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수도권 언론의 가덕도신공항 때리기

강필희 기자 2024. 7.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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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유찰에 일제히 ‘무용론’…본궤도 올랐으나 딴지 여전
지방의 눈·머리로 고민해야 중앙 일변도 시각 견제 가능

고질병이 또 도졌다. 서울에 본사를 둔 수도권 언론의 가덕도신공항 발목 잡기다. 10조5000억 원짜리 부지 공사 입찰에서 1차 땐 응찰 기업이 없었고 2차에 겨우 한 곳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 벌떼처럼 일어났다. 주장은 한결 같다. 수요가 확실하지 않은 공항을 ‘정치 포퓰리즘’ 때문에 무리하게 추진하다 사달이 났다는 식이다. 이들은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가 물 건너 갔으니 2029년 12월 개항이라는 목표를 늦추라”고 요구한다. 말은 점잖게 ‘속도 조절론’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백지화되기를 바라는 심보일 것이다.

가덕도신공항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사업도 없다. 그 핵심 이유가 정치에 있음도 맞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선거철만 되면 단골 이슈로 떠올랐고 선거가 끝나면 좌초되기를 반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산 시민이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했나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선거전에서 공항은 표심에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었다. ‘떡 하나 주면 찍어줄 것’이라는 전제는 부산 민도를 얕잡아 본 모독이나 다름 없다.

가덕도신공항은 부산 울산 경남(PK) 주민의 현실적인 필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은 지 50년이 다 된 김해공항은 여객과 화물 처리용량이 포화에 이른 지 오래다. 이대로는 연 10% 이상 증가세인 수요를 감당 못한다. 비행기 타려고 인천까지 가야 하는 비용과 불편은 엄청나다. 2002년 중국 민항기 추락 같은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비행기 착륙 지점에 솟아 있는 돗대산을 깎거나 공항을 이전해야 한다. 장애물 없이 안전하고, 운영시간과 중장거리 노선 제한 없고, 미래 확장성이 보장되는 새로운 공항이 절실했던 근거다.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그로 인해 완성될 ‘물류 트라이포트(공항 항만 철도)’는 바닥 모르고 추락 중인 부산 경제의 디딤돌이 되어 주기 바라는 PK의 소망이 담겨 있다. ‘고추나 말리는 공항’이라는 희화화 속에는 이런 절박함에 대한 이해가 없다.

가덕도 딴지 걸기는 지방을 바라보는 중앙적 시선의 일단에 불과하다. 인력과 자본이 모여있는 서울이나 경기권에 뭔가를 짓는 행위는 합리적인 투자고, 지방에 쓰는 건 세금 낭비라는 시각이다. 이것이 수도권에는 광역급행철도(GTX)를 6개 노선이나 놓으면서 지방에는 출퇴근용 전동열차 투입에 국비 한 푼 보태줄 수 없다고 정부가 버티는 이유다. 그 지역에서 대대로 나고 자란 토박이 비율이 경기도는 25% 안팎, 서울은 5%에 불과하다. 대부분 뿌리는 비수도권에 있다는 의미다. 언론 종사자라고 다를 리 없다. 그런데도 고향 폄하에 거리낌이 없다.

정부가 지난달 인구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저출생 대책을 내놓았을 때 수도권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수도권 집중 완화책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부산이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이들이 소멸 징후에 민감한 건 지방을 걱정해서라기보다 거기서 서울의 미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는 부산도 대구도 아닌 서울이다. 전체 출산율이 0.72명일 때 서울은 0.55명에 그쳤다. 청년들이 ‘인 서울’에 성공했으나 지나친 경쟁, 천정부지 집값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엄두조차 못 낸다. 원인을 알고 대책을 촉구하면서도 지방 살리기에는 훼방부터 놓고 보는 수도권 언론은 자가당착 그 자체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같은 사안을 놓고도 콩이다 팥이다 서로 싸우면서 비수도권 견제엔 대동단결한다.

공항은 필요 없고 균형 발전은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마땅히 대안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 지방이 답할 차례다. 용인 반도체 단지에 전력량이 부족하다고 한숨 쉴 필요 없다. 싼 전기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방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된다. 삼성이나 SK가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기만 해도 균형 발전은 대폭 앞당겨진다. 민간을 압박할 자신이 없다면 공기업을 설득하라.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을 모두 이전해 부산을 대한민국 금융 거점으로 키우라는 말이다.


우물 안 수도권 언론의 지방 무시가 도를 넘는데도 국회의원 등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한다. 표는 고향에서 받았지만 잘 보이고 싶은 곳은 중앙 권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도 무도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움직임 하나 없다. 수십 년간 중앙 시각에 순치된 결과일지 모른다. 이 전도된 가치를 바로 잡기 위해선 지방이 지방의 눈과 머리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 동포를 멸시하는 수도권 언론의 망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끝은 국가의 소멸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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