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07> 약조제찰비

김소담 부산박물관 전시운영팀 학예연구사 2024. 7. 1. 19:3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선 후기 어느 날, 부산포 어딘가에서 바닷바람에 섞인 낯선 말소리가 들려왔다.

초량왜관의 정문인 수문(守門) 안에는 조선과 왜의 공식적인 외교 규정이자 포고문인 약조제찰비(사진)가 뜻을 알리며 서 있었다.

이처럼 약조제찰비는 왜관의 폐단을 강력하게 바로 잡고자 하는 조선의 의지를 나타내며, 동시에 통제의 장소로서의 왜관을 상징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량왜관 금지사항 5가지 새겨…밀무역 등 폐단 단속

조선 후기 어느 날, 부산포 어딘가에서 바닷바람에 섞인 낯선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소리는 바로 일본어였다. 이외에도 상인들의 흥정 소리, 관리들의 지시, 그리고 주민들의 정겨운 수다가 뒤섞여 있었다. 이곳은 조선과 일본이 만나는 지점이었으며, 평화와 긴장이 교차하는 ‘초량왜관’이다. 초량왜관의 정문인 수문(守門) 안에는 조선과 왜의 공식적인 외교 규정이자 포고문인 약조제찰비(사진)가 뜻을 알리며 서 있었다.

조선 초 왜구들을 포용하기 위해 제포 부산포 염포 등 3개 포구를 열었다. 이 개항지에는 왜인이 머무르며 무역하고 숙박할 수 있는 왜관이 세워졌다. 왜관은 잦은 왜란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운영이 중단된 이후, 조일관계가 다시 회복 국면에 들어서며 오직 부산에만 다시 설치되었다. 조선은 1601년 절영도에 임시 왜관을 설치한 후, 두모포에 정식 왜관을 만들었다가 1678년 지금의 용두산공원 부근인 초량에 약 11만 평 규모의 왜관을 새로 지어 1876년까지 유지하였다. 약 200년간 초량왜관을 통한 조선과 일본의 무역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왜관 근처의 상인이나 관리 역관 아전 중에는 부를 축적한 사람이 점점 늘어났으며, 왜관에 왜인이 상시 거주하고 일본 상인들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조선법을 무시하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는 불법 무역인 밀무역이 성행하는 등 여러 폐단이 따르게 되었다. 이에 조선은 일본과 약조를 맺어 위반자를 단속하고자 했다.

동래부사가 만든 절목(節目)을 대마도주와 의논하고 조정에 보고하여 내용을 추가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마침내 조선 숙종 9년(1683년), 초량왜관 내 금지사항 5가지가 정해졌다. 이를 널리 공포하기 위해 비석에 새겼으니, 바로 약조제찰비이다. 약속한 금지사항은 ‘왜관 경계선 밖에 함부로 나오지 말라, 왜인에게 돈을 빌리지 말라, 밀매매하지 말라, 5일마다 물건을 들여올 때 왜인은 조선 관리를 구타하지 말라’며, 이를 어길 시 사형으로 다스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외에 ‘범죄를 저지른 조선인과 왜인은 모두 왜관 바깥에서 형을 집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왜관 거주자가 왜관 밖으로 나갈 때는 왜관 관리에게 보고하여 조선 관리에게 통행증을 보여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한문과 일문으로 각각 비석에 새겨 조선 측은 수문 안에, 일본 측은 왜관의 경계 지역에 세워서 알리게 했으나, 현재는 조선이 세운 비만 남아 있다. 이처럼 약조제찰비는 왜관의 폐단을 강력하게 바로 잡고자 하는 조선의 의지를 나타내며, 동시에 통제의 장소로서의 왜관을 상징한다.

조선 말, 약조제찰비 속 통제에 맞춰 움직이는 초량왜관 안의 세상과는 달리 왜관 밖, 나라 밖의 세상은 질서를 모른 채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숱한 역경과 거센 변화의 시간을 온몸으로 버텨낸 약조제찰비는 마침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한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제는 부산박물관 전시실로 자리를 옮겨와 사람과 문물이 오가던 초량왜관의 풍경과 그곳의 평화와 질서를 지키고자 노력한 양국의 의지를 전하고 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