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몰락…조기총선 승부수에도 극우 기세 못 꺾었다[딥포커스]

강민경 기자 2024. 7. 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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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와 극좌 득세하는 '극단의 시대' 열릴 우려
9일(현지시간) 파리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의 훼손된 선거 포스터가 보인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승부수였던 조기 총선이 자충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30일(현지시간) 1차 투표 결과 극우 야당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기록할 것이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다.

여론조사업체 엘라베의 출구조사 결과 RN은 33%를 득표해 하원 의석 577석 중 260~310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2차 투표 결과에 따라 RN이 과반을 차지하면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극우 총리가 배출된다.

프랑스 AFP통신은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 참패를 계기로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감행한 마크롱 대통령의 선택이 '극단의 시대'를 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회 선거 참패를 계기로 던진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가 도리어 극우가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을 계기를 제공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에 위협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프랑스 총선 투표가 30일(현지시간) 오전 8시 총 577개 선거구에서 시작됐다. 투표 시간은 오후 6시까지며 파리 등 대도시에선 오후 8시까지 진행된다. 2024.6.30. ⓒ AFP=뉴스1 ⓒ News1 이창규 기자

◇선거 전단에서 사라진 마크롱의 얼굴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르네상스의 선거 운동 전단과 포스터에 더는 그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한때 개혁의 얼굴이었던 그가 부끄러운 존재로 추락한 것이다.

진보 매체 리베라시옹의 편집장인 세르주 줄리는 "마크롱이 의회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해산했다"고 지적했고, 중도 좌파의 떠오르는 별인 사회당의 라파엘 글뤽스만 의원은 "마크롱주의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롱주의의 눈부신 부상과 몰락'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낙관론은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전했다.

2017년 르펜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를 양극단의 마수에서 해방하겠다는 기치를 걸고 승승장구했다. 그는 프랑스의 경제와 국제적 위상을 되살리겠다면서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의 '제3의 길'처럼 좌우에서 좋은 정책을 취사선택하는 실용주의를 추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의 사이렌 소리보다는 냉정한 이성을 선택하길 바랐지만, 그 기대가 어긋났다는 게 FT의 분석이다. 그의 오랜 고문은 FT 인터뷰에서 "(마크롱은) 순수한 이성주의자이며 전혀 감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분석은 프랑스 유권자들의 분노하고 경멸하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했다.

7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마크롱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 반대 대규모 집회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세기의 파괴자 마크롱’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2023.3.8/뉴스1 ⓒ News1 이준성 기자

◇마크롱 경제 성과 뚜렷한데도…유권자들 등 돌린 이유는

마크롱 대통령의 시장 친화 정책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노동법을 개정해 기업의 고용과 해고를 쉽게 했고, 복지 재원이었던 부유세를 축소해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이 생기기도 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1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프랑스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올랐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면서 수많은 기술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뚜렷한 실적에도 유권자들은 되레 반감을 품었다. 기득권을 옹호하는 그의 정책은 2018년 '노란 조끼 운동'을 촉발했다. 2020년에는 중학교 역사 교사 사무엘 파티가 이슬람 신자에게 참수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치솟았고 이는 극우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물가가 치솟고 에너지 쇼크가 발생해 프랑스 유권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폭풍우를 능숙하게 헤쳐 나갔지만, 그가 집권 초기 내놓았던 개혁 정책은 대부분 유명무실해졌다.

독단적인 국정 운영 방식도 인기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측근들과도 권력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는다. 한때 그의 내각 구성원이었던 한 정치인은 "정부는 팀이어야 하는데 (마크롱 정부에) 팀은 없었다. 그는 장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크롱의 오랜 고문이었다는 익명의 한 소식통은 FT에 "의회 해산은 빙판길에서 너무 빨리 운전하는 것과 같았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RN의 승리가 전화위복이 될 것이란 희망찬 분석도 나온다. 국정 경험이 없는 RN이 총리를 배출하더라도 큰 실수를 해서 유권자들이 극우에 등을 돌리면, 2027년 대통령 선거에서 르펜이 당선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AFP통신은 "그에게 투표했던 젊은 중도주의자들이 점점 우경화되고 있다"며 "다른 극단 세력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지적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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