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설의 서가] 독서는 스탈린을 어떻게 단련시켰나

박영서 2024. 6. 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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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은 독실한 정교회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10살 때 고향 고리(Gori)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정교회 신부가 되기를 포기한 스탈린은 신학교를 그만 두고 직업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소련이 붕괴하고 당시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를 피하면서 진짜 스탈린을 알기 위한 연구도 깊어졌다.

독서가이자 지식인이라는 스탈린의 색다른 면모를 부각시킨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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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서재
제프리 로버츠 지음 / 김남섭 옮김
너머북스 펴냄

이오시프 스탈린은 독실한 정교회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10살 때 고향 고리(Gori)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고리 신학교가 폐쇄되자 트빌리시(Tbilisi)의 신학교로 전학을 갔다. 스탈린은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트빌리시에 문을 연 서점들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시간만 나면 서점을 찾았고, 서점의 책들은 그를 지하 혁명세계로 인도했다. 정교회 신부가 되기를 포기한 스탈린은 신학교를 그만 두고 직업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11년간 일곱 번 체포됐고, 여섯 번 시베리아 유형을 갔으며, 다섯 번 탈출했다. 이런 고난 속에서 '강철인간' 스탈린이 간절하게 원했던 것 중 하나가 '책 읽기'였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 생활이 안정되자 스탈린은 본격적으로 책을 모으고 읽었다. 스탈린이 1925년 직접 짠 도서 분류체계를 보면 관심사는 철학에서 군사문제까지 방대하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에 반드시 메모와 '포멧키'(pometki·책에 남긴 표시)를 다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여백에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소리', '쓰레기', '꺼져', '바보', '악당' 같은 경멸의 표현부터 '동의함', '정확해', '맞아', '옳아', '그렇지-그렇지', '하하' 등 긍정의 표시로 자신의 생각과 신념, 감정을 드러냈다.

그 중 이채로운 것이 정적(政敵) 트로츠키의 책에 남긴 표시다. 스탈린의 장서(藏書)에는 40여 권에 이르는 트로츠키의 책과 팸플릿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책에 비판적 메모를 달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맞아!', '정확해' 같은 동의의 단어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반대 진영의 지도자나 국가도 탐구했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자신처럼 역사를 좋아한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 등이다. 연방제를 택한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헌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스탈린은 1936년 새 헌법 초안을 만들 때 미국 헌법을 참고했다.

스탈린은 2만5000권의 장서를 모스크바 다차(시골 별장)에 집중적으로 보관했다. 그에게 다차는 편하게 책 읽는 공간이었다. 1953년 3월 그는 다차의 서재 소파에서 사망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당시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를 피하면서 진짜 스탈린을 알기 위한 연구도 깊어졌다. 소련 역사 및 스탈린 전문가인 저자는 스탈린의 장서, 독서 메모 등을 분석해 기존의 스탈린 평전들과 다른 책을 내놓았다. 책은 스탈린이 읽은 책과 그 책들에 남긴 그의 표시를 통해 그의 이념과 감정, 내면과 행동을 추적한 창의적 방식의 전기다. 독서가이자 지식인이라는 스탈린의 색다른 면모를 부각시킨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스탈린을 냉혹한 독재자로만 여기는 이들을 향해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스탈린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이해력이 뛰어나고 감수성이 예민한 지식인이었다. 스탈린이 수십 년간 야만적인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깊이 간직한 신념에 대한 정서적 애착의 힘 덕분이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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