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파적 <56>] 욕 잘하는 사람이 더 똑똑하다고?: 욕설의 심리학

2024. 7. 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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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모여서 욕하는 것은 억눌린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괜찮은 배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늘 정도가 문제다. 사진 셔터스톡

오래전 일이다. 건설 관련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친구 A는 당시 혈기 왕성한 30대였다. A는 같은 부서 사람들을 대표해 직속 상사 B에게 용감하게 맞섰다. B는 하청 업체에서 뇌물을 받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부하들에게 만성적으로 갑질을 하고, 인간성마저 바닥인 평판 최악의 상사였다. A는 부서 전체 회식 자리에서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A는 만취해 기억마저 희미하다고 했다.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술이 여러 순배 돌면서 불콰해진 A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직속 상사 B에게 손가락질하며 십원짜리 욕설을 마구 쏟아냈다. A는 평소 얌전한 샌님 스타일이어서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A는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다. 좁은 바닥에서 이런 전과(?)는 치명적이다. 한참을 백수로 지내던 A는 천신만고 끝에 새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 욕설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이다. 심리학적으로는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용어를 사용해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욕설은 시대를 막론하고 터부시됐다. 욕설의 언어적 비위생성이 통상 심리적인 비위생성으로 간주된 것이다. 그렇다면 욕설이 늘 금기시됐을까. 꼭 그랬던 건 아니다. 예컨대 어느 지역에나 있는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같은 것이 좋은 예다.

사람들은 왜 말끝마다 욕설을 퍼붓는 욕쟁이 할머니 집을 다시 찾는 걸까. 여기에는 욕설에도 불구하고 욕쟁이 할머니가 고객인 나를 친할머니 같은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챙겨준다는 신뢰가 전제돼 있다. 집밥처럼 음식 맛도 좋은데 반찬은 무한 리필이고, 메뉴에 없는 서비스까지 척척 챙겨주는 상황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기성세대는 요즘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일상용어에 욕설이 너무 많이 섞여 있는 것을 걱정한다. 청소년들은 그 욕설의 정확한 뜻이나 어원도 모른 채 단순한 감탄사처럼, 대화 중간중간에 욕설을 섞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좋게 생각하면 이런 욕설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사라진다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학부모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욕설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지능이 낮을 것으로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영국 국립코퍼스(BNC)의 조사에 따르면, 평균 학력이 낮은 하층 노동자 계층의 사람이 상류층 사람보다 욕설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반대로 욕을 잘하는 사람들이 머리가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마리스트대의 심리학자들이 진행한 한 실험에서 연구팀은 이 실험에 지원한 사람들에게 1분 안에 특정한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도록 요청했다. 같은 방식으로 1분 안에 최대한 많은 욕설을 나열하게도 했다. 실험 결과, 언어 유창성 실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사람들이 욕설 유창성 실험에서도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거꾸로 언어 유창성이 낮은 사람은 욕설 유창성도 낮았다. 언어적 측면에서만 보면 욕 잘하는 사람이 머리도 좋다는 뜻이다.

김진국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이 실험을 살펴보면 욕설이 단순히 어휘가부족하거나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이들, 말하자면 머리가 나쁘거나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욕설은 의사소통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녀에게 욕설을 권할 수도, 말릴 수도 없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선입견을 깨는 실험은 또 있다. 2017년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대인 관계에서 욕설을 많이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거짓말을 덜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욕설을 통해 좀 거칠고 강력한 언사로 자신의 감정을 매우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 건강 관련 잡지인 ‘사이코록스 매거진(Psychologs Magazine)’에 실린 한 실험을 보자. 하루에 몇 번씩 욕설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얼음물에 더 오래 손을 담그고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사람이 두렵거나 놀라운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 우리 신체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우리를 위협하는 대상과 맞서 싸우거나 도망을 가는 투쟁-도피(fight or flight)가 가능한 생리적 반응을 유발한다. 이때 우리 몸에는 아드레날린이 대량으로 분비된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심박수, 혈압, 호흡수, 혈당 등이 증가하면서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싸우거나 도망갈 때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드레날린은 진통 효과가 있다. 욕설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아드레날린이 더 많이 방출돼 진통 효과가 커지는 것이다.

임산부가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통증 때문에 욕설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이처럼 분만 중 욕설 역시 임산부의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의학계는 추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욕을 많이 할수록 통증에 대한 내성이 계속 커지는 것은 아니다. 욕설을 너무 많이 하면 스트레스 반응이 중단될 뿐만 아니라 아드레날린의 진통 효과는 일시적이라서, 장기적인 통증 관리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욕설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욕설하는 것은 그가 물리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언어적 반격을 통해서 단순한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상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 사이의 욕설이나 일상에서 가벼운 욕설은 유머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사회의 일반적인 제약으로부터 탈출을 돕기도 한다. 예컨대 지독한 인성의 고약한 보스나 전횡을 일삼는 독재자를 희화화하면서 끼리끼리 모여서 욕하는 것은 억눌린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괜찮은 배출구가 될 수 있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는 속담이 이러한, 어느 정도 용인된 욕설 허용의 경계선일 것이다.

그러나 늘 정도가 문제다. 욕설이 부정적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하수구 정도에 그쳐야지 그 선을 넘으면 하수구가 터져 악취가 사방에 진동하게 된다.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보다는 언어적 분노 표출이 낫다는 이야기이지, 그게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하는 욕설도 금물이다.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욕설은 듣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청소년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욕설도 정도를 넘어서면 용인하기 힘들다. 하물며 성인이, 그것도 지도층 사람이 내뱉는 욕설은 사회적인 분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자기가 속한 당 출신 국회의장이 자당의 이익에부합하는 국회 운영을 하지 않고 중립적인 의사 진행을 했다는 이유로 욕설을 퍼부은 한 정치인의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반대당 출신의 대통령과 자당 출신의 국회의장을 함께 싸잡아 “개XX”라고 했다. 그것도 생방송 중에 말이다.

원로 정치인으로서의 원숙함은 온데간데없다. 그의 안중에는 오로지 자기 지역구의 삼류 유권자와 자당의 악성 팬덤밖에는 없는 모양이다. 더욱 구역질이 나는 것은 생방송인 줄 몰랐다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다. 수많은 방송에 고정 패널로 나온 적이 있어 방송 생리에 누구보다 익숙한 노 정객의 후안무치가 놀랍다. 그저 자기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봐줘야 하는가, 아니면 저렇게 교묘하게 욕을 잘하는 것을 보니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고 박수라도 보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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