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84> 뜰에 핀 봉선화를 시로 읊은 조선전기 문사 성현

조해훈시인·고전인문학자 2024. 6. 3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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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구름 사이 날던 자줏빛 깃털 봉황이(五色雲間紫鳳翎·오색운간자봉령)/ 바람 타다 어느 날 차가운 뜰에 떨어졌을꼬?(隨風何日落寒庭·수풍하일락한정)/ 다시는 천 길 높은 하늘로 날지 못하고(高飛不復翔千初·고비불부상천초)/ 가을바람에 한 송이 꽃향기로 머물러 있구나.

그러다보니 봉선화(鳳仙花)의 유래와 전설 등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울타리나 장독대 둘레에 봉선화를 심으면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손톱에 봉선화물이 잘 들면 시집을 잘 간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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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타다 어느 날 차가운 뜰에 떨어졌을꼬?

- 隨風何日落寒庭·수풍하일락한정

오색구름 사이 날던 자줏빛 깃털 봉황이(五色雲間紫鳳翎·오색운간자봉령)/ 바람 타다 어느 날 차가운 뜰에 떨어졌을꼬?(隨風何日落寒庭·수풍하일락한정)/ 다시는 천 길 높은 하늘로 날지 못하고(高飛不復翔千初·고비불부상천초)/ 가을바람에 한 송이 꽃향기로 머물러 있구나.(留作酉風一種馨·유작유풍일종형)

위 시는 조선 전기의 문사인 성현(成俔·1439~1504)의 ‘금성의 봉상화를 읊다’(詠金城鳳翔花·영금성봉상화)로, 그의 문집인 ‘허백당집(虛白堂集)’ 권1에 있다.

성현은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 등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났던 인물로, 북경에도 몇 차례 다녀왔다. 당시의 음악을 집대성하여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한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봉선화(鳳仙花)의 유래와 전설 등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봉선화에 대한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위 시를 읊었다.

‘봉상화’는 봉선화의 또 다른 이름이다. 꽃 모양이 봉황을 닮았다하여 그렇게 부른다. 중국 명나라 왕상진의 ‘군방보(群芳譜)’에 “줄기와 가지 사이에 꽃이 피어 머리와 날개, 꼬리와 발이 모두 우뚝하게 일어서서 봉황새의 형상을 닮아서 봉선화란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돼 있다.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이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은 ‘동국세시기’ 등 여러 곳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봉선화 씨의 기름을 짜서 음식에 치면 맛이 참기름보다 좋다”고 했다.

악귀를 쫓고 뱀을 쫓아낸다는 믿음에서 손톱에 붉은 봉선화물을 들였다고 한다. 울타리나 장독대 둘레에 봉선화를 심으면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봉선화를 금사화(禁蛇花)라고 부르기도 한다. 봉선화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고 해서 염지갑화(染指甲花), 규중 여인들의 벗이라고 해서 규중화(閨中花)라고도 불렀다.

우리는 어릴 때 누이들이 손톱에 빨갛게 물들이던 기억을 갖고 있다. 손톱에 봉선화물이 잘 들면 시집을 잘 간다는 생각에서였다.

흔하게 피던 봉선화를 이제는 잘 볼 수 없다. 봉선화가 한창 피어 있을 철인데 필자의 마을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다. 다행히 필자의 마당 화단에 봉선화가 빨간 꽃을 예쁘게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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