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왜 ‘김정은 얼굴 배지’가 등장했을까? [청계천 옆 사진관]

● 북한 배지 문화의 변화

일단 우리 민족의 문화에 배지라는 게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당연히 사진이라는 것도 없었고 쇠에 그림을 붙이는 기술도 없었으니 배지가 없었을 테고 그럼 일제 시대에 그런 문화가 있었나?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럼, 한국과 북한에서 지도자의 얼굴을 배지로 만들어 달고 다니는 것은 언제부터 이렇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을까? 의심해 보는 것은 북한의 배지가 중국에서 넘어간 문화일 가능성이다. 중국에서 모택동(마오쩌둥)의 배지가 대중화된 것은 1966년 문화대혁명 시작 때부터이다. 봉건적이거나 부르주아적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면서 일반인들은 최고 권력자인 주석을 숭배하는 경쟁에 몰두하게 된다. 마오쩌둥 사진과 어록, 포스터, 배지 등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상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특히 배지는 홍위병들 사이에서 획일적인 복장에 개성을 주는 포인트 아이템으로 인기를 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마오쩌둥 배지는 ‘진품’과 ‘짝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허가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진품은 모든 인민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지 않았다. 어떤 순서와 서열에 따라 보급될 수밖에 없었다. 권력자에 대해 충성 경쟁에 나섰던 홍위병들은 배지를 사기 위해 상점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줄을 섰으며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배지를 판매하는 암시장도 번창했다. 상하이의 경우 75개의 공장이 잔업까지 하면서 한 달에 1500만 개의 배지를 찍어냈고 우한은 600만 개. 난징은 100만 개 배지를 생산하였다. 1968년이 되자 전국의 배지 생산량은 한 달에 5000만 개를 상회하였다. 천안문 광장 주변에는 작은 마오저뚱 사진 열 장과 배지 한 개를 교환하는 장터도 형성되었었다. 랑크 디쾨터가 쓰고 고기탁이 옮김 “문화대혁명(2017)”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 김일성 김정일 쌍상 배지를 가장 먼저 가슴에서 떼버린 김정은 부부


쌍상 배지를 가장 먼저 달았던 최고지도자 부부가 가장 먼저 배지를 떼기 시작한 것이다. 선대로부터 독립적인 지도자의 위상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중국의 지도자들조차 마오쩌둥 배지를 거의 달지 않는 국제 정치의 표준을 따르기 위함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최고지도자의 배지라는 상징을 배척해 왔다. 중국 외교관 리자오싱은 2014년 펴낸 자서전에서 중국이 마오쩌둥 우상화를 위해 노력하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1967년 10월 케냐 정부가 중국 대사관 측이 마오쩌둥 저작과 어록 그리고 상장(휘장)을 케냐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고 1969년에는 마오쩌둥 저작을 케냐 영토 안에서 발행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선포했다는 설명이다. 2015년 중반 김정은 부부의 가슴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김일성-김정일 배지. 이게 북한 변화의 상징이길 기대했었다.
● 배지 배급은 권력 순서대로
김정은의 착용 이후 쌍상 배지는 북한 사회에서 공식 배지가 되었으며 권력의 크기 순서에 따라 착용하기 시작했다. 쌍상 배지의 배급은 북한 내부의 서열과 계층 순서에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 2018년 6.12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날 평양역에서 북한 주민들이 야외 스크린을 통해 전날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야간 외출 보도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외신 사진기자가 찍은 이 사진 속에 등장하는 평양의 일반 주민들은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지, 쌍상 배지는 받지 못한 것 같았다. 2018년 3월 평양에서 열린 한국 공연단을 보러 온 사람들은 쌍상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했던 태권도 공연의 경우에는 관람하는 북한 사람들이 대부분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다. 꼭 기득권이 아니더라도 뉴스에 등장해야 하는 경우 쌍상 배지를 우선 지급받는 것 같았다. 2013년 5월 라오스에서 북한으로 재북송되었던 꽃제비 청소년들이 쌍상 배지를 달고 북한 방송에 출현한 것은 이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개수의 배지가 시장에 풀리면 그걸 먼저 착용하는 사람은 출신 성분을 증명할 수 있다.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사람들의 생활 속에 밀착시키는 효과와 함께 충성심이 높은 순서대로 줄을 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 속에 아이콘을 하나씩 갖고 있다. 연예인일 수도 자기 아이일 수도 부모일 수도 꽃일 수도 여행지일 수도 있다. 충성하지 않으면 배제될 거라는 두려움에 북한 인민들은 충성의 상징인 배지를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 권력자의 얼굴이 배지로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보며 든 생각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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