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배달비·전기료 지원’에 자영업자들 “메뚜기떼 잡아달라는데 쌀 포대 주는 격”

강한들 기자 2024. 7. 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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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에서 배달 전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윤지훈씨(46)가 지난달 21일 첫 배달 주문을 접수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으로 전기요금, 배달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달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와 불공정 행위엔 눈을 감은 ‘보여주기식’ 대책이라는 주장이다.

1일 경향신문과 통화한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대책이 ‘배달 플랫폼의 이익만 보장하는 세금 낭비’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와 대통령실·국민의힘은 지난달 30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영세 음식점에 배달비를 신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매출액 3000만원 이하만 전기요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매출액 6000만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내놨다. 정부와 플랫폼 사업자, 외식업계가 함께 상생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배달비 지원’ 대책이 배달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배달의민족(배민)의 배달 체계를 대표 사례로 짚었다. 배민은 배달대행업체를 통한 ‘가게배달’보다 배민이 직접 배달 라이더와 계약해 운영하는 ‘배민배달’을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눈에 띄게 배치하고 있다. 정부 대책은 이같은 플랫폼 기업의 행태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지적이다. 일정 금액을 광고료로 내는 가게배달과 달리 배민배달은 정률형 수수료를 내는 요금 체계가 적용된다. 자영업자들은 플랫폼 기업이 자영업자 부담이 커지는 쪽으로 앱을 설계한 것이 사안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경기 양주시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김영명 공정한 플랫폼을 위한 전국 사장님 모임(공플사모) 대표는 “작물을 다 먹어 치우는 메뚜기떼를 잡아달라고 했더니 쌀 한 포대를 주는 격”이라며 “플랫폼의 불공정한 상황 때문에 업주들의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던 거지, 지원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야식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김준형씨(34)는 “이번 대책으로 생색만 내고 배달 플랫폼 횡포는 규제하지 않겠다고 할까봐 우려된다”며 “이대로라면 음식 가격은 오르고 배달 플랫폼만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정부 대책이 소비자 반감을 일으켜 정작 자영업 생태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배달 음식점을 운영하는 윤지훈씨(46)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경제 상황이 나쁜 와중에 왜 자영업자의 배달비만 지원하느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당황스러운 대책”이라고 말했다.

공플사모는 이날부터 ‘배달 시장 상생안 대국민 동의’를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률형 수수료가 부과되는 ‘배민배달’로 주문을 유도하는 불공정 상황을 개선하고, 소비자에게도 음식 가격과 중개 수수료, 배달비를 분리해서 알리도록 법제화해달라고 요구헸다. 또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에 플랫폼을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와 공플사모는 이날 낸 성명에서 “정부의 대책은 세금으로 배달 플랫폼의 이익을 올려주겠다는 황당한 발상”이라며 “정부·여당이 해야할 일은 세금 낭비가 아니라 배달 플랫폼 규제”라고 주장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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