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같지만, 대충 살아요” … 3색으로 버무린 ‘청춘의 자화상’

서종민 기자 2024. 7. 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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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일 공연 ‘돌고돌고’ 90년대생 공동창작자 3인
‘국악 신동’ 유태평양
“‘쟤네들 이야기’라고 지나칠 수 없게 만들어”
‘거문고 천재’ 박다울
“노력해도 집 못사는 현실, 그 덧없음이 청년들 모습”
‘조형예술 신예’ 류성실
“사계절 변함없는 낚시꾼, 무심히 할일하는 모습 구현”
유태평양(사진 왼쪽)은 현재 국립창극단의 중추 역할을 하며 국악계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박다울(가운데)은 거문고의 전통적 연주에 머물지 않고 밴드 활동 등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류성실은 짧은 경력에도 2021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고통이 없는 상상 속 세상으로 배가 출발했다. 그 뱃전에 묶인 밧줄이 수면에 던져졌다. 몸을 던져 밧줄을 붙든 이를 불가(佛家)에서 ‘악착(齷齪)동자’라고 불렀다. 매달려 있던 동자는 극락 따위는 내던져버리고 집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을까.

“악착같이 살아. 대충 살아.”

그 동자가 되뇌었을지 모를 이 말이 젊은 예술가 3명의 입에서 나왔다. 판소리 흥부가의 최연소 완창 등 ‘국악 신동’으로 일찌감치 이름을 알린 1992년생 유태평양. 거문고 ‘천재 연주자’로 대중에게 익숙한 동갑내기 박다울. 국악계 대표 주자로 꼽히는 두 사람인데 그간 한 무대에 선 적이 없다는 것은 의외였다. 거기다 파격적 미디어아트 작업으로 미술계 주목을 받으며 제19회 에르메스재단 상을 최연소로 받은 1993년생 작가 류성실이 가세했다.

국악과 현대미술 ‘이종결합’ 무대가 오는 11∼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공연자가 요즘 말하는 ‘힙한’ MZ세대인데, 서로 개성이 뚜렷한 세 사람이 한 무대에서 만나니 이보다 더한 파격은 없다. 공연에 앞서 지난달 24일 저녁 서울 중구 묵정동의 한 연습실에서 이들을 만났다. 공연 소재는 ‘청춘’이다.

우선 유태평양·박다울이 지난해 12월 처음 만났고 그 자리에서 찜닭을 먹다가 청춘 얘기로 통했다고 한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작업하다가 보면 자정을 넘기고 새벽 한두 시쯤 집에 돌아간다. 배부른 소리겠지만, 다울이 하고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고 우스개를 자주 주고받는다.”

인터뷰 당일은 유태평양이 속한 국립창극단 공연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그는 “그러다가 ‘아, 아니야. 감사하면서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데 내가 아둔했다’고 하면서 또 열심히 산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이에 류성실은 “악착같이 하는 삶의 태도가 어쩌면 학습된 게 아닐지 생각할 때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그는 “유난히 한국에서 잘 보이는 모습 같다”며 “나쁘게 말하면 사람이 땔감처럼 쓰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 류성실의 합류는 지난 3월 성사됐다. 소위 ‘젊은 국악인’의 협업 사례들을 보며 색다른 시도를 고민하고 있던 조휘영 세종문화회관 PD의 제안이었다.

류성실이 디자인한 무대 위에서 유태평양이 노래를 하고 박다울은 연주하는 구도가 됐다. 잠자코 두 사람 말을 듣던 박다울은 “결국 자본주의하고 엮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악착같이 해도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 힘든 현실, 거기서 찾아오는 덧없는 기분이 다 청년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3명이 서로 구속하지 않는 선에서 공동 창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박다울은 사회에 대한 선명한 문제의식을 감추지 않았다. 유태평양은 그 과정에서 청년에 대한 일반화를 하지 않을지 우려하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 중간 자리에 앉은 류성실은 스케치를 하듯 메모하다가 생각나는 답변이 나오면 입을 열었다.

2022년 7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ㄱㅓㅁㅜㄴㄱㅗ’(거문고) 공연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박다울.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 같은 ‘느슨한 연대’가 곧바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박다울은 “청년 문제에 대한 표현을 다소 직접적으로 할지 아니면 ‘거름망 체질’을 좀 하고 공연할지에 대한 얘기가 오래 걸렸다”고 했다. ‘악착가’ ‘사철가’ 등 창작곡들로 공연을 준비한 그는 “악착같이 사는 와중 ‘대충 살자’라는 생각이 스치는 이중적인 이미지로 멜로디를 우선 만들었고, 조금씩 수정하면서 가사를 붙였다”고 답했다. 또 “하나의 극이라고 생각하고 음악 작업을 했다”고 강조했다. 유태평양은 “무대를 만든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단순히 ‘쟤들 이야기’로 지나칠 수는 없는 무대”라고 표현했다. 공연의 이름은 ‘돌고 돌고’라고 정했다.

작가 류성실의 개성 뚜렷한 작품 활동이 돋보였던 2019년 ‘나 안 죽었다!’. 류성실 제공

이 테마를 듣고 나서 합류를 결심했던 류성실은 사계절의 순환을 무대에서 구현하기로 했다. 네 개 면의 무대를 감싼 커튼, 그 위에서 무심하게 낚시하고 있는 한 인물 등이 포인트. 낚시 이미지는 어릴 적 삼촌의 취미 생활을 봤던 기억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4시간 내내 삼촌이 가만히 앉아 있어서 정말 재미가 없었다. 정적으로 무심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상상했는데, 무대 구상을 고민하면서 그 기억이 났다.” 관객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인물의 위치를 높이 잡는 식으로 전달력을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의 전작 ‘나 안 죽었다!’(2019년) 등이 모티프로 활용됐고 무대 디자이너 신나경이 무대의 구현 작업을 도왔다.

“심지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공연의 메시지는 메시지일 뿐이고, 그것을 각자의 판단에서, 각자의 시선에서 받아들이는 거죠.” 박다울의 말에 유태평양이 “그렇지”라고 거들었다.

이번 공연의 노래 가사 중 ‘두 가지의 별’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우주 속 먼지라는 별에다가 악착같이 살지, 대충 살지 두 가지의 길을 빗댔다. 유태평양은 “우리는 욕망을 갖고 있잖나. 근데 또 인간은 반대로 여유로워지고 싶은 속성도 있다”며 “그 두 가지를 과연 다 충족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열심히 살고 있고, 살겠습니다”라는 류성실의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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