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우리와 당신의 ‘주말이 있는 삶’
“개처럼 뛰고 있어요.” 지난 5월28일 쿠팡의 배송전문 자회사 쿠팡CLS에서 배송기사로 일하던 정슬기씨(41)가 사망하기 전 남긴 쿠팡 측과의 문자메시지다. 전국택배노조는 심근경색의증이라는 사인을 근거로 과로사를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사망 전 하루 10시간이 넘는 야간 고정노동을 수행했다.
그는 1t 트럭을 보유한 특수고용직 배송기사로, 건당 수수료를 받고 배송하는 쿠팡의 간접고용 노동자다. 대부분의 배송기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 ‘위장된 자영업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자는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도 일하는 남다른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 ‘월급쟁이’만큼 벌 수 있다. 특수고용직, 간접고용과 같이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들은 모두 노동자가 자영업자의 신분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불안정한 노동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소비자들의 ‘중단 없는 소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야간노동과 주말노동이 확산되고 있다. 야간노동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알려진 지도 오래지만, 온라인 유통산업의 확대는 야간노동과 소비를 둘러싼 사회적 가치를 역전시키고 있다.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면 된다’는 식의 온정주의적 주장은 야간노동, 주말노동의 확산을 오히려 합리화한다.
구의역 ‘김군’, 발전소 김용균의 사망사고로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사회적 지지가 보태졌지만, 정슬기씨와 같은 과로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다. 왜일까?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말에는 쉬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기엔,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폰으로 온라인 쇼핑을 해오던 ‘나의 편리’는 이미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기업의 영업시간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의 성장이 곧 사회의 발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온 한국 사회에서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 3월 대형마트와 호텔 등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 2800여명을 대상으로 주말노동 현황을 조사한 결과, 한 달 평균 5~6번의 주말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의 노동은 월단위 ‘근무 스케줄’에 따라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노동과 휴식의 예측 불가능성이 매우 커서 휴식이 회복의 시간이 되지 못한 채, 노동과 노동 사이의 대기시간이 되고 있다.
하루 15시간 야간노동을 수행하는 택배기사나 “입사한 지 8년째 한 번도 주말에 쉬어본 적 없다”는 마트 노동자가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남들 쉴 때 쉬고,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일해보니 아는 것이 있다. 남들 쉴 때 일하는 삶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고립적인 삶이 되는지. 그런 삶일수록 결국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대신하는 ‘회사와 나’의 관계만 남는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는 마트 노동자는 사회적 생존권이 소리 없이 빠져나간 전반적인 역량 감소 상태의 인간을 보여준다. 취약해진 노동자의 그림자 노동이 우리의 ‘주말이 있는 삶’을 떠받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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