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이든 이후’ 새판 짜기, 한국은 얼마나 대비돼 있나
미국 대선 첫 TV 토론이 바이든 대통령의 완패로 끝났다. CNN 조사에선 “트럼프가 더 잘했다”는 응답이 67%였다. 토론 도중 수차례 말을 더듬거나 쉽게 흥분하고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는 바이든의 모습에 많은 유권자가 실망했다. 민주당 내부와 진보 언론에서조차 후보 교체론이 분출하고 있다. 대선까지 넉 달 정도 남았다. 트럼프는 얼마 전 ‘성 추문 입막음’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고도 지지율에서 앞서왔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트럼프의 재집권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훨씬 커졌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은 대부분 바이든 행정부와의 긴밀한 공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문재인·트럼프 시절 크게 훼손된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정상화한 것이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작년 8월엔 정상화된 한일 관계를 바탕으로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선언을 통해 3국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없었다면 실현되기 어려운 일들이다. 이 말은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대외·안보 정책 기조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한국의 안보나 북한 비핵화에 별 관심이 없다. 동맹을 금전 논리로만 본다.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축소하거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나를 좋아한다”고 자랑하는 트럼프는 언제든 김정은과 위험한 거래를 할 수 있다. 주한 미군 철수 문제가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트럼프는 이번 토론에서 “취임하자마자 러시아와 대화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 빈말이 아닐 것이다. 최근 러시아는 북한과 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군사 기술 이전까지 시사했다. 그런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검토하는 한국으로선 난감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들인 만큼 대비해야 한다. 우선 캠프 데이비드 협정 같은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지 않도록 제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와 관련, 현재 미국의 핵무기를 한국 재래식 무기와 통합 운용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이것을 작전 계획에 신속히 반영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야 한다. 트럼프의 집권을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겠다는 역발상도 필요하다. 가령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핵 옵션을 요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이든 이후’ 안보 새판 짜기에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하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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