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덩어리 아니고 ‘인간이라서 참 다행이야’ … 행복의 운동장을 넓히는 건 ‘나’ [주철환의 음악동네]

2024. 7. 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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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자네가 한번 연출해봐." 소름이 돋은 건 그게 대학가요제였기 때문이다.

원곡자가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자인 신해철(팀이름 무한궤도, 노래 제목 '그대에게')이라는 사실이 나를 다시 한 번 소름 돋게 했다.

이미 받은 축복(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추가해서 일어나지 않은 일(장난감이나 돌덩어리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까지 편입시킨다면 행복의 운동장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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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악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올해는 자네가 한번 연출해봐.” 소름이 돋은 건 그게 대학가요제였기 때문이다. 30년 전 이맘때 월요일 아침이었다. 국장실을 나오며 깨달았다. 감사와 행복은 동의어구나. 1994년 7월부터 10월까지 매일매일 새로웠다.

당장 예고편 제작에 착수했다. 참가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일정을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 도입부에 자막으로 구호 하나를 내걸었다. ‘건강한 시대정신 참신한 실험정신’.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물으면 이렇게 응답했을 거다. “그걸 노래로 불러 세상을 바꾸란 말이야.”

폭우 속에서 생방송으로 치러진 그해 대상 수상자는 영남대학교 학생 이한철(노래 제목 ‘껍질을 깨고’)이었다. ‘아무도 날 그냥 두지 않아 그동안 나도 많이 참았어 하지만 이제 나는 달라졌어’.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마침 그해에 ‘껍질의 파괴’라는 곡이 먼저 발표됐다. 원곡자가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자인 신해철(팀이름 무한궤도, 노래 제목 ‘그대에게’)이라는 사실이 나를 다시 한 번 소름 돋게 했다.

신해철은 록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1991)했는데 팀이름(New EXperiment Team·새로운 실험을 하는 팀)처럼 문제의식을 우회 없이 드러냈다.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긴다.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껍질의 파괴’). 노랫말이라기보다 일종의 교육개혁 선언문 같지 않은가.

그래서 어쩌라고. 학생들은 자퇴하고 학교는 문을 닫으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 부모이건 교사이건 학생이건 생각 없이 살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누가 깔아준 대로만 걸어가면 깔때기 속을 맴돌다 죽는다. 모범생도 있고 모험생도 있어야 건강한 학교다. 교사는 껍질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벗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대학가요제가 왜 사라졌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스타가 나오지 않고 시청률도 잘 나오지 않아서 없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생의 창작곡에만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완고한 규정 탓도 없지 않다(초창기 땐 일부 예외를 인정했다). 대학가요제에서 가창력은 부수적이고 노래가 품은 청년 정신, 실험 정신이 대중의 기호와 맞아떨어졌을 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문화는 대항문화(소금)여야 하는데 지나치게 대중문화(설탕) 쪽으로 가버린 거다.

문을 닫았다고 맥까지 실종된 건 아니다. 악뮤(AKMU·악동뮤지션·사진)가 2016년에 발표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는 실험성이 돋보이는 노래다. ‘인간이라서 참 다행이야 장난감으로 태어났다면 혼자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중략) 돌덩어리로 태어났다면 이리저리 치이고 굴러 떼굴떼굴 떨어지고 말 텐데’. 싱어송라이터인 이찬혁은 초·중·고를 모두 검정고시로 마쳤다. 예전 같았으면 어떡해서든 진학해서 대학가요제에 나가라고 권했을지도 모른다. 대체 불가의 창의성과 자신감을 가진 그는 스스로 선택한 대학(해병대 1226기)을 마치고 무대로 돌아왔다.

장난감처럼 사람을 대하는 건 부당한 일이며 사랑받으려고 장난감이 되는 건 불행한 일이다.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을 때 쓰는 말이 ‘다행’이다. 헤아려보면 나의 뜻뿐 아니라 남(부모, 교사, 나아가 신)의 뜻도 포함해야 ‘다행’이 된다. 이미 받은 축복(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추가해서 일어나지 않은 일(장난감이나 돌덩어리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까지 편입시킨다면 행복의 운동장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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