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26] 둥둥 걷어붙이고

문태준 시인 2024. 6. 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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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둥둥 걷어붙이고

아부지 논 가운데로 비료를 뿌리며 들어가시네

물 댄 논에 어룽거리는

찔레꽃 무더기 속으로

아부지 솨아 솨르르 비료를 흩으며 들어가시네

소금쟁이 앞서가며 둥그러미를 그리는

고드래미논 가운데로 아부지

찔레꽃잎 뜬 논 가운데

한가마니 쏟아진 별

거기서 자꾸 충그리고 해찰하지 말고

땅개비 개구리 고만 잡고

어여 둥둥 걷어붙이고

들어오라고 아부지 부르시네

-송진권(1970-)

송진권 시인은 충북 옥천 사람이다. 이 시에도 옥천 사람의 성품과 말씨가 잘 배어 있다. ‘둥둥’이라는 시어에는 바짓가랑이의 끝부분을 듬성하게 말아 올린 모양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일을 빨리 해치우려고 서두르는 의욕도 느껴진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는 무논에 들어가서 찰바당찰바당 발소리를 내며 비료를 뿌리신다. 무논의 수면에는 찔레꽃 무더기가 흐릿하게 비친다. ‘고드래미논’은 가물어도 늘 물이 차 있는 논이니 상답(上畓)에 해당할 것이다. 해거름에 비료를 뿌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 한층 어둑어둑해졌다. 물낯에는 잔별이 “솨아 솨르르” 쏟아진다. 그때에 아버지는 딴짓을 하며 꾸물거리고 있는 시인을 무논으로 불러들인다. 시인의 어렸을 적 풍경이 담겨 있는 듯하지만, 이 즈음 농가의 풍경 또한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시인은 시 ‘누구여’에서 “여름 저녁에 나와 앉아서/ 들깨처럼 흩뿌려진 별을 보기도 하고/ 이제 마악 꽃잎을 여는 분꽃을 보기도 하는 때”라고 썼는데, 문득 시골집에 가서 여름 저녁과 여름밤이 맑은 시내처럼 흐르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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