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바늘로 수놓은 자수의 매혹… “반복노동 고통만큼 큰 만족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물감과 붓으로 그린 회화부터 통조림 수프,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는 물론 인공지능(AI)이 만든 이미지까지.
'이것도 미술관에 넣을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 현대 미술관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운데 최근에는 실과 바늘로 만든 자수와 태피스트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국내외로 일고 있다.
'한국 근현대 자수'전에 삼베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작품 '무제' 등을 전시한 이강승 작가는 "처음에 소외된 장르이자 반복적 노동을 한다는 자수의 개념적 의미를 가져오고 싶었다"고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근현대자수’展
잊힌 역사 재조명 과정서 주목받아
“주제의식-테크닉 지니면 예술품 돼”
물감과 붓으로 그린 회화부터 통조림 수프,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는 물론 인공지능(AI)이 만든 이미지까지. ‘이것도 미술관에 넣을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 현대 미술관의 문턱을 넘나드는 가운데 최근에는 실과 바늘로 만든 자수와 태피스트리를 조명하는 움직임이 국내외로 일고 있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는 20세기 초반부터 현대까지 돌아보는 ‘짜인(Woven) 역사: 직물과 모던 추상’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안데스 문명과 현대 미국 작가를 조명하는 ‘고대와 모더니즘 예술의 직조 추상’전을 열고 있다. 영국 런던 공공미술관인 바비컨센터도 ‘풀기: 예술에서 텍스타일의 파워와 정치’전을 선보인다. 현대미술관은 왜 실과 바늘에 주목할까?
● 잊힌 역사의 재조명
섬유를 소재로 한 예술은 여성 예술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순수 예술 대접을 받지 못했던 텍스타일을 20세기 초 여성 예술가들이 적극 활용했고, 1960, 7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이 저항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도 여성 예술가 재조명 과정에서 탄생했다.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2017년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를 준비하며 일제강점기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조시비)에 자수를 배우러 간 한국 여성이 많았음을 알게 됐고 여기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학생, 장인이 만든 자수는 물론 추상 등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92년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미술계에서 자취를 감춘 송정인 작가가 그중 하나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권복혜를 사사한 그는 철망, 마대, 그물 등 낯선 재료와 파격적 기법을 사용해 눈길을 끈다. 1967년 ‘새 시대’에 기고한 글에서는 “미술과 자수는 사용하는 재료가 다를 뿐 뚜렷한 주제 의식과 시공에 대한 감각, 테크닉을 지닌다면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썼다.
● ‘반복 노동’의 매혹
실과 천이 주는 따뜻한 느낌, 만져보고 싶은 질감, 독특한 작업 방식 등은 현대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 근현대 자수’전에 삼베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작품 ‘무제’ 등을 전시한 이강승 작가는 “처음에 소외된 장르이자 반복적 노동을 한다는 자수의 개념적 의미를 가져오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다 ‘반복 노동’의 매혹에 빠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수를 놓는) 노동의 고통만큼 작업이 완성됐을 때 만족감도 크다”며 “취미로 십자수를 해본 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복적 바느질을 하는 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 중요했다”며 “(반복 노동 속에서 깊은 생각이 나온다는 점에서) 개념 미술과 공예는 상반된 개념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자수에서 사용되는 모양을 회화로 그린 써니 킴의 ‘Underworld’(1999년), 자수를 재료로 ‘자아 탐구’를 그린 최환성의 ‘불가분의 유동’(2023년) 등도 선보인다. ‘한국 근현대 자수’전은 8월 4일까지. ‘착륙’전은 9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정은 배지’ 공식 석상 첫 등장…독자 우상화 전념 암시
- [사설]확 짙어진 트럼프 대세론… 비상한 각오로 대비해야
- [사설]의대생 2학기 등록만 하면 진급… ‘부실 교육’ 문제는 어쩌고
- ‘물폭탄’ 제주, 누적강수량 이미 600㎜ 넘어…1일부터 또 내린다
- 불법사채 피해자 80%가 플랫폼서 접해… 당정 “불법광고 선제적 차단”
- 한동훈 측, ‘배신 프레임’에 “공한증” 반격…원희룡 “초보운전 두려워” 나경원 측 “보수
- 흡연을 하는 사람으로 운동 중 가슴 통증이 느껴진다
- ‘월패드’ 관리 강화에 아파트 관리비 오른다…시스템 없는 건물도 적용 논란
- 檢, 이재명 캠프 정책담당자 ‘선거법 위반’ 공범 소환조사 마쳐
- [사설]“韓 증시, 中보다도 투명성 떨어져”… 왜 이런 얘기 나오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