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현장온도 측정하는데... 펄펄 끓는 건설 현장과 '탁상행정'

최아름 기자 2024. 7. 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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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폭염법 제정 원하는 현장
권고 수준인 예방 가이드라인
온도 측정도 기상청 기준
현장과 평균 6도 차이 나기도
폭염 노동 문제 바라보는 美
현장 온도 확인 중요시 여겨
현장 측정 도입 어렵다는 韓

여름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체감온도에 따라 우체부의 실외 배송 활동을 금지할 수 있는 고시를 마련했다. 하지만 건설 사업장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온열질환 예방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권고 수준이어서 강제성이 없다. 예방가이드라인의 온도 기준이 '건설현장'이 아니란 점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2023년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환자는 전년 대비 80.2% 증가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매년 여름이 당신 인생에 남아 있는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This will be the coolest summer for the rest of your life.)" NASA의 기후위기과학자 피터 칼무스가 2023년 8월 SNS에 남긴 글이다. 기후위기가 갈수록 극단으로 향하고 있다. 이상기후에서 비롯된 위험에 직접 노출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3년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 사람은 2818명이었다. 2022년에 비해 80.2%나 늘었다. 2023년의 여름 기온이 2022년보다 높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상청이 집계한 2023년 6~8월 여름 평균 기온은 24.7도로 2022년보다 0.2도 높았다. 최고 기온도 2022년 28.8도에서 2023년 29.3도로 올랐다. 이런 변화가 온열질환자를 더 발생시킨 셈이다.

온열질환의 대다수는 '밖'에서 발생했다. 10명 중 8명이 실외활동 중 쓰러졌다. 직업으로 따지면 단순 노무 종사자가 21.0%로 가장 많았다. 여기에는 건설 노동자가 포함된다. 건설현장이 더위에 취약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정부 정책도 이미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건설현장의 체감온도가 높아질 때마다 노동자에게 단계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권장한다. 온열질환 예방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도, 35도, 38도에 이르면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더 오래 쉬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권고는 별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체감온도' 기준 때문이다. 온열질환 예방가이드라인에서 말하는 체감온도는 매일 기상청이 예보하는 온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다음날 기온에 따라 체감온도가 33도, 35도, 38도를 넘을 것으로 보일 때 온열질환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거다.

문제는 측정 기준이다. 기상청이 예보하는 체감온도는 기상청이 설치한 장비로 측정해서 발표한다. 실제 건설현장과는 위치가 다르다는 거다. 기상청 장비가 건설현장보다 좀 더 서늘한 곳에 있다면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실제 측정 사례도 있다. 지난 6월 1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023년 7월 11일~8월 7일 31개 건설현장에서 측정한 체감온도를 발표했다. 체감온도는 습도와 기온을 조합해서 계산했는데, 기상청이 예상한 체감온도와 건설현장의 체감온도는 평균 6.2도 차이가 있었다.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의 체감온도 단계가 33도, 35도, 38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 6.2도 간극은 2단계 차이에 달한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실내 사업장은 고용노동부 지침으로 사업주가 온ㆍ습도 관리를 하고 그에 따른 건강 장해를 예방한다"며 "건설현장은 사업주의 온습도 관리 의무가 없어 노동자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온열질환 예방가이드에 따라 건설 노동자들이 휴식을 제때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3년 여름 온열질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공교롭게도 노동시간과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이 겹친다. 하지만 건설업의 특성상 모든 노동자가 쉴 순 없다.

가령, 콘크리트 타설 중이라면, 중지하거나 대기하는 게 불가능하다. 체감온도 33도를 넘어서는 날에도 콘크리트 타설은 멈출 수 없다. 번갈아 가며 일하고 휴식할 수 있다면 건설 노동자에게도 좋겠지만, 모든 현장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건비 때문이다. 온열질환을 피하기 위해 휴식을 늘리면 공사기간을 늘리거나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장 온도만이라도 제대로 측정해서 예방가이드라인에 적용할 순 없을까.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발생한 열 관련 사망의 80%가 야외 작업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ㆍ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 tration)은 현장에서 지켜야 할 규정을 배포했다.

이 기준의 핵심은 현장에서 측정하는 온도다. OSHA는 해군 훈련 때도 사용하는 더위체감지수(WBGT) 측정기를 건설현장에서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기상 관측소와 현장의 온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거다.

OSHA는 보고서를 통해 "관측소의 기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지역 일기예보가 유용할 수 있지만 특정 작업장의 조건은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며 "작업장의 열은 구름양, 습도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잠재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자료 | 민주노총 측정치]

OSHA는 한발 더 나아가 관련 규정에 강제성을 넣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사업주의 현장 온도 측정과 정기적 기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고용노동부는 '현장 온도 측정'을 의무화하는 강제규정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난색을 내비쳤다. 실내 작업장에는 온도 측정의 의무가 있지만 이를 야외 현장으로 확대해 감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업주가 대비할 수 있도록 하루 전에 예보를 발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단 거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같은 현장이라 하더라도 콘크리트 타설 노동자와 실내 작업 노동자가 느끼는 온도는 다를 것"이라며 "일괄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자율에 맡겨도 충분하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럴까. 뙤약볕 건설현장에 가보지도 않은 이들의 탁상공론의 결과물 아닐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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