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시드’ 이끄는 엄에스더씨 “받은 만큼 돌려줘야죠”… 10년째 도시락 봉사 [심층기획-‘먼저 온 통일’ 탈북민]

김예진 2024. 7. 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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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체 ‘유니시드’의 나눔 현장 (상)
서울역 쪽방촌 돌며 독거노인 찾아
“더불어 사는 삶… 전쟁 없는 세상 꿈꿔”
2014년 노숙인들에 도시락 봉사 시작
“탈북민들이 어려운 남한 사람 돕는다”
소문 퍼져 참여자 늘고 재단까지 설립
한 달에 한 번 도시락 봉사·휴먼북 행사
“탈북 과정 받은 도움 돌려주고 싶어 해
北·탈북민 이해… 통일 교육 좋은 기회”
눈부신 밖과 달리 동굴처럼 깜깜했다. 넘어지기 쉬운 가파르고 검은 계단. 그 위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두려움에 조마조마하다. “똑똑” 노크 한 번, 기다렸다 다시 문을 두드리며 “계세요?” 묻자, “끼익”하고 문이 열린다. “봉사단체 유니시드에서 왔습니다. 덥지 않으세요? 과일 도시락 좀 드릴까요?” 문 뒤로 누워 있던 독거노인이 일어나지도 못한 채 “고맙습니다”하며 손을 내민다. 체리, 수박, 바나나, 키위, 블루베리. ‘빨주노초파’의 무지개색을 한 과일 도시락이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 문은 열리지 않았고 어느 문은 아예 두드리지 않았다. 반으로 접힌 휠체어가 놓인 어느 방 앞을 노크 없이 지나치며 유니시드의 한 회원이 말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분이 살던 방이에요. 장애인이셨어요.” 휠체어는 유품이었다.

어느 문 뒤로는 라디오만 켜놓은 채 일어나지 않는 노인이, 어느 문 뒤에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이 쉬고 있었다. 어느 문 뒤로는 쪽방 안에서도 할아버지를 보러 온 부녀가 비좁은 방 안에 밀착해 앉아 대화 중이었다. 어린 손녀는 어른들 틈을 비집고 신나게 방방 뛰었다. 기자와 동행한 회원은 “여기서 삶을 마무리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지만, 삶은 또 어떻게든 대대로 이어졌다.
유니시드의 ‘휴먼북’ 행사 참석자들이 지난 5월 15일 서울 용산구의 한 교회에 모여서 탈북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난 6월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뒤 쪽방촌에서 탈북민 엄에스더(39)씨가 이끄는 봉사단체 유니시드가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 나눔 봉사활동을 하는 현장이다.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무지개가 뜨는 풍경이었다.

유니시드는 탈북민과 한국 원주민이 함께 섞여 있는 봉사단체다. 2014년 엄씨와 또래 탈북민 3명이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준 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인조고기밥, 두부밥 등을 만들어 와 나눴다고 한다.

인조고기밥, 두부밥은 장마당에서 퍼진 북한판 서민 음식이다. 인조고기밥은 콩에서 기름을 뽑고 남은 부산물을 재료로 한 일종의 콩고기밥, 두부밥은 튀긴 두부 사이에 밥을 넣은 유부초밥 비슷한 형태의 음식이다. 한국의 김밥처럼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는 일종의 길거리 음식이다. 엄씨는 “처음엔 우리가 그리워하는 음식을 800개 해왔는데 그다지 맛있게 드시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이게 우리한테나 맛있는 거지 그분들이 그리워하는 건 집밥이었어요. 선물은 받는 사람이 좋아야 하잖아요. 남한식으로 집밥을 해와서 도시락을 나누다가 보관이 어려운 문제를 알게 됐고, 또 이분들이 과일을 거의 못 드신다고 해 과일로 바꿨죠”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렇게 10년간 이어졌다.
유니시드의 자원봉사 참여자들이 지난 5월 15일 과일 도시락을 싸 들고 쪽방촌 독거 노인들을 찾아가고 있다. 김예진 기자
엄씨의 동생이 기자에게 다가와 귀띔했다. “언니는 이 일을 하려고 길에서 액세서리 팔고 경마장에서 푸드트럭을 했어요. 언니가 중국에 살 때 길에서 팔, 다리가 잘린 걸인 모습에서 생의 의지 같은 걸 봤대요. 그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에 중국 복지관에 갔는데, 거기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 거예요. 우린 거기서 불법체류자니까 신분증이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 와서 봉사하게 된 거죠.” 스무살쯤 된 여성 탈북민이 언제 중국 공안에 단속돼 강제 북송당할지 모르는 처지에도 남을 도우려 했다는 이야기다.

