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 단기 차익만 노린다는 언어도단 [세상읽기]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단기 차익만을 노리는 주주 때문에 경영자들이 장기적 안목의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초단타 투자자들의 거래량이 늘어나고 있고,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들썩이는 주가 때문에 경영자들이 단기 실적에 집착할 수밖에 없으며,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환원 요구로 성장잠재력이 잠식된다는 것이 흔히 제시되는 논거다. 하지만 이는 모두 망상에 가깝다.
우선, 초단타 투자자의 주식 매도로 인해 회사로부터 회수되는 자본은 전혀 없다. 유통시장 거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거래로 주가가 영향받을 수는 있다. 그리고 재정거래가 완벽하지 못하면 주가가 본질가치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경영자들이 단기 업적에 과도하게 신경 쓸 이유는 하나도 없다. 보상을 장기 성과에 연동시키면 손쉽게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식 보상의 비중을 높이고 이를 통해 취득한 주식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기간을 늘리면 경영자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 경영자들이 단기업적주의에 빠졌다면 그것은 주주 탓이 아니라 회사의 잘못된 보상체계 탓이다. 이런 점에서 주로 전년도 영업이익이나 경제적부가가치(EVA) 등 단기 성과에 임원 보상을 연동시키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스스로 경영자의 단기업적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주식 보유 기간이 주식 투자의 단기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 주식의 본질가치는 주식을 보유한 자가 받을 모든 미래현금흐름의 현재가치로 결정된다. 이 때문에 현재의 주가는 회사의 성장잠재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공개 당시 이윤이 없거나 미미해도 공모가가 장부가치의 수배인 이유가 그 좋은 증거다. 미래 성장 전망에 따라 오늘의 주가가 결정된다면 주주는 지극히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 의사 결정을 내리면서도 보유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 즉, 오늘은 주가가 미래 성장 전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주식을 사고, 내일은 주가가 이를 과도하게 반영해 주식을 팔 수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가격 결정 원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이들을 단기 성과에 집착한 투자자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재계는 행동주의 펀드도 단기 투자자로 매도한다. 이 펀드들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를 관철해 단기 차익을 얻지만, 회사는 투자 재원이 고갈되어 성장잠재력이 잠식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인데 본질을 흐리는 흑색선전에 불과하다. 먼저, 행동주의 펀드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현금을 쌓아놓은 회사를 대상으로 주주환원을 요구하지, 유망한 투자처가 있는 회사를 대상으로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무리한 주주환원 요구는 주가를 떨어뜨려 종국적으로 주식을 팔아야 하는 행동주의 펀드 입장에서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 회사를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상 회사의 주가와 수익성은 행동주의를 개시한 지 5년이 지나도 그 전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대상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이 과정에서 매각된 공장, 특허 등이 매각 후 다른 회사에 의해 더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성장잠재력을 잠식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높이는 쪽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재계는 왜 진실을 왜곡해가면서까지 행동주의 펀드를 계속 매도하는 걸까? 이들에게 단기 차익만을 노리는 투기꾼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이들 때문에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야 재계의 숙원인 지배권 보호장치를 허용받는 데 유리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정책 당국자들조차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재계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 4월 금융감독원장은 행동주의 펀드 대표들을 만나 “단기 수익만 추구하는 무리한 요구 대신 장기 성장전략을 적극 제시하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복수의결권 주식, 포이즌필 등 각종 지배권 보호장치가 도입되면 정작 문제가 된 경영자의 단기업적주의는 전혀 교정하지 못한 채 총수 일가와 경영자들의 사적 편익 추구 행위만 더 쉬워지게 한다. 재계가 진정으로 경영자의 단기업적주의를 해소하고 싶다면 경영자의 임원 보상을 장기 성과에 연동시켜야 할 것이고, 정책 입안자들이 진정으로 기업 부문의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싶다면 자본투자 효율성 제고를 통해 이에 이바지하는 행동주의 펀드를 더욱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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