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걸 같다 생각했다” 군내 성희롱·갑질 피해 소령의 외침[플랫]

김정화 기자 2024. 7. 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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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부하 직원에 대한 성희롱과 갑질로 최초 중징계를 받았던 방위사업청 소속 육군 대령 A씨가 국방부의 항고 심사에서 경징계로 감경됐다. 사건 당시 대령 진급 예정이었던 A씨는 정상 진급했지만 조직 내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는 전역을 앞두고 있다. 군 자체적으로 이뤄지는 조사와 징계가 여전히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A씨 등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직접 신고한 육군 소령 이채영씨(44)는 기자와 만나 “성폭력, 성희롱 피해를 입은 군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이해된다”며 “민간 사회였다면 크게 문제됐을 일인데, 군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구조가 피해자를 옥죄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의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실명을 밝혔고 사진 촬영에 응했다.

방위사업청 소속 육군 소령 이채영씨가 지난 12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는 실명을 밝히고 사진 촬영에 응했지만 얼굴 공개는 원하지 않아 모자이크 처리했다. 김정화 기자
저녁, 한밤중, 새벽을 가리지 않는 술자리 요구
“날 ‘오피스 와이프’로 여기나 싶었다”
방사청 중징계→군 항고심사위 경징계 감경
“회의는 비공개, 개인정보 제공 불가능”

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와 A씨는 2021년부터 방사청 내 같은 팀에서 근무했다. A씨는 퇴근 후 술에 취해 이씨에게 연락하거나 회식 자리로 부르고, 자신의 원룸으로 가서 술을 먹자고 제안하는 일이 잦았다. 이들의 메신저 대화 기록을 보면 A씨 연락은 저녁, 한밤중, 새벽 등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이씨는 “주말 부부인 A씨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오피스 와이프’로 여기나 싶었다”며 “술 취한 밤 전화해서 자기 집으로 오라고 강요하고 메신저에 하트 모양 이모티콘을 찍어보내며 일방적으로 괴롭혔다”고 말했다. A씨는 술에 취한 채 ‘내무 사열을 하겠다’며 이씨 집에 오기도 했다. 이씨는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묵살됐다”고 말했다.

외모 평가나 사생활 침해성 발언도 있었다. 2022년 1월쯤 A씨는 본인의 원룸에서 함께 술을 먹던 이씨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물었다. 이에 이씨가 “저보다 선배인 ○○ 중령도 그렇고 나이 많아도 안 하는 사람 많은데 뭘 그러시냐”고 하자, A씨는 “거기(○○ 중령)는 얼굴 보면 못 간거지, 너는 안 간거고”라고 했다. 또 A씨 숙소에는 속옷 빨래가 걸려 있었고, 화장실 문이 고장나 사용을 꺼리자 A씨는 “그냥 쓰라”고 하는 등 성적 불쾌감을 유발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2022년 8월 국방부 조사본부에 성희롱과 갑질로 A씨를 신고했다. 방사청 내에선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거란 판단에 국방부 직할 수사 기관인 조사본부에 고발한 것이다. 조사본부는 A씨에 대해 퇴거불응죄로 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고, 방사청에는 A씨를 징계할 것을 통보했다. 이에 이듬해 6월 방사청 징계위원회는 A씨에 대해 정직 1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조사본부 조사를 이어받은 군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A씨를 불기소했고, A씨는 징계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인용됐다. 이에 더해 A씨는 징계에 대한 항고 심사를 제기했고 지난 4월 국방부 군인·공무원 징계 항고심사위원회가 A씨의 중징계 처분(정직 1개월)을 경징계(감봉 2개월)로 감경하면서 A씨는 예정대로 대령으로 진급했다. 항고심사위원회는 갑질은 인정하되 성희롱으로는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는데, 이 이유에 대해 “군인 징계령에 따라 회의는 비공개 사항일 뿐 아니라 A 대령의 개인정보로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역 장교, 준사관, 부사관 등 군인은 국가공무원법상 특정직공무원으로 임용이나 복무에 관해선 군인사법의 적용을 받는다. 현행 군인사법 시행규칙은 중징계 처분을 받았거나 2회 이상의 경징계 처분을 받은 사람에 대해 현역 복무 부적합자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조사하도록 한다. 방사청은 A씨의 진급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서 집행정지가 인용돼 징계에 대한 효력이 정지됐고, 이후 진급과 현역부적합 심사와 관련된 조치는 육군본부 소관 사항”이라고 했다.

