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도보 여행자와 장거리 탐방로

이진규 기자 2024. 6. 3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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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지역 명소·풍광 매력…주로 50·60대 중장년 방문
상품개발·홍보 중요하지만 이용객 접근편의성 높여야

남녘 바다의 눈부신 윤슬을 배경으로 산비탈을 따라 난 계단식 다랑논의 빼어난 경관이 명승으로 지정된 경남 남해군 남면의 가천다랭이마을은 암수바위와 밥무덤 같은 명물이 더해져 주말이면 주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때때로 번잡해지는 이 마을은 남파랑길 42코스와 43코스의 시종점이자 남해바래길 10코스인 앵강다숲길과 11코스 다랭이지겟길의 시종점이기도 하다. 순방향으로 이동면에서 출발해 남파랑길 42코스와 바래길 10코스를 따라 내내 눈부신 바다를 눈에 넣으며 걸어 몇 번이나 모퉁이를 돌아서면 마침내 다랑논이 나타난다.

도보 여행길에 만나는 가천다랭이마을의 풍광은 차량으로 도착해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며 접근할 때 보는 모습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5월 초 해가 한참이나 기울 즈음 도착해 올려다본 가천다랭이마을 한복판에는 굵은 이팝나무 한 그루가 도보 여행자에게 푸짐한 쌀밥 한 그릇을 대접한다. 하나의 코스가 끝날 무렵, 다리는 뻐근해지고 몸이 나른해질 즈음 만나는 풍광은 ‘차량 여행자’가 바라보는 풍광과는 아주 다르다. 가천다랭이마을이 남해의 대표적 명소이기는 하지만 이곳 외에도 도보 여행자들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채로운 풍광과 만날 수 있다.

걷기 바람이 분 지 10여 년이 지나는 사이 급조한 어수룩한 길은 사라지고 길다운 길만 살아남았다. 부산의 갈맷길이나 지리산 둘레길과 같은 각 지역의 장거리 탐방로는 방문자가 꾸준히 늘어난다. 경험과 정보가 축적되니 도보 여행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는 길이 새로 선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비무장지대(DMZ)를 동서로 횡단하는 DMZ평화의길 조성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장거리 탐방로의 대표 격으로 우리 땅의 동해안과 남해안, 서해안, DMZ를 환상으로 연결하는 코리아 둘레길이 전체 4500㎞에 이르는 순환 코스 완성을 앞뒀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750㎞ 50개 코스를 연결하는 해파랑길이 2016년 개통했고 2020년 남파랑길, 2022년 서해랑길이 개통했다. 이어 DMZ평화의길이 개통하면 이를 계기로 도전에 나서는 이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애초 장거리 탐방로 개설의 목적으로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한편 방문객을 통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렇기에 지역마다 자체 걷기 코스를 활용한 상품 개발이나 걷기 행사를 통한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자체 코스가 없는 지자체는 남파랑길 같은 전국 규모의 탐방로를 활용하기도 한다.

남파랑길 1470㎞는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군 땅끝탑을 잇는다. 이 가운데 창원 고성 거제 통영 사천 남해 하동의 7개 시·군에 605㎞ 거리의 42개 코스가 지나는 경남은 도 차원에서 남해안을 따라 걷기 여행을 확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해안선이 복잡한 경남의 남파랑길 구간 길이는 단조로운 해파랑길 전체 구간 길이에 육박한다. 그만큼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풍광을 지니고 다양한 관광자원을 품었다는 의미다. 경남관광재단이 마련한 ‘나만의 픽! 남해안 걷기 여행 코스’는 남해안 걷기 길과 주변 관광지를 연계한 추천 여행코스를 공모한다. 남파랑길이 부산을 벗어나 창원으로 처음 들어오는 6코스에서는 웅천안골왜성과 주기철목사기념관, 거제를 빠져나가기 직전인 26코스에서는 청마기념관과 청마생가처럼 무심한 여행자는 지나치기 쉬운 숨은 지역의 명소를 만난다.

장거리 탐방로를 찾는 도보 여행자가 꾸준히 늘면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생활인구가 느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장거리 탐방로의 이용객 추세에 맞춰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장거리 탐방로를 찾는 여행자는 50~60대가 주를 차지한다. 아무래도 장거리 탐방로를 걷는 시간적 부담이 가장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장거리 탐방로인 부산 갈맷길의 지난해 완보자 통계를 보면 50대(27.0%)와 60대(37.1%)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70대 이상도 19.3%나 차지해 완보자의 연령대가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갈맷길과 길이가 비슷한 남해 바래길의 전체 완보자 연령대는 60대가 46%로 가장 높았고, 50대가 32.7%로 그 뒤를 이어 50~60대가 78%를 차지했다.


젊은 층의 참여를 높일 방안도 찾아야겠지만 50~60대 중장년 이용객이 다수를 차지하고 이들의 완보 목적 중 첫 번째가 ‘건강 관리’인 것이 현실인 만큼 건강 증진 효과를 기대하고 교통편 숙박시설 등의 접근 편의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걷는 일 자체도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걷기 위해 도보 여행지를 찾아가는 일이 어려워서는 안 될 일이다. 도보 여행은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자는 것이지 고행을 하자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겸 (사)걷고싶은부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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