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면은 여백에 스미고, 여백은 색면을 품어 안는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2024. 7. 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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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고요한 울림의 화면
‘天地門’을 작업의 명제로 삼은 단색화
땅의 茶色·하늘의 靑色 ‘하나의 몸’ 이뤄
“시처럼 외마디 소리에 담는” 회화 추구
필묵 연상 붓질과 여백 포용하는 구성
화면에 녹아든 동양 미학과 정신 암시

◆고요한 울림의 화면

윤형근(1928∼2007)은 자신이 “잔소리를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고 했다. 땅의 다색(茶色)과 하늘의 청색(靑色)을 크게 개어 물들인 획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한 음절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화면에 스민 물감의 자취는 사사로운 소음을 지운 침묵 가운데 고요하게 번지는 거대한 울림에 다름없다.
윤형근, ‘Burnt Umber & Ultramarine’(번트 엄버 앤드 울트라마린)(1981) PKM갤러리 제공
윤형근은 1970년대 한국 화단의 주류를 이룬 ‘단색화’의 흐름 속에서 주요하게 호명되는 작가다. 그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빛깔로 문과 같은 형상을 그려 두었다는 의미로서 ‘천지문(天地門)’을 작업의 명제로 삼았다. 각 화면은 바닥에 천을 펼친 뒤 넓은 붓으로 다색의 획을 긋고, 다시금 청색의 획을 덧칠하기를 반복한 결과물이다. 더디게 마르는 유채 물감은 서로 스미고, 번지고, 뒤섞이다 이내 먹처럼 검은 빛깔을 띠게 된다. 물감의 농도와 그리는 힘의 세기, 붓의 크기와 반복의 횟수에 따라 획은 매번 다른 번짐의 흔적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땅과 하늘은 나뉜 경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도록 모호하게 합일된다.

지난달 29일 서울 PKM갤러리에서 막을 내린 전시 ‘윤형근/파리/윤형근’은 그의 생애 두 번에 걸친 파리 체류 시기에 주목했다. 각각 1980년대 초와 2000년대 초에 제작된 화면을 전시 공간 안에 병치하여 20여년의 시차 간 변화의 궤적을 살피고자 한 의도다. 전시에서는 첫 번째 파리 시기 한지에 그린 비교적 작은 규모의 연작과 두 번째 파리 시기 대형 캔버스로 옮겨온 과감한 표현의 결과물을 두루 선보였다. 유채 물감을 일관된 재료로 취하고 있음에도, 양 시기 화면은 서로 다른 지지체에 투영된 획의 다름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전자의 획은 한지를 바탕 삼아 번짐의 효과를 극도로 강조한다. 짙은 곳에서 옅은 자리를 향해 말갛게 퍼져 나가는 물감의 궤적이 먹의 농담을 연상시킨다. 1980년대 초 윤형근은 물감과 바탕재 사이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데 천착했다. 색면(色面)과 여백 사이의 탄력과 긴장을 주제로 삼는 한편 기둥 간 관계를 재설정하여 문의 형상을 이루던 구도로부터 벗어나는 등 표현 및 구성상의 실험을 거듭했다.

한편 후자의 대형 캔버스 화면에서는 밑작업을 하지 않은 리넨 천 위에 덧입힌 두꺼운 획의 물성이 강직하게 드러난다. 윤형근은 1990년대 이후 기법의 변화를 통하여 획의 번짐을 의도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2002년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에 대해 “마지못해 번지는 것이 오히려 긴장감도 오고 간결해져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라 화면은 한층 단정한 모습을 띠며, 다색과 청색이 더욱 확신에 찬 기세로서 뚜렷한 하나의 몸을 이루게 됐다.
‘윤형근/파리/윤형근’(2024) PKM 갤러리 전시 전경. 좌측은 1980년대 초, 우측은 2000년대 초의 작품. PKM갤러리 제공
◆여백, 무한한 생성의 장

붓이 지나지 않은 자리에는 묵직한 여백이 놓인다. 미술평론가 이일(1932∼1997)은 한국의 단색화가 ‘정신적 차원에서의 자기 환원’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모노크롬과 구별된다고 했다. 그는 1975년도에 쓴 윤형근 회화론에 ‘텍스처로서의 여백’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색면과 여백이 단지 채움과 비움의 대비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양자가 동질의 공간성을 지닌다는 의미를 함축한 표현이다. 색면은 여백에 스미고, 여백은 색면을 품어 안는다.

미술평론가 오광수(1938∼)는 윤형근의 작품으로부터 행위를 무위로, 물질을 정신으로 환원시키는 단색화 특유의 기조를 보았다. 나아가 그의 회화가 무위자연의 태도로 자연을 대하는 노자의 도(道) 개념과 맞닿아 있음을 역설했다. 윤형근의 화면 속 채움과 비움의 공존은 모든 형상을 무위의 상태로 돌려놓으며 명상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필묵을 연상시키는 붓질과 여백을 포용하는 화면 구성은 그의 화면에 녹아든 동양 미학 및 정신을 암시한다.

윤형근은 화면 속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시처럼 외마디 소리에 담을 수 있는” 회화를 추구하였다. 시어의 운율을 가다듬듯 색면과 여백의 관계를 조율하며, 발화와 침묵의 언어를 동등하게 중요시하는 태도로서다. 그의 화면 속 여백은 채워진 면적에 하릴없이 침식당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무한의 공간을 향하여 열려 있다. 구체적인 물질이나 현상으로서 드러나기 이전의 원초적 상태로서, 그 모든 것을 탄생시키기 위한 최초의 근원이자 가능태로서 말이다.

윤형근은 195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1962년 ‘앙가주망전’(중앙공보관)을 통하여 한국 화단에 등단했다. 1966년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상파울루 비엔날레’(1969, 1975), ‘카뉴국제회화제’(1976), ‘파리국제현대미술제’(1978) 등 당대 주요 국제전 및 ‘앙데팡당’, ‘에꼴 드 서울’을 포함한 주요 국내전에 참여했고 1978년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1990년 제1회 김수근 문화상(미술 부문)을 수상했다. 1992년 영국 런던 테이트 리버풀의 단체전에 출품했고 1993년 뉴욕 소호의 도널드 저드 파운데이션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1994년에는 텍사스 마파의 치나티 파운데이션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1995년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단색화에 대한 재조명 시도가 본격화된 2010년대 중반 이후 블럼앤드포 갤러리(뉴욕 2015), 사이먼 리 갤러리(런던 2016, 2018), 데이비드 즈워너(뉴욕 2017, 2020, 파리 2023), 국립현대미술관(서울 2018), 포르투니 미술관(베네치아 2019), 헤이스팅스 컨템퍼러리(헤이스팅스, 영국 2023)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이 그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전속화랑인 PKM갤러리가 그의 개인전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현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을 맞아 베네치아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진행 중인 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4월19일∼9월8일)에서도 윤형근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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