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힘들고 외롭다

김승기 센텀소중한눈안과 원장 2024. 6. 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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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 센텀소중한눈안과 원장

많은 사람이 중세유럽을 ‘암흑시대’라 부른다. 그러나 선입견을 떨쳐 버리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세 유럽은 매우 안정적인 사회였다.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의 유럽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개별국가의 군주부터 귀족을 거쳐 평민과 농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은 교황의 신도이며, 황제의 신하였다.

이런 특징은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위대한 고대 철학자의 고전을 교회의 가르침에 맞게 다듬은 사상이 확고부동한 권위를 누렸고, 다른 모든 주장은 이단으로 몰려 사라졌다. 의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히포크라테스 같은 대가들이 주장한 ‘체액설(몸안의 체액 균형이 맞지 않아 질병이 발생)’이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4, 15세기를 지나며 십자군 원정의 실패는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켜 여기저기서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마틴 루터는 교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교회를 주장했고, 파문을 위협하는 교황의 편지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중세의 몰락을 알렸다.

그런데 1527년 6월 24일 바젤대학 정문에서 파라셀수스가 루터의 흉내를 냈다. 갈레노스와 히포크라테스 같은 고대의 대가들이 쓴 ‘의학 경전’을 공개적으로 불태운 것이다. 파라셀수스는 의과대학생 시절부터 사고뭉치였다. 틈만 나면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 같은 대가의 가르침을 부정하며 교수들을 반박했다. 체액의 불균형으로 모든 질병을 설명하고 실제로 아무 치료도 할 수 없는 주류의학에 대한 의문을 망설이지 않고 표현했다.

그는 학위를 받고 여러 해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군의관이나 귀족의 주치의로 일하고 자신의 ‘새로운 의학’을 체계화했다. 1527년부터 유럽 최고 대학으로 간주되던 바젤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파라셀수스는 체액설에 함몰되어 철학적인 논증만 하던 당시 주류의학을 비판하며 직접 환자 곁에서 증상을 관찰하고 주변 환경을 조사해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00년 이상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의학 경전을 강의실에서 치우고 대신 신파, 약초꾼, 이발사 같은 사람을 불러 현실적인 경험을 나누게 했다.

당연히 주류의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현실과 동떨어진 철학에 가까운 원리를 버리고 직접 환자를 관찰하고 얻은 근거를 바탕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의사는 체액설에 맞춰 질병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해 실제로 치료라는 것이 없었다. 상처 치료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상처 치료는 ‘체액의 균형’이 목표였다. 그래서 상처에 이끼 혹은 마른 똥을 붙이고 붕대로 감았다. 당연히 심각한 감염을 일으키고 문제가 심해지는 일이 많았지만 체액설에 따라 설명을 하는 것이 전부일 뿐 결과에는 관심이 없었다.

파라셀수스는 직접 환자가 낫는 과정을 관찰하고 약초꾼 같은 사람의 증언을 바탕으로 ‘상처에 이끼나 마른 똥을 붙여 싸매지 말고 그대로 노출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면 저절로 회복된다’고 주장했다. 또 광부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 규폐증에 대해서도 ‘자연을 훼손한 신의 형벌’이라는 당대의 관념을 부정하고 규폐증으로 사망한 환자의 폐에서 광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먼지’와 비슷한 것을 확인해 ‘광산의 먼지가 폐에 쌓여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파라셀수스의 치료도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면이 많지만, 체액 운운하며 환자에게 위해만 가하던 다른 의사와 비교하면 확실히 뛰어났고 결과도 당시로는 기적에 가까웠기 때문에 귀족과 부자의 초빙을 많이 받았고 ‘새로운 의학’의 시작을 알렸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힘들고 외로운 면이 있다. 파라셀수스도 40대 후반 나이로 사망했고, 존경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으므로 살해 당했을 가능성까지도 거론된다.


세상 여기저기서 전쟁의 소식도 들리고, 나라 안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조용한 날이 없고, 의료계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힘들고 혼란스럽다. 더 멀리 가기 위한 움츠림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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