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 8척 새벽 침입…이순신 함대 깃발 신호 따라 응전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선일회계법인 고문 2024. 6. 3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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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62> 정유년(1597년) 8월 28일~9월 13일

- 겁 먹은 여러 배 피하려 했지만
- 이순신 전혀 동요없이 추격 명령
- 한꺼번에 쫓아가니 왜군 달아나

- 경상수사 배설은 도망갈 궁리만
- 함께 계책 세우고 싸울 장수 없어
- 당시 통제사로의 참담함 느껴져

*이달 4일부터 10월 8일까지는 일기가 두 개로 중복되는바, 뒤에 적은 일기를 앞의 것과 대조해 보기 편하도록 지면 기사에서는 밑줄을 그어 표시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첫머리에 # 표시를 별도로 한다. 무엇을 다르게 썼는지를 대조해 봄으로써 그가 왜 그 기간에 두 번의 일기를 썼는지 그 까닭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 자리한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에서 만난 이순신 함대 초요기. 해상에서 예하 장수를 불러들이는 데 쓰였다. 이번 회에서는 전투에 오랜만에 나선 이순신 함대가 깃발과 나팔로 신호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인상 깊다. 원균의 칠천량 대참패와 비교하면 지휘관 자질에 따라 군대는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 선명하다.


8월28일[10월8일] 맑음.

적선 8척이 별안간 침입해 오자 여러 배들이 두려워 겁을 먹고 피하려 하고, 경상수사(배설)도 피하려고 하였다. 나는 꼼짝 않고 있다가 적선이 가까이 오자 나팔(角)을 불고 깃발을 휘두르며 추격했다. 적선들이 물러가는 것을 갈두(葛頭)까지 뒤쫓아 갔다가 돌아왔다. 저녁에는 장도(獐島)로 옮겨 잤다.

#날이 맑았다. 새벽 6시쯤에 적선 8척이 갑자기 덤벼드니 여러 배들은 엉겁결에 퇴각하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각지기(角指旗)를 휘두르며 추격을 명령하니 여러 배들도 뒤로 피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갈두까지 쫓아 나갔다. 적선이 멀리 도망하므로 더이상 쫓지 않았다. “뒤따르는 적선이 모두 50여 척 이었다”고 했다. 저녁에는 장도에서 진을 쳤다.

8월29일[10월9일] 맑음.

아침에 벽파진(碧波津)으로 건너가 진을 쳤다.

#날이 맑았다. 아침에 벽파진으로 가서 진을 쳤다.

8월30일[10월10일] 맑음.

그대로 벽파진에 머물렀다.

#날이 맑았다. 그대로 벽파진에 머물고 있으면서 정찰병들을 각지로 나누어 보냈다. 배설은 적이 장차 많이 올 것을 두려워해 내빼고 싶으나 주위 여러 장수들의 눈이 무서워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도망가려는 그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것을 먼저 발설하는 것은 부하들을 통솔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므로 참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마침 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소지(所志)를 냈는데 병세가 아주 위중해서 조리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육지에 올라서 조리하라고 처결해 주었더니 배설은 우수영을 거쳐 육지로 올라갔다.

*** 일기를 중복해 쓰게된 가장 큰 이유는 배설의 도주에 관한 책임의 소재에 있었다는 것임을 이날의 일기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정유년(1597년) 9월

9월 일기는 명량승첩의 기록이다. 승첩의 일기를 읽노라면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인 위대한 영상이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길이길이 후손에게 들려주어야 할 통쾌한 승리의 이야기다.

9월1일[10월11일] 맑음.

그대로 벽파진에서 머물렀다.

#날이 맑았다. 내가 배에서 내려 벽파정(碧波亭) 위에 앉았는데 점세(占世)가 제주(濟州)서 소 다섯 마리를 싣고 와서 바쳤다.

9월2일[10월12일] 맑음

정자(벽파정) 위로 내려가 앉았는데, 포작(鮑作) 점세(占世)가 제주에서 와서 인사했다. 이날 새벽에 배설이 도망갔다.

#날이 맑았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도망쳤다.

9월3일[10월13일]

비가 뿌렸다. 배 뜸 아래에서 머리를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 심회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침에 날이 맑더니 저녁에 비가 뿌렸다. 밤에는 북풍이 불었다.

9월4일[10월14일]

북풍이 크게 불었지만 각 배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천행이다.

#날은 맑으나 북풍이 크게 불었다. 배가 요동쳤으나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9월5일[10월15일]

북풍이 크게 불어, 각 배들을 지키느라 매우 힘들었다.

#날은 맑으나 북풍이 크게 불었다.

9월6일[10월16일]

바람은 그치는 듯했으나 파도는 가라앉지 않았다.

#날이 맑고 바람도 좀 가라앉았으나 추위가 심해지니 격군들의 노 젓기가 매우 걱정이 된다.

9월7일[10월17일] 맑음.

