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 안부묻기 챌린지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7. 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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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활동의 하나로 진행했던 ‘안부 묻기 챌린지’. 아름다운재단 제공

허진이 | 자립준비청년

3년 전,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뛰어놀며 자랐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참담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더욱 참담했던 이유는 내가 친구 소식을 들었을 땐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무연고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봉안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 중에서도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는 지자체에서 무연고 장례를 치르므로 지인들은 뒤늦게 사망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친구 소식도 한동안 연락이 뜸한 것을 걱정한 지인이 친구가 머물던 집에 방문해서야 알려졌다. 살면서 가끔 그의 소식을 궁금해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며 무심하게 넘기던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보육원, 그룹홈 등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가 성립되지 않기도 한다. 자립 후 각자도생하느라 바쁘고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등 정부지원금이나 민간단체의 지원은 시설 퇴소 후 5년 이내로 집중되다 보니 지원이 끊길 땐 고립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듯 자립준비청년들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 즉 ‘무소식’일 때는 ‘희소식’이 아닌 연락 혹은 지원 단절로 인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예는 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가 길에서 노숙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기도 했고, 다단계에 빠져 큰 빚을 지고 있던 친구가 겨우 그 굴레에서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다. 또 연락이 잘 되지 않던 보육원 선배는 교도소를 드나들고 있었다. 이런 근황을 뒤늦게 접하고 나면, ‘연락해볼까’ 하는 생각에만 그치지 말고 서로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누고 위로를 건넸으면 그들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2022년 아름다운재단이 자립준비청년 1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도움을 받거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명인가’라는 질문에 ‘1~2명’(43%)으로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자립준비청년들이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물론 자립준비청년 모두의 안부를 챙기는 것은 어렵다. 첫번째 이유는 전담인력 부족 탓이다. 2023년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청년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립전담인력은 161명으로, 1명당 약 71명을 담당했다. 또한 전담인력에 대한 처우도 좋지 않아 지속적인 사후관리 및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두번째는 자립준비청년의 연락 두절이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사례관리 대상자 1만1397명 중 20.2%가 연락 두절 상태였다. 연락 두절 원인은 휴대폰 비용 미납 등의 이유로 전화기 사용이 어려운 경우, 번호가 변경된 경우, 스팸으로 의심해 전화를 끊거나 차단하는 경우 등이었다. 사후관리는 자립에 필요한 지원서비스 안내를 받을 기회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청년과 연락이 닿지 않아 전담요원도 답답한 상황이다.

친구에게 건네는 안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2022년에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활동의 하나로 ‘안부 묻기 챌린지’를 진행한 적이 있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자립준비청년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단순한 활동이었지만 자립준비청년을 걱정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전할 수 있었다. 챌린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립준비청년에게 안부를 묻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 ‘기다리고 있을게요’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내가 보육원을 퇴소하는 날 양육자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내 소식을 기다려주는, 나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서로 근황을 끊임없이 물으면서 ‘유’(有)소식이 희소식이 될 수 있도록 서로를 보살피고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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