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닭강정’과 카프카
무한경쟁시대 불안과 우울감
100년 전 카프카의 세계와 닮아
그래서 판타지에 열광하는지도…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다. 닭고기를 튀겨서 끈적한 양념으로 볶아낸 그 닭강정 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의 기이한 상상이다. 크기도 형태도 닭강정 한 조각 그대로다. 그 한 조각을 인간으로 되살리기 위해 아버지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좌충우돌 온갖 소동을 벌인다. 코미디, 미스터리, SF를 넘나들며 기발함과 유치함 사이 외줄을 타지만 끝이 훈훈해서 좋다. 닭강정으로 변했어도 아버지의 사랑은 무한하고 짝사랑남의 진심은 눈물겹다.
작품은 작가를 투영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 완강하고 독선적인 아버지로 인한 억압과 불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나약한 자신에 대한 혐오와 연민에 시달렸다. 한순간 벌레로 변해버린 사내는 짓눌린 그 자아의 그림자다. 다른 시각도 있다. 카프카는 노동보험공단에서 일하며 창작을 병행했다. 소모품처럼 쓰이다 각종 산업재해로 버려지는 노동자들을 보며 그레고르 잠자를 탄생시켰다는 해석이다. 권위적인 아버지로 인한 상처든,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노동 현장에 대한 고발이든 소설 ‘변신’의 키워드가 달라질 건 없다. 그건 바로 ‘쓸모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카프카는 신경쇠약과 폐결핵을 앓다가 1924년 6월, 40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쳤다.
서거 100주년을 맞아 카프카 붐이 일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을 재해석한 책들이 줄지어 출판되고 전시와 낭독회, 강연 등의 행사가 이어지는 중이다. 카프카의 이름은 그 자체로 형용사가 되어 사전에 올라와 있다. 암울하고 부조리한, 초현실적인 왜곡에 짓눌린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 ‘카프카에스크(Kafkaesque, 카프카적인)’다. 뜻 그대로 그의 작품은 기이하고 난해하다. 하지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한경쟁의 시대, 자칫 사회의 ‘기생충’으로 도태될 수도 있다는 불안과 우울이 100년 전 떠난 작가를 자꾸만 소환한다.
‘닭강정’의 부성애에 감동하고 ‘바퀴벌레 밈’으로 위로받는 청년들은 그나마 나은 형편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님만큼은 자신을 사랑하고 감싸줄 거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상상이고 놀이기 때문이다. 반면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는 이 땅의 가장들은 같은 질문을 입에 올리기조차 두렵다. “내가 만약 바퀴벌레가 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면”이라는 질문에 가족은, 이 비정한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상상은 곧 카프카가 상정한 실존적 공포로 직결된다.
196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연령을 맞으며 썰물처럼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중인 860만명에 달한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으면 ‘삼식이’라거나 아내에게 손찌검을 당한 이유가 ‘눈앞에서 얼쩡거리다가’라는 식의 우스갯소리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 이들을 두고 ‘마처세대’라고도 한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고령의 부모와 아직 자립하지 못한 자녀를 모두 돌보고 있다. 마음 편히 바퀴벌레가 될 수도 없다.
아무리 걷고 뛰어도 발이 앞으로 나가지 않거나 미로 같은 길을 끝없이 헤매는 악몽을 꾼 기억이 있을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런 악몽에 발이 묶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의 책이 거듭 읽히고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는 건 물질주의에 물든 현대사회가 그런 악몽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쓸모를 다하는 순간 가차 없이 내쳐지는 삶의 불안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다. 드라마 ‘닭강정’은 판타지지만 카프카의 ‘변신’은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인 문학’인 이유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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