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로 물든 뉴욕…세계 프라이드먼스 촉발 주점은 어디[김현수의 뉴욕人]

뉴욕=김현수 특파원 2024. 7. 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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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성소수자 인권의 달(프라이드 먼스)에만 판매하는 쉐이크쉑의 ‘프라이드 쉐이크’.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최근 뉴욕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위치한 쉐이크쉑 햄버거 가게에 들렸더니 새로운 메뉴가 생겼다. ‘프라이드’ 셰이크. 무지개로 로고를 색칠한 프라이드 먼스 기념 음료다. 이 곳에서 5번가를 따라 20여 블록 위에 있는 뉴욕 공공도서관에도 거대한 무지개색 깃발이 걸렸다.

이뿐인가. 매년 6월이 되면 은행, 헬스장, 식당 곳곳 등 뉴욕은 온통 무지개색으로 물든다. 성소수자(LGBTQ+) 인권 운동을 기념하는 ‘프라이드 먼스’이기 때문이다. 특히 6월의 마지막 날엔 맨해튼 일부 도로를 통제하고 대규모 퍼레이드가 벌어지는데 방송에서 생중계를 해줄 정도로 규모가 압도적이다. 이날은 뉴욕뿐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달로 곳곳에서 행사가 벌어진다.

지난달 뱅크오브아메리카 맨해튼 지점이 무지개빛으로 물들어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 퍼레이드 현장에 나온 아일랜드 페르난데스-코스그로브(23) 씨는 AP통신에 “오늘은 ‘커밍아웃’하고 공개적으로 성소수자가 되어도 괜찮고 안전할 수 있는 날”이라며 “오늘 나의 파트너와 함께 공공장소에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지지해줄 것을 믿을 수 있어 나왔다”고 밝혔다.

● 사적지 된 뉴욕 주점 ‘스톤월 인’

특히 뉴욕은 프라이드 먼스가 시작된 곳이라 축제 분위기의 강도가 남다르다. 전 세계 성소수자들이 ‘성지 순례’를 올 정도다. 순례의 중심에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주점 두 곳이 있다. 지금도 활발히 영업 중인 ‘스톤월 인’과 ‘줄리어스’가 주인공이다.

특히 스톤월 인은 미국 성소수자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꼽힌다. 워싱턴 스퀘어파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이곳은 6월이 아닌 평소에도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고, 이 술집 앞의 작은 삼각형 모양 공원인 ‘크리스토퍼 파크’에는 성소수자인권운동 동상도 설치돼 있다.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주점 ‘스톤월 인’. 지난달 28일 스톤월 반란 촉발을 기념하는 국립 기념물 방문자센터가 새로 문을 열었다. 스톤월 인 홈페이지

1966년 문을 연 스톤월 인은 성소수자들이 몰리는 유명한 ‘게이바’였다고 한다. 미 의회도서관에 따르면 당시 성소수자는 ‘불법’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몰리는 바는 주로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불법적 바가 많았다. 경찰이 언제 어느 때든 들이닥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급습 때마다 과도한 폭력에 시달리던 당시 뉴욕 동성애 커뮤니티는 1969년 6월 28일 스톤월 인 급습 사건으로 분노가 터졌다.

약 일주일 동안 곳곳에서 이른바 ‘스톤월 반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는 현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각종 단체가 조직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프라이드 먼스와 퍼레이드가 1970년부터 시작됐다. 뉴욕에서 동성애 관계가 합법화 된 것은 1980년, 결혼이 합법화 된 것은 2011년이다.

지난달 28일에는 스톤월 사태 55주년을 맞아 영업 중인 스톤월 인 술집 옆에 국립기념물 방문자센터도 첫 문을 열었다. 스톤월 인은 1969년 반란 사태 직후 문을 닫았다가 1990년대에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미 대선 TV 토론 후폭풍에 시달리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날 스톤월 방문자센터 개소식을 찾았다. 가수 엘튼 존,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도 함께였다. (뉴욕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의 영혼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여러분 모두가 가져다주는 자부심, 희망, 빛을 둘러보며 우리가 이기고 계속 발전해 나갈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스톤월 반란을 빗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항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스톤월 인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줄리어스’라는 술집도 유명한 성소수자인권 운동의 중심지로 꼽힌다.

스톤월 사태 3년 전인 1966년 4월 21일, 줄리어스 바에 남성 세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의 일원들. 이들은 술을 시키고 바텐더에게 “우리는 동성애자이고, 질서 있게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뉴욕 주류법에는 동성애자에게 술을 제공할 수 없도록 돼있었다. 바텐더는 술을 다시 뺏기 술잔에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사진 기자가 찍어 뉴욕타임스에 대문짝만하게 해당 사건이 화제가 됐고, 주류 당국의 동성애자 술 제공 금지 규정이 완화되는 계기가 됐다.

뉴욕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된 주점 ‘줄리어스’. 뉴욕=김현수 특파원

이는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흑인에게 서비스를 거부하는 식당에 ‘앉아있기(sit-in)’ 비폭력 시위를 한 것에서 힌트를 얻어 성소수자들이 일단 술을 시키자는 ‘마셔보기(sip-in)’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웨스트빌리지의 역사 사적을 중심으로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 토머스 실크 씨는 “줄리어스 건물은 과거 삼각 지붕 건물을 좌우로 확장한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기도 하다”며 “햄버거도 맛있고 건물도 볼 만하다”고 말했다. 다만 줄리어스는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대선 앞둔 미 기업들은 “올해는 몸사리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월트 디즈니 기업 임직원들이 뉴욕시 프라이드 먼스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다. 관례대로 많은 기업들이 프라이드 먼스 행사를 후원하거나 직접 참여했지만 ‘나이키’ 등 일부 기업들은 가시적 지원을 축소하기도 했다. 뉴욕=AP뉴시스
올해 프라이드 먼스에는 스톤월 방문자 센터 개소식과 대통령 방문에도 중동 전쟁과 대선, 문화전쟁으로 이전보다 어수선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퍼레이드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자들에 의해 일부 중단되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중심으로 반 성소수자 분위기가 조성되는 점에 대한 우려도 곳곳에서 나왔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이 부각된 TV 토론의 충격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는 것이다.

스톤월 방문자 센터의 후원자 중 하나인 소프트웨어 회사 SAP의 회계 담당 임원인 스콧 듀이 씨는 CBS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토론을 “굴욕적”이라며 “그는 너무 늙었고, 어젯밤에 그것을 확실히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미 결혼 합법화 등 법적 제도가 자리 잡은 동성애와 달리 트랜스젠더 관련 법 규제는 미국 대선 이슈로 부상할 만큼 곳곳에서 논란이 거세다. 공립학교에 성중립 화장실 설치, 트렌스젠더의 헬스장 여성 라커룸 출입, 스포츠 경기 참여 성별 논란까지 미 전역에서 소송전이 진행 중일 정도다. 진보 성향의 뉴욕이지만 남녀가 함께 쓰는 ‘성중립 화장실’이 불편하다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라이드 먼스를 기념해 무지개색으로 물든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X 캡처

이에 따라 지난해 맥주 기업 버드와이저가 트랜스젠더 모델을 내세웠다 오랫동안 불매운동에 시달렸던 이후 주요 기업들도 예전보다 조용하게 프라이드 먼스를 지원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해 불매 운동의 타깃이 됐었던 대형마트 ‘타깃’ 뿐 아니라 프라이드 전용 컬렉션을 내놓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지난해에 비해 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미 경제매체 CNBC는 “대선 한복판에 괜히 나섰다가 문화전쟁에 휘말릴까 걱정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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