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경제폭망'론의 유혹

최훈길 2024. 7.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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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누구나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국 경제에 큰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기사에 누가 관심을 가겠는가? 반면 기사 제목에 ‘위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누구든 클릭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국민들이 망국론(亡國論)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자신도 어려워질 수 있기에 기사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쩍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주장하는 세객(說客)들이 많아졌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구독률이 보장되는 그러한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국 경제가 망하는 내용도 다양하다.

우선 가계부채를 많이 언급한다. 근거는 국민총생산(GDP)보다 가계부채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계부채가 많은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 가계부채/GDP 비율이 100%를 넘으면 망한다는 내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은행도 신경이 쓰였는지 최근 국민계정 통계를 손보면서 가계부채/GDP 비율을 100.4%에서 93.5%로 낮췄다.

가계부채가 국가 경제를 흔드는 경우는 금융 시스템의 위기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균적인 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급감해야 하고, 금융기관 대출의 상당 부분이 무수익 채권이 돼야 한다. 자신 있게 말하는데 지금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둘째, 이제는 들어 지겹기까지 한 부동산 시장의 대세 하락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의 붕괴, 영끌족의 몰락 등으로 이어지는 틀에 박힌 주장이다. 이 내용은 필자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계속 들어왔다. 100년 내 언젠가는 이 주장이 맞는 날이 오기는 할 거다.

셋째, 정말 웃기는 것은 작년 말부터 등장한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단 스태그플레이션의 정확한 정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 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 고물가)의 동시 진행이다. 여전히 고물가인 것은 알겠는데, 경기침체가 되려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나와야 한다. 그것도 2분기 연속 그래야 한다. 아마 어디서 1970년대 오일쇼크 때의 과거 사례를 주워들었던 내용을 가지고 적절히 각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올해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아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급등했으며, 연간 경제성장률은 최소 2%대 중후반은 나오리라는 것이 대부분 기관들의 예측이다. 또한 물가상승률도 기저효과로 올해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으로는 물가 안정 목표인 2% 선으로 하락할 것이다.

단위=억달러. (자료=한국은행)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외환보유액이 줄고 있는 사실에서 우리 국민들이 가장 큰 트라우마를 가지는 1990년대 말의 경험을 ‘소환’하려는 시도가 있다. 실제 외환보유고는 2021년 10월 4692억 달러를 정점으로 올해 5월 현재 4128억 달러로 많이 줄기는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4000억 달러가 붕괴되면 한국 경제가 제2의 외환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도대체 4000억 달러의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리고 외환보유액 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30년 전과 지금의 금융시스템, 국가 채권·채무의 장단기 구조 그리고 국내외 금융시장의 안정성 수준 등은 너무 다르다.

이러한 망국론의 공통점은 과거 특정한 경험을 그대로 가져와 이미 한국 경제의 운명은 정해졌다는 논리를 편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들어보면 상당히 일리(一理)가 있어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Ceteris Paribus)할 경우에만 그렇게 된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의 망국론이 경각심을 일으켜 준다는 차원에서는 새겨들을 만하다. 다만 그 경우에도 조금 더 세상을 균형 있게 보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어쨌거나 조회 수에 목말라 하는 이제 막 시장에 나온 새내기 저널리스트들에게 조언하자면, 기사 제목에 무조건 ‘한국 경제 위기’라는 단어를 넣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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