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유럽 선거 참패에 의회 해산 선언 佛 마크롱 대통령 | 프랑스 조기 총선 승부수…‘위험한 도박’ 우려에 주가는 폭락

김우영 기자 2024. 7. 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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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표를 통해 여러분에게 우리 의회의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돌려드리기로 했다. 오늘 저녁 국회를 해산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월 9일(이하 현지시각) 대국민 연설에서 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며 이렇게 발표했다. 6월 6~9일 나흘간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집권 여당 르네상스당이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에 참패하자 ‘조기 총선’이란 강도 높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인 의회 해산 카드를 행사한 건 1997년 이후 27년 만이다. 문제는 되레 극우 정당이 유럽의회 선거 때처럼 프랑스 의회를 차지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대규모 지출 공약을 내세운 극우 정당이 득세할 수 있다는 우려에 프랑스 증시는 폭락했고, 프랑스 전역에선 극우 반대 시위가 열리며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프랑스 역사상 6번째 의회 해산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연합(EU) 27개국 소속 유권자 3억7300만 명의 직접 투표로 진행한다. 여기서 각 회원국 인구 비율에 따라 할당된 의원 720명을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다. 프랑스가 할당받은 의석은 81석으로, 독일(96석) 다음으로 많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르네상스당이 극우 성향 RN에 완패했다는 사실이다. RN은 득표율 31.5%를 기록해 30석을 확보, 1당 지위를 차지했다. 반면 여당인 중도 성향의 르네상스당은 득표율 14.6%로 13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극우 세력이 승리한 배경은 복합적이다. 우선 프랑스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고금리 장기화로 경기가 순탄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느라 살림살이까지 빠듯하다. 자연스레 이민자 반대와 난민 추방이라는 국수주의 슬로건이 표심을 사고 있다. 여기에 마크롱 대통령이 강도 높은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며 민심을 잃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6월 9일 유럽의회 선거 출구 조사에서 집권 여당의 참패 소식을 접하자, 대국민 연설에 나서 국회를 전격 해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의회 해산 이유에 대해 “지난 몇 년간 유럽의 진보에 반대해 온 극우 정당이 대륙 전역에서 진전을 보였다” 며 “오늘의 결과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길 수는 없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발언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1차 투표는 6월 30일, 2차 투표는 7월 7일에 실시하기로 했다. 2022년 6월 총선을 치른 지 2년 만에 다시 의회를 구성하게 된 셈이다.

프랑스에서 의회 해산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야당의 약진으로 대통령이 국정 주도권을 잃었을 때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국민 신임을 확인할 때도 행사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 입장에선 극우 세력의 확산세를 저지하고, 절반도 넘게 남은 임기 내 국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의회를 재구성하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도 극우 세력이 승리한다면 그가 감수해야 할 정치적 위험도 만만치 않다. 이번 의회 해산 결정을 두고 ‘위험한 도박’이란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제5 공화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한 사례는 총 다섯 번이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1962년과 1968년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1981년과 1988년 각각 두 차례씩 의회를 해산했다. 모두 집권 여당이 승리했다. 다섯 번째 의회 해산은 1997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 이뤄졌다. 이때가 마지막 의회 해산이었다. 당시 시라크 대통령은 경제 상황 악화 가능성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는데, 여당 패배로 끝났다.

프랑스 현지 언론은 마크롱 대통령이 시라크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여론조사 업체 해리스 인터랙티브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유권자 중 34%가 1차 투표에서 RN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르네상스당을 찍겠다고 답한 이는 19%에 그쳤다. RN을 저지하겠다며 등장한 극좌 정당 연합 신민중전선(NPF) 지지율(22%)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물론 RN이 1당 지위에 올라도 마크롱의 대통령직은 유지된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 정부, 즉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이 구성될 수 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다수당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 게 관례다. 차기 총리 후보로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거론되는 배경이다.

6월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극우 반대 시위에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주최 측에 따르면 파리에서만 25만 명이모였다. 사진 AFP연합

포퓰리즘 득세 우려에… 증시 222兆 증발

프랑스 증시는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 증시 ‘CAC40’ 지수는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 계획을 발표한 뒤 닷새 동안 6% 넘게 폭락했다. 2022년 3월 이후 주간 단위 낙폭으로는 최대치였다. 이번에 증발한 시가총액만 1500억유로(약 222조원)였다. 프랑스 국채의 투자 위험성을 나타내는 프랑스·독일 10년물 금리 스프레드는 6월 17일 기준 81.1bp(1bp=0.01%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이는 12년 만의 최고치다. 시장은 프랑스 의회에서까지 포퓰리즘이 세력을 넓힐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브뤼노 르마레 재무 장관은 RN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채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극우 정부가 정부 지출 증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역에선 연일 극우 반대 시위가 열리면서 정치권발 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 6월 15일 프랑스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CGT), 민주프랑스노동연맹(CFDT) 등 노조 다섯 곳이 주최한 시위에 64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파리에선 25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시위 참가자는 “인종차별주의와 소수자 혐오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프랑스 축구 스타 킬리안 음바페도 6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있다” 며 젊은 층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음바페는 카메룬 국적의 아버지, 알제리 국적의 어머니를 둔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프랑스 내 극우 돌풍은 정계를 은퇴했던 인물까지 복귀시켰다. 바로 좌파 정당인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는 “극우파 위험을 막겠다”며 6월 15일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프랑스 대통령 출신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그는 “예외적인 상황에선 예외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며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랑드 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전임자로, 2012∼2017년 집권했다.

이번 조기 총선은 자칫 유럽 안보 지형까지 흔들 수 있다. 당장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계획이 무산될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는 “애초 논의 예정이었던 공동 방위비 확대 문제가 생략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국가들의 저항이 거센 데다 프랑스 입지가 더 약화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Plus Point
극우 세력 약진 유럽
독일도 집권당 패배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극우 세력이 약진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6월 20일 집계 기준으로 우선 제1당인 중도 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이 총 720석 중 190석을 차지했다. 이어 제2당인 중도 좌파 ‘사회주의진보동맹(S&D)’이 136석을, 제3당인 중도 ‘유럽을새롭게(RE)’은 80석을 얻었다. 양대 극우 정치 그룹인 ‘유럽보수와개혁(ECR)’과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각각 83석과 58석을 차지했다. 기존 의석수보다 각각 14석과 9석을 늘렸다. 프랑스 RN이 속해 있는 정치 그룹이 바로 ID다.

특히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선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 집권당 역시 극우 세력에 패배했다. 독일은 유럽의회에서 96석을 할당받는데,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표율 15.9%로 15석을 확보해 보수 성향 ‘기민당·기사당(CDU·CSU)’ 연합(득표율 30%· 29석)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이다. 반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소속된 중도 좌파 ‘사민당(SPD)’은 득표율 13.9%로 14석을 얻는 데 그쳤다. CDU·CSU 연합과 AfD 등은 독일 정부에 프랑스처럼 조기 총선을 치를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숄츠 총리는 “조기 총선은 선택지에 없다”고 일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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