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계속 이기적이면…“참새도 책으로 보는 날 올 것”

김지숙 기자 2024. 7. 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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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김지숙이 만난 애니멀피플
책 ‘우리는 지구에 홀로…’ 펴낸 천명선 서울대 교수
천명선 서울대 교수가 6월2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수의과대학 연구실에서 인간동물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여기까지 오시면서 어떤 동물들을 만나셨어요?”

주로 사람들을 봤다. 길에서 얼쩡거리는 비둘기 두어 마리도 만났다. 그러고는 떠오르는 동물이 없었다. 천명선 서울대 교수(수의학과)는 이 질문을 자신의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에게도 똑같이 한다고 했다. 대답은 비슷하단다. 비둘기, 참새 혹은 모기.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역시 ‘인간’이었다. 그가 다시 묻는다. “우리 이외에 나머지 동물이 다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과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

천 교수는 ‘인간동물학’ 학자다. 인간동물학이란 ‘인간과 동물의 관계,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융합학문’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가 최근 목소리를 내 온 동물 관련 이슈를 살펴보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쉽다.

그가 전임교수로 있는 서울대 수의인문사회학 교실에서는 화천 산천어 축제 등 국내 동물이용축제 현황조사(2017년), 개 식용 관련 시민 설문조사(2022년), 제주 마라도 길고양이 조사(2023년) 등을 진행했다. 모두 인간이 특정 동물과 맺은 관계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과 갈등, 공존을 고민한 사안들이다. “인간동물학은 동물이, 그리고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기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학문”이라는 천 교수의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책 ‘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21세기북스)를 펴낸 천 교수를 6월2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수의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책은 그의 첫 단독 저서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인간동물학을 다양한 국내외 사례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동물학은 국외에서도 1990년대 연구가 시작된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학문이라고 한다. “누군가 ‘인간동물학을 만듭시다’라고 한 것은 아니고, 동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사회가 동물을 배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08년부터 인간동물학을 가르쳐온 천 교수는 국내 수의인문사회학 1호 교수로, 수의학과 학생들에게 인간-동물 관계, 수의 윤리, 동물복지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취약성은 연계돼 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살피는 것은 왜 중요할까. 천 교수는 책에서 인간과 동물의 다양한 관계를 시대적 변화, 사회적 쟁점 등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그 관계는 대체로 ‘인간의 필요 때문에 생산되고 소멸되며, 인간을 위해 쓰이고 버려지는’ 일이 많다.

축산동물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약 350만마리의 소, 1000만마리의 돼지, 1억7000마리의 육계가 사육됐지만, 우리는 이들도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인간은 야생동물의 멸종도 가속화하고 있다.

천명선 서울대 교수가 6월2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수의과대학 연구실에서 인간동물학 서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천 교수는 인간이 지금까지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나 말고 다른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지식화한 점”을 꼽았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학문적 고민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인간은 “동물을 보고 만지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희한한 욕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 역시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의 고통을 본능적으로 인지하며 그들의 고통에 둔감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취약성은 연계되어 있다”고 천 교수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직 인간의 ‘식량’이 되기 위해 비좁은 밀집 사육시설에서 태어나 고작 수개월을 살다 죽는 소, 돼지, 닭을 위해 육식을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해야 할까. 천 교수는 이 주장에 앞서 우리가 동물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전 세계의 공장식 축산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죽는지 알아야 해요.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인도적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게끔 해줘야죠.” 우리가 돈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동물복지 축산품을 구매하고, 공장식 축산을 대체할 과학적 연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공존이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천 교수는 “순식간에 바뀌는 건 없다”면서도 공장식 축산의 역사가 고작 50~6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처럼 동물을 집약적으로 사육하고 생산성을 늘린 배경에 ‘과학의 힘’이 있듯, 그 방향을 우리가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고양이 4마리의 ‘집사’이기도 하다. 맨 왼쪽 ‘바둑이’는 서울대 교정에서 돌보던 길고양이인데, 고양이가 살던 곳에 공사가 진행되자 연구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지금은 천 교수는 집에 살고 있다. 천명선 교수 제공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그가 말했다. “지구에 인간만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삭막하겠죠. 동물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려고만 들면 동물은 점점 더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예요. 우리 다음 세대는 참새를 책으로만 보는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어떻게 가능할까. “공존이란, 우리가 다른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동물의 고통을 인지하고, 이제 ‘동물 학대’를 그만두기로 결정하는 것. 그는 대표적인 예로 ‘개 식용 종식’을 들었다. “동물을 보호하자고 하면 누군가는 ‘동물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물이 없으면 우리도 살아남을 수 없어요. 공존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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