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보수당 1906년 이후 최악 지지층 붕괴 예측 나와

조은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2024. 7.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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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의 유로 프리즘] 인기 급락… 15년 집권 꿈 무너지나

● 극우정당 대표 “보수당 스스로 목숨 끊었다”
● 수낵 총리, 승리하면 30조 세금 감면 공약했지만…
● 전·현직 보수당 총리, 모두 민심 잃어
● 英 경기침체 원흉 브렉시트도 보수당이 주도

영국 보수당 대표인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운데 파란색 넥타이) 부부와 보수당 관계자들이 7월 4일 총선을 앞두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수낵 총리 X 캡쳐]
영국 집권 보수당의 리시 수낵(44) 총리가 7월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히며 영국이 술렁이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데 보수당이 2010년 이후 14년째 총리를 배출하며 집권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은 야당인 노동당에 2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

수낵 총리가 위기 속에 조기 총선을 발표한 까닭은 '그나마 지금이 최악은 아니다'란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인기가 더 떨어지기 전에 총선을 치르자는 것이다. 그간 계속 저조하던 경제 지표들이 마침 호전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낵 총리가 조기 총선을 발표한 5월 22일엔 4월 소비자물가가 발표됐는데, 전년 대비 2.3% 오른 정도에 그쳐 오름 폭이 2021년 7월 이후 최저치였다. 하지만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조기 총선은 '조율되지 않은 발표'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조기 총선을 거듭 주장했던 야당(노동당)의 키어 스타이머(62) 대표는 이번 총선을 집권의 호기로 보고 있다. 그는 수낵 총리의 조기 총선 발표 직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서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때"라며 "그들(보수당)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19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보수당은 그간 영국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굳건하게 영국을 지켰다. 이젠 역대 최악의 참패 공포로 흔들리고 있는 보수당을 영국인들은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증세' 외치던 수낵, '감세' 공약

영국 안팎에서 보수당의 참패를 예견하는 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7월 4일 조기 총선에서 보수당이 100년 만에 가장 많은 의석수를 잃는 참패를 기록할 것이라는 조사가 나왔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6월 초 발표한 총선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하원 의석 650석 가운데 보수당은 140석을 얻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직전 총선 때인 2019년 365석에 비해 225석이나 줄어든 수치다.

246석을 잃은 1906년 총선 이후 최악의 성적이 될 수 있다. 유고브는 "1906년 이후 보수당 지지의 가장 큰 붕괴가 될 것"이라며 "보수당이 런던, 웨일스 등 많은 지역에서 거의 전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의 여론조사 결과는 보수당에 더 절망적이다. 폴리티코는 보수당이 71~180석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낙관적 수치마저 직전 총선인 2019년 365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미 패색이 짙은 보수당에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영국의 극우 정치인 니겔 파라지 개혁당 대표의 귀환이다. 과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주장하며 '브렉시트당'을 이끌던 그가 정계에서 은퇴했다가 6월 초 개혁당 대표로 복귀했다. 우파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당인 개혁당은 보수당 유권자들을 일부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보수당 표를 끌어오기 위해 보수당을 맹공격하고 있다. 최근 폴리티코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들(보수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보수당이 14년간 실정(失政)을 거듭하며 총선 실패가 확실해졌다는 얘기다.

여러 악재로 곤란해진 수낵 총리는 '벼락치기 총선 캠페인'에 들어갔다. 한 달도 안 남은 총선을 앞두고 여러 공약을 쏟아낸다. 나라를 불문하고 선거공약 '단골 메뉴'인 감세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는 6월 11일 선언문을 통해 보수당이 승리하면 2030년까지 170억 파운드(약 30조 원)의 세금을 감면하겠다고 약속했다.

감세 공약은 수낵 총리의 초심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2022년 10월 총리 확정 뒤 첫 대국민 연설에서 "정부는 부채 문제를 다음 세대에 넘기지 않으려 한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것"이라며 증세와 재정지출 삭감을 예고한 바 있다. 취임 무렵 내세운 정책을 뒤집을 정도로 총선 승리에 급급해졌다.

다급해진 수낵 총리는 실수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끄는 전환점이 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때다. 상륙작전 무대였던 프랑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 6월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당시 연합국 수장들이 모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참석했다.

수낵 총리는 참석하긴 했지만 '조퇴'를 해버렸다. 영국으로 얼른 돌아간 그는 방송사로 달려갔다. 총선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선거에 집착한 나머지 국제 무대에서 예의를 갖추질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낵 총리는 결국 그 다음 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돌이켜 보니 프랑스에 더 오래 머물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사과한다"고 적었다.

2022년 이후 총리 거친 인물만 3명

보수당은 영국의 찬란한 역사를 쓴 정당이다. 제국주의 시대 이집트로부터 수에즈운하 주식을 사들여 동방 항로를 확보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1874~1880년 재임), 제2차 세계대전 때 총리로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1940~1945년, 1951~1955년 재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장수 총리이던 마거릿 대처(1979~1990년 재임)가 모두 보수당에서 배출됐다.