‘탈북민이 서울역에서 노숙자들한테 봉사활동을 한대.’ 자기도 어려울 탈북민이 더 어려운 한국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참여자가 늘고 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백승수씨는 엄씨 사연을 듣고 후원하다 재단 이사장까지 맡은 경우다. “많은 탈북민이 자신도 어렵게 살아왔고 탈북 과정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자신도 꼭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탈북 1세대는 당장 전문적인 어떤 능력은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어 하죠.”

유니시드는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을 ‘북향민’,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을 ‘남향민’이라고 부른다. 한 달에 한 번씩 도시락 봉사를 하고 봉사 후엔 탈북민들의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휴먼북’ 행사를 가진다.
유니시드의 도시락 나눔 봉사활동 참가자들이 2024년 초 서울 용산구 쪽방촌 인근 교회에 모여 도시락을 만들고 있는 모습. 유니시드 블로그
이날 도시락 배달 활동 신청을 한 20명 남짓 사람들이 쪽방촌 방문 두 시간 전, 용산구 한 교회 안 식당에서 모여 과일을 포장했다. 누구는 수박, 바나나 껍질에서 스티커를 뗐고 누구는 주방에서 과일을 씻고 누구는 과일을 썰었고 누구는 도시락을 포장했다. 저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연스레 분업했다. 손들이 바삐 움직인 덕에 두 시간 만에 200개 과일 도시락을 만들었다. 도시락엔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면서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되길 소망합니다. 언젠가 이산가족이 없고 전쟁 위협이 없는 평화의 한반도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미래를 꿈꿉니다”라고 쓴 단체 소개 글도 붙였다.

완성된 도시락을 들고 쪽방촌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은 익숙한 듯 구역을 나누고 2, 3인이 한 조가 돼 흩어졌다. 도시락을 돌리고 교회로 돌아가는 길에 한 주민이 엄씨를 알은체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50대 남성으로 보이는 그는 엄씨가 하고 있던 앞치마를 가리키며 “나 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엄씨가 선뜻 풀어준 앞치마에는 ‘유니시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앞치마가 유니폼인 셈이었다. 엄씨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나도 유니폼 하나 달라’는 말로 표현한 듯 보였다.

도시락을 만들던 식당 한쪽에는 참여자들이 먹을 간식이 놓여 있었다. 익숙한 한국 과자들과 함께 북한식 옥수수 뻥튀기인 ‘퐁퐁이’도 놓였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와 간단한 저녁을 먹을 땐 오이냉국에 두부밥 등 남북한 ‘소울푸드’가 함께 차려졌다. 7년째 회원인 ‘남향민’ 김모씨에게 참여 계기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얘기 듣고 감동받아서 합류했어요. 자기 살기도 어려울 탈북민이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돕고 있다니.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네? 이거 같이해야겠다 싶었죠. 북한과 탈북민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여긴 현장이잖아요. 청년들이나 남한 사람들이 굉장히 막연하게 생각하고 두려움 내지는 이상한 감정과 인식, 그동안 이념 체제나 남북관계에 의해서 왜곡된 게 많다 보니까, 그런 시각들이 없어지는 좋은 기회예요. 통일교육으로 이만한 게 없죠.”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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