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명패에 남기는 말… ‘두 줄 헌사’의 긴 여운[2030세상/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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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실 말이 있습니까?" 부산 기장군 정관읍 부산추모공원 명패 접수처 건너편 중년 여성이 상냥하게 물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고 그를 기억하는 명패를 만들 때 남은 사람들은 무슨 말을 적어야 할까.
우리 모두 누군가를 기억하는 말을 남겨야 할 때가 올 테니.
그 끝에 우리 역시 결국 두 줄쯤의 말로 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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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실 말이 있습니까?” 부산 기장군 정관읍 부산추모공원 명패 접수처 건너편 중년 여성이 상냥하게 물었다. 6월 21일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부산에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마치고 봉안함에 고인을 모신 뒤 최종 절차가 봉안당에 붙여둘 명패 접수였다. 고인의 성함과 생년월일과 사망일자를 확인한다. 각 일자를 양력으로 적을지, 음력으로 적을지 고른다. 자손의 이름을 순서대로 기입한다. 나와 삼촌 둘이 절차를 진행했다. 마지막 단계가 추도사 작성이었다.
머뭇거리는 동안 고민이 꽉 찬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기도 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고 그를 기억하는 명패를 만들 때 남은 사람들은 무슨 말을 적어야 할까. 떠난 사람은 어떤 말로 남아야 할까. 주어진 공간은 두 줄뿐. 튀지 않고 담담한 말을 남길까. 아니면 화려하고 심오한 표현을 써야 할까.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동시에 이제 그런 말을 생각할 일이 늘어날 거란 걸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작년 9월 뉴욕 출장 중 잠깐 리버사이드 파크를 걸었다. 뉴욕에서는 ‘벤치 입양’ 기부금을 내고 공원 벤치에 메시지를 새긴 명판을 달 수 있다. 거기 담긴 사랑의 말들을 한참 보았다. “우리는 네 덕에 엄마와 아빠가 되었어. 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우리의 천사야.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있을 거야.” 아이가 일찍 떠난 부모의 메시지였다. “레미 제인, 레미 제인, 뭘 보고 있어?” 떠난 사람이 벤치에 앉은 듯 새겨 둔 메시지였다. 낯 모를 시민들의 짧은 말 속에 긴 감동이 있었다.
남기는 말을 고를 때 그때 광경이 잠깐 스쳤다. 뉴욕이 좋다는 말 같은 게 아니다. 그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때 우리는 그를 잘 기억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혹은 내가 언젠가 혹은 갑자기 떠날 때 무슨 말로 남으면 좋을지. 우리 모두 누군가를 기억하는 말을 남겨야 할 때가 올 테니. 그 끝에 우리 역시 결국 두 줄쯤의 말로 남을 테니.
“‘엄마 안녕!’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삼촌이 말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삼촌이 할머니를 가장 오래 모셨으니 그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았지만 이제 나는 관성과 평균의 힘도 이해한다. 명패 값은 7만5000원. 내가 카드를 꺼냈다. 삼촌이 나를 막으려다가 “그래, 네가 내는 것도 좋겠다”며 손을 내렸다. 옆의 장례지도사께서도 격려해 주셨다. “외손자가 내는 것도 의미 있네요. 뭉클합니다.” 나도 울컥했지만 담당 직원의 마지막 질문 덕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시불로 하시겠어요?” 어른이 되는 값을 일시불로 냈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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