그랬던 보수당이 망가진 이유로는 수장들의 무능력함이 자주 꼽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수당은 정부가 진정으로 보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유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도 유권자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무능한 탓에 임기를 못 채우고 퇴진한 총리가 최근 수두룩했다. 2022년엔 총리 자리를 거친 사람이 세 명이나 된다. 집권 약 3년 만인 2022년 7월 전격 사퇴 의사를 발표한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 등 정책적 과실은 물론이고 개인적 비위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총리관저에서 방역 지침을 어기고 술잔치를 벌인 '파티게이트'가 사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2022년 10월 20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에서 총리직을 사임한다고 밝히고 있다.[ AP뉴시스]
이로부터 3개월 뒤 총리직을 이어받은 리즈 트러스 당시 총리는 '제2의 마거릿 대처'로 불리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오히려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란 오명을 남기고 떠났다. 취임한 지 44일 만에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감세로 나라 곳간이 안정적으로 채워지질 않으면 나라가 돈을 잘 갚기가 힘들다. 고금리 탓에 가뜩이나 불어난 국가 부채가 감세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단 우려가 커졌다. 영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며 국채금리는 폭등(국채 가격은 하락)하고, 파운드화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트러스 전 총리에 이어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한 수낵 총리도 영국 사상 첫 유색인종 총리로 관심을 모았다. 그는 임기 중 물가 등 경제지표를 개선했지만 각종 말실수로 국민의 노여움을 샀다. 안타깝게 살해된 10대 트랜스젠더를 두고 "남성 성기를 가진 여성"이라며 농담을 해 문제가 됐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수낵 총리는 정치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사과를 거부했고, 총리실 대변인은 오히려 그의 행동이 합법적이라고 말했다"며 "유권자들은 물론 보수당 의원들도 영국의 억만장자 총리가 왜 일반 국민과 접촉하질 않는지 궁금해지게 됐다"고 전했다. 총리가 민의를 읽지도 못하고, 읽을 의지도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마침 경제난도 보수당을 궁지로 몰았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2021년 8.7%에서 2022년 4.3%로 반토막 나더니 2023년 0.1%로 주저앉았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 연 11.1%로, 약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영국의 생산성은 미국에 비해 더욱 떨어졌다. 심지어 유로 지역 19개국에 추월당하기도 했다.

경제 여건은 기본적으로 영국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세계적 현상이다. 2020년 코로나19 봉쇄로 여러 국가의 공공과 민간 부채가 늘어 경제 활력이 떨어졌다. 2022년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 등 각종 물가가 올랐다.

하지만 보수당은 경제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경제가 심각해졌다는 지적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수당 내각은 당초 2021~2026년 공공주택 건설을 위해 예산 73억 파운드(약 12조8000억 원)를 배정했다. 그런데 도리어 담당 부처는 지난해 19억 파운드를 쓰지 않고 재무부에 반납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선거에 이용된 브렉시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2022년 1월 25일 런던 도심에서 ‘영국의 가장 치명적인 변종, 존슨 변종’이란 피켓을 들어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를 비판하고 있다. [AP뉴시스]
특히 보수당이 주도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 악화에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로 EU와의 무역에서 출입국 관리, 세관 검사, 동식물 검역 등 비관세 장벽이 많이 생겨 무역에 차질이 생겼다. 영국 상공회의소가 2022년 12월 사업체 1168곳을 조사한 결과 77%가 "브렉시트가 매출을 늘리거나 사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조너선 포르테스 킹스 칼리지 런던 교수는 유럽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CEPR) 기고에서 "브렉시트는 영국 상품 수출에 크고 지속적이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소규모 기업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골칫덩이가 된 브렉시트는 2015년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재집권을 위해 총선에서 꺼낸 카드다. 당시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이민자가 증가해 영국민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영국이 EU와 독립적으로 정책을 펴는 게 유리하다"며 영국의 이탈을 주장했다.

이에 캐머런 총리는 "영국 국민은 유럽에 대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며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를 약속했다. 정작 그는 개인적으로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면서도 브렉시트 선택권을 국민에게 준다는 명분으로 투표를 실시했다.

이에 대해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를 선거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많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캐머런 총리는 보수당을 관리하고, 브렉시트를 주창한 영국 독립당을 약화시키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이용했다"고 꼬집었다.

실제 당시 유권자들은 브렉시트를 시급한 현안으로 보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영국 BBC방송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둔 조사에 따르면 유럽 문제(브렉시트)는 처음에 대중이 우려한 사항 가운데 매우 낮은 순위에 있었다"고 전했다. 국민들은 브렉시트를 심각한 문제로 삼지 않았는데도 정치인들이 브렉시트 투표로 대중의 환심을 산 셈이다.

얼떨결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선 결국 탈퇴 51.9%, 잔류 48.1%로 브렉시트가 결정됐다. 그 뒤엔 후속 절차가 차질을 빚다가 2020년 1월 비로소 공식 발효됐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브렉시트는 과거에 대한 향수 등 영국 정치의 나쁜 경향을 보여줬고,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은 전염병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경제 충격에 대비할 수 없게 됐다"고 평했다.

보수당이 선거에서 참패하면 어떤 길을 가게 될지에 대한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보수당은 개혁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포퓰리즘으로 개편된 보수당 내부에서 파라지(극우) 역할을 할 사람을 찾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조은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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