방위사업청 소속 육군 소령 이채영씨가 지난 12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는 실명을 밝히고 사진 촬영에 응했지만 얼굴 공개는 원하지 않아 모자이크 처리했다. 김정화 기자
A씨, 징계 상관없이 대령으로 진급
‘비사관’ 이씨는 진급 안돼 전역 예정
이씨 “잘못한 사람이 군에 남는 게 부당”
A씨 측 “소송 통해 사실 밝혀질 것”

근본적으로 군대 내부에서 조사하고 징계를 내리는 구조에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군 이예람 중사 성폭력 사망 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에서 발생한 성범죄와 사망 사건, 입대 전 범죄에 대해선 2022년 7월부터 경찰 등 민간에서 수사하고 재판하지만 이씨 사례와 같은 경우 여전히 내부 기관에서 조사한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등에 따르면 직장에서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으로 보지만 군대는 이런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씨의 변호를 맡은 송태근 변호사(법무법인 청성)는 “민간 사업장이었다면 A씨의 행위도 당연히 처벌 대상인데, 국방부나 방사청 결정은 상식 수준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며 “위원들 자체가 육군사관학교 출신 현역 대령으로 구성돼 ‘끼리끼리 심사’가 의심되는데 징계위원회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피해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항고심사위원회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사관학교 출신’인 이씨는 2022년 진급에서 제외됐다. 그는 상급자의 요청이 불합리해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씨는 “방사청 직원 중 군인이 500명, 육군은 200명 가량인데 그중 육사 출신이 70퍼센트에 달한다”며 “내가 미혼 여군이고 만만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했고, 수시로 오는 연락 때문에 ‘콜걸’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진급 심사를 앞두고 있어 견뎠다”고 말했다. 전역 예정인 이씨는 “잘못한 사람은 계속 군에 남아 보직까지 받는 것이 부당하다 생각한다. 방사청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처럼 폐쇄적인 군 내부 징계·수사기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처럼 군 내 부조리나 갑질 행위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내부에선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항고심사위원회는 징계 대상자인 A씨에 대해 기계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정도에 그쳤다”며 “내가 느낀 불쾌감과 수치심에 대해 피해자 중심으로 제대로 논의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징계가 감경된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A씨 측은 “징계 사건 중 성희롱 부분은 발언 내용·상황 등을 국방부 항고심사위원회에서 ‘혐의없음’ 결정했다. 당시 피해자도 출석해 의견을 충분히 낸 것을 바탕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피해자가 주장하는 ‘콜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A씨 측은 “갑질 부분을 인정한 징계에 대해서도 현재 집행정지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를 통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사업청 소속 육군 소령 이채영씨가 지난 12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화 기자
“군 내부 징계·수사기관 제역할 전혀 못해”
이씨는 ‘보복성 고소’로 2차 피해 주장
“군대 내에서 문제제기한 사람만 배제돼
제가 목숨을 끊어야 제대로 조사할까요”

이씨는 A씨 외 가해자들에게도 ‘보복성 고소’로 2차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A씨를 국방부 조사본부에 신고할 당시 육군 대령 B씨, 중령 C씨에 대해서도 명예훼손과 성추행 등으로 신고했다. B씨는 2020년 술자리에서 이씨에 대해 ‘얼굴이 성형수술이다. 술자리에서 쓰러졌는데 팬티까지 다봤다. 덤벙댄다’고 했고, C씨는 ‘부장님께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고, ‘너도 진급하려면 치마 입으면서 섹시미를 어필하라’고 말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 신고 이후 B, C씨는 이를 부정하며 반소를 제기했다. B씨는 오히려 이씨가 2020년 회식 자리에서 자신을 성추행했고 인사청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C씨 역시 “해당 발언을 한 사실이 없고 거짓말 탐지기 검사까지 받았다”며 “이씨가 무고 가해자라는 사실은 앞으로 소송 등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청은 B씨에 대해 아직 징계를 내리지 않았고, C씨에 대해서는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렸다. A씨 징계가 감경되자 C씨도 징계에 대한 항고 심사를 신청했으며 B, C씨는 이씨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B, C씨의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인사 청탁이나 신체 접촉은 있지도 않은 일이고 B씨가 주장하는 강제추행은 2020년 군 검찰에서 무혐의로 종결한 사건”이라며 “4년 전에 무혐의가 난 일을 다시 끌고 와 민사 소송을 제기한다는 건 보복성 고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군대 내에서 문제 제기한 사람만 배제되고, 무고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답답합니다. 제가 목숨을 끊어야 제대로 조사할 것이란 생각까지 듭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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