세울수록 박수를 받는다. 이런 콘텐츠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편향성은 갈수록 강해지고 때론 가짜 뉴스가 사실로 둔갑한다.

한국인의 유튜브 중독은 뉴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유튜브 음악을 듣고 점심때는 유튜브 맛집을 찾아다니고 유튜브로 주식·요리 공부를 하고 주말엔 15분~20분짜리 영화 리뷰 영상을 몰아 보는 게 일상이 됐다. 학교 선생님들도 책이 아닌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숙제를 하라고 한다. 한국의 유튜브 월간 사용자는 4547만명.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이 43시간으로 종주국인 미국(24시간)을 크게 앞선다. 토종 메신저 카카오톡(12시간), 네이버(9시간)도 이미 멀찌감치 따돌렸다. 전 국민 플랫폼인 유튜브는 수만 명의 유튜버들이 대박의 꿈을 좇아 쉴 새 없이 올리는 동영상을 기반으로 광고, 디지털 음원, 쇼핑으로 독점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튜브가 한국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데에는 세계 최고의 한국 IT 인프라가 한몫 단단히 했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고 통신 3사가 수십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5G 전국 통신망을 깔아준 덕분에 스마트폰에서도 초고화질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유튜브의 국내 통신망 트래픽 비율은 28.6%로 넷플릭스(5.5%), 메타(페이스북·4.3%) 네이버(1.7%), 카카오(1.1%) 등 경쟁 업체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유튜브는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무기로 국내외 인터넷 기업 중 유일하게 통신망 사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게다가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도 유튜브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진다. 국내 기업들은 정부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형태의 수많은 규제에 시달리지만, 유튜브는 해외 기업이라는 이유로 강제 규정이 아닌 가이드라인을 요리조리 피해간다. 국회 역시 CEO의 국감 증인 채택을 앞세워 국내 기업들은 쥐 잡듯이 잡으면서도 유튜브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숙주(宿主) 역할을 하는 것은 애써 외면한다. 또 유튜브가 광고 없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음원 끼워 팔기를 해 단숨에 국내 디지털 음악 시장을 장악하고, 프리미엄 서비스 가격을 40% 넘게 올려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한 인터넷 기업 임원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튜브에 밀려 망해가는 국내 OTT(동영상 서비스) 4사 대표를 불러 가격 인상 자제를 당부했지만, 정작 가격 인상을 주도한 유튜브나 넷플릭스에는 아무 말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국내 기업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빅테크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유튜브·아마존·알리 등 20여 개 초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해 불법 콘텐츠 유통 방지, 소비자 보호, 경쟁 환경 조성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정한 데 이어 영국·일본도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짜 뉴스나 유해 제품의 온라인 유통에 대해 사용자·생산자 탓 말고 플랫폼 스스로가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해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제어하는 법안 제정에 착수했다가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보류된 상태다. 하지만 시장 경쟁과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독점,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가짜 뉴스 유포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방어막은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면 빅테크가 한국 대통령을 뽑을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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