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금융, 골프, 그리고 책

곽아람 기자 2024. 7.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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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인 지난 26일, 토스 부스에 입장하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곽아람 기자

지난 26일 개막해 30일까지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자본과 책, 자본가와 책, 기업과 책, 혹은 자본과 문화 등을 생각해보게 하는

두 가지 풍경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종합금융플랫폼 ‘토스’가 차린 부스.

토스는 최근 ‘더 머니 북(The Money Book)’이라는 금융생활 안내서를 냈는데,

그 책을 홍보하기 위해 부스 하나를 차렸더군요.

지난 26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 마련된 토스 부스를 구경하고 있는 관람객./곽아람 기자

식료품, 잡화 등에 머니북 홍보 문구를 적어

수퍼마켓처럼 꾸민 이 곳 입구에는 도서전 전체 부스를 통틀어 가장 긴 줄이 서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관람객 각자가 자신만의 머니북을 만들 수 있는 이벤트가 진행중이기 때문이었어요.

부스에 입장한 관람객들은 사회초년생 재테크, 투자, 내집 장만, 노후대비 등

금융 관련 6가지 주제 중 한 가지를 고릅니다.

직원은 관람객이 고른 주제에 대한 머니북 챕터 요약본을 나눠주고

관람객은 리플렛 형식으로 된 이 요약본과

부스 내 비치된 가계부, 영수증, 돈에 관한 금언 등 속지를 골라

바인더로 엮어서 다이어리 같은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겁니다.

지난 26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의 토스 부스에서 '나만의 머니북'을 만들기 위해 속지를 고르고 있는 관람객들./곽아람 기자

사무실로 복귀해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줄은 너무 길고,

그렇지만 이벤트는 궁금하고…

시간이 좀 들더라도 이벤트에 참여할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돌아설지 고민하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벤트에 참여해 보았는데요.

짜잔~~~!

요런 책(이라기보다 다이어리)을 만드는 겁니다.

지난 26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토스 부스에서 만든 '나만의 머니북'../곽아람 기자

바인딩하는 용수철 색깔도 고를 수 있고,

스티커와 스케줄러 속지 등도 고를 수 있는데,

심지어 머니북을 완성해 계산대로 가져가면

도서전을 위해 특별 제작한 쇼핑백에 담아줍니다.

물론 부스 내에선 원본 ‘더 머니 북’을 구매할 수 있고요.

책 한 권 홍보하자고 이렇게 거창한 부스를 차릴 일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역시 자본의 힘이 있으니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첨병이 자본주의 관련 책을 만들어, 자본을 이용해 홍보하는 모습이라니

그간 도서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지요.

이거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긴 줄을 선 젊은 관람객들을 보면서

소위 ‘힙하다’ 라는 건 이런 거구나, 깨닫기도 했습니다.

많은 출판사들이 모객을 위해 여러 굿즈를 준비하는데,

이번 도서전에서 가장 이색적인 굿즈는 토스의 ‘나만의 머니북’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실 출판 담당 기자 입장에서 ‘머니북’은 실용서라

신문 지면에 소개할 만한 책은 아닌데,

대중이 정말로 원하는 책은 우리가 소위 ‘양서’라 부르는 책들 보다는

이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 26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토스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나만의 머니북'을 만들고 있다./곽아람 기자

금융과 책, 금융과 독서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에 대해 생각하다가

도서전 입구에 마련된 또 다른 부스를 보았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인 지난 26일, 코엑스 전시장에 마련된 소전문화재단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곽아람 기자

‘읽는 사람’.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목조 구조물에 이 구호가 커다랗게 적혀 있고,

아래에 조그맣게 ‘소전문화재단 독서 장려 캠페인’이란 설명이 붙어 있더군요.

올해 처음 도서전에 참가한 소전문화재단은 2016년 설립되었습니다.

2020년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문학 전문 도서관 소전서림을 열었고요.

재단 이사장이 스크린 골프 회사인 골프존 창업자라

설립 당시 ‘골프와 독서’라는 이색적인 조합이 화제가 됐습니다.

‘소전(素磚)’은 김원일 이사장의 호라고 하네요.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인 지난 26일 소전문화재단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책을 구경하고 있다. /곽아람 기자

재단이 특히 집중하는 사업은 장편소설 집필 후원입니다.

매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선발해 집필 공간과 창작지원금 등을 제공합니다.

미래의 고전문학을 발굴하겠다며

‘읽는 사람’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회원들을 독려,

‘이달의 소설’을 선정하고요.

강원도 홍천에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를 짓고 있으며,

최근엔 소전서가라는 출판사를 차려

재단 후원으로 탄생한 작품을 소개하는 ‘내일의 고전’ 시리즈를 론칭했습니다,

‘왜 장편소설인가’ 물으니 황보유미 소전서림 관장은 말합니다.

“단편보다 장편이 우리 시대의 면면을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6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관람객들이 문학 관련 퀴즈를 풀고 있다. /곽아람 기자

짧은 콘텐츠가 각광받고, 긴 글은 어렵다며 도외시되는 시대,

긴 호흡의 글을 쓰는 이들을 꾸준히 지원하는 일은 분명 의미 있겠죠.

도서전 부스에선 5월 ‘이달의 소설’인 ‘노인과 바다’와 ‘롤리타’ 관련 퀴즈를 풀면

책 모양 배지를 주는 이벤트가 한창이었고, 입구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소전문화재단의 목표는 ‘사람들이 지극히 좋은 상태에 머물도록 돕는 것’입니다. ‘책 읽기’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고, 다양한 독서 장려 활동과 작가 지원 활동을 진행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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