바람이 비로소 잠잠하다. 탐망군관(探望軍官) 임중형(林仲亨)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55척 가운데 13척이 이미 어란 앞 바다에 이르렀는데, 그 뜻이 우리 수군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각 배에 엄하게 신칙하였다. 오후 4시에 적선 13척이 곧장 아군의 진 친 곳으로 향해 왔다. 우리 배들도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 맞서서 공격하니, 적선들이 배를 돌려 달아났다. 먼 바다까지 쫓아갔지만 바람과 물결에 거슬려 배가 더 갈 수 없으므로 벽파진으로 되돌아왔다.

아마도 밤에 또 습격이 있을 것 같았다. 과연 밤 10시경에 적선이 포를 쏘며 습격해 왔다. 아군의 여러 배들이 겁을 먹고 황겁해 하는것 같아 다시 엄하게 명령을 내리고 곧장 내가 탄 배가 앞장서서 적선을 향하여 연달아 포를 쏘니 적의 무리는 당해내지 못할 줄 알고 밤늦게야 물러갔다. 그들은 일찍이 한산도에서 승리했던 자들이다.

#날이 맑았다. 정찰군관 임중형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55척 가운데 13척은 벌써 어란 앞 바다에 이르고 있는데 그 목적이 틀림없이 우리 수군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려 재삼 신칙하는 중 오후 4시경에 과연 적선 12척이 대들었다. 우리 편의 여러 배들이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서 적선을 추격하니 적선은 뱃머리를 돌려 도망갔다. 멀리 바다 밖까지 쫓아 가다가 바람과 물결이 모두 거슬리고 또 복병선이 있을 우려도 있어서 더 쫓아가지 않았다.

벽파정으로 돌아와서 여러 장수들을 모아 놓고 오늘 밤에는 반드시 적의 야습(夜襲)이 있을 것이니 모든 장수들은 미리 알아서 준비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대로 시행한다고 재삼 타일러 경계케 하고 헤어졌다. 밤 10시경 적은 과연 야습을 해와 탄환을 많이 쏘며 덤볐다. 내가 탄 배가 바로 앞장을 서서 지자포를 쏘니 강산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적들도 함부로 덤벼들기 어려울 줄 알고 나갔다 들어갔다 네 번을 되풀이면서 탄환만 쏘다가 자정이 지나서는 아주 물러갔다.

9월8일[10월18일] 맑음.

적선이 오지 않았다.

#날이 맑았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서 대책을 토의하였다. 우수사 김억추(金億秋)는 겨우 만호나 할 만하지 수사가 될 제목은 못 되는 인물인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정다운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시켜 보냈다. 이러고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저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

*** 당시 통제사 이순신과 함께 싸워야 할 장수는 충청수사가 부재중이라 경상수사와 전라우수사 뿐이었다. 그런데 경상수사 배설은 도망가 버렸고 우수사 김억추는 대책을 논의할 인물조차 못 되었으니 홀로 계책을 세우고 싸워야만 했던 당시 통제사의 참담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9월9일[10월19일] 맑음.

오늘이 곧 9일(중양절)이다.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하였는데 마침 부찰사(한효순)가 지원한 군량이 있었고 제주에서 도착한 소도 5마리가 있었다. 녹도만호(송여종)와 안골포만호(우수)를 시켜 밥을 하고 소를 잡아 장수와 병사들에게 먹이도록 했다. 이때 적선 2척이 곧장 감보도(甘甫島)로 들어와 우리 배의 수를 정탐했다. 영등포만호 조계종이 끝까지 뒤쫓았으나 잡지는 못했다.

#날이 맑았다. 이날은 9일로 한 해의 명절이다. 나는 비록 상복을 입고 있어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몸이지마는 여러 장병들에게야 먹이지 않을 수 없기에 제주서 나온 소 다섯 마리를 녹도와 안골포 두 만호에게 내주고 장병들을 먹이도록 지시하였다. 늦게 적선 2척이 어란(於蘭)서 바로 감보도로 와서 우리 수군의 많고 적은 것을 정찰하려고 하였다. 영등만호 조계종(趙繼宗)이 바짝 추격해서 쫓아가니까 적들은 당황해서 배에 실었던 물건을 모두 바다 가운데에 던져 버리고 달아났다.

9월10일[10월20일] 맑음.

적의 무리들이 멀리 달아났다.

#날이 맑았다. 적선이 멀리 도망가 숨었다.

9월11일[10월21일] 맑음.

#날이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았다. 혼자 배 위에 앉았으니 어머님을 그리는 마음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천지간에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디 또 있겠는가. 아들 회는 내 마음을 알고 대단히 언짢아 하였다.

9월12일[10월22일]

비가 계속 내렸다.

#온종일 비가 뿌리었다. 배 뜸 아래에 앉았자니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9월13일[10월23일]


날은 맑았으나 북풍이 크게 불었다.

#날이 맑으나 북풍이 크게 불어서 배가 가만히 있지 못했다. 꿈이 이상도 하다. 임진년 승전(壬辰大捷)할 때의 그 꿈과 비슷했다. 이 무슨 징조일까.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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