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바이든 쇼크` 현실화… 한국기업 비상
韓 반도체·전기차 전략 경고등
4년전 역대급 불확실성 재부각
산업경쟁력 바탕 "경제안보 강화"
한국 기업들이 보조금 수혜를 받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두고 "역사상 가장 큰 세금 인상"이라고 비난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기업들은 4년 전 역대급 불확실성이 또 재현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CNN이 주최한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앙적' 참패를 당한 후 미국과 세계는 민주당이 후보를 교체하지 않으면 트럼프가 승리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던 주요 정책들은 전면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토론회 직후 트럼프 대선 캠프의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재탈퇴할 계획이냐는 질의에 "그렇다, 그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말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TV 토론 다음날 진행된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유세에서도 "내가 승리하면 석유 시추를 3배로 늘리고, 전기차 의무 정책을 취소할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주요 정책인 IRA 폐지를 거듭 강조했다.
산업계에서는 당장 전체 수출의 26.8%(5월 말 누적기준)를 차지하는 반도체와 전기차 수출에 '빨간불'이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대중 압박 수위가 더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에 유탄이 튈 가능성도 높다. 전기차용 배터리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배터리 3사(합작 포함)가 미국에서 건설 중이거나 건설을 예고한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은 16개에 이른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트럼프는 전기차나 배터리에 보조금을 주는 것을 꺼려하며, 석유 자원으로의 회귀를 원하고 있다"며 "IRA 폐기는 어렵겠지만 중국산 원자재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고 보조금 액수가 줄어드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트럽프 재집권에 대비해 플랜B, 플랜C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최근 다시 늘어난 대미 무역흑자를 줄여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한 보고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을 하게 될 경우 미국의 우리나라를 향한 무역제재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집권 시절이던 2017~2018년 대미 무역흑자가 240억달러였던 때도 압박이 강했는데, 작년 대미 무역흑자는 445억달러로 배 이상 불어난 상태다.
특히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점이 4년 전 세계경제에 드리웠던 '불확실성'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기업 임원은 "2019년 트럼프 집권 당시 '글로벌 경제 정책 불확실성(EPU) 지수'가 199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적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스콧 베이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등 석학 3명이 공동 개발한 이 지수는 주요 22개국의 언론 보도를 기초 데이터로 산출되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22개국에서 경제, 정책, 불확실성 등 세 가지 용어가 포함된 기사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느냐를 기준으로 측정한 지표다.
트럼프 집권 시 통상 및 외교안보적 변수도 심대하다. 경제와 안보가 한몸으로 움직이는 '신냉전' 지정학적 환경에서 산업경쟁력을 기반으로 우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트럼프가 재선되면 주한미군이 완전 철수하지는 않더라도 감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입장에서는 근본적으로 안보를 해결할 수 있는 핵무장을 논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미국 우선이기 때문에, 다른 쪽은 신경 안쓴다는 의미"라며 "우리의 역할과 위치를 재정립 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이 아닌) 글로벌 중추 국가로 가는 교류·협력 확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임주희·김미경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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