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패권주의 닫고 충청도 패러다임 열자
계파 갈등에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등 현안 뒷방 신세
21세기 양당제 한계… 정당법·소선거구제 개선 시급
대전일보 기획시리즈 '피우자 충청정당'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충청도 기반의 건강한 정당을 만들어 충청도 몫을 찾고, 극단적 양당 구도를 바로잡자."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도 영남당과 호남당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데 망국적 지역당을 또 만들자는 것이냐?"며 힐난하기도 한다.
본보가 지역정당을 이슈로 제기한 것은 충청권의 위기의식 때문이다. 충청권의 대다수 지역 현안들이 속절없이 표류하고, 이러다가 인구 감소시대 충청권의 미래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영남당이 행정을, 호남당이 국회를 장악한 현재 충청권이 겪는 차별과 소외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게 2027년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하계U대회)이다.
□ 정부-정치권 무관심, 충청권 현안 지리멸렬
2027년 8월 개막이 3년 앞인데 개막식과 폐막식 장소가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전 서남부권 스포츠종합타운에서 하려던 개막식은 월드컵경기장, 폐막식은 세종시 대평동 종합체육시설이 아닌 세종 중앙공원에서 옮겨 열릴 것으로 보인다.
경기장 건설이 무산된 것은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행정 절차가 늦어지고 예산이 지원되지 않아 공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이 대회는 민주당 정 부때 제안돼, 국민의힘 정부 때 유치에 성공하고 차기 정부까지 이어지는 사업인데, 자칫 아무도 관심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제2의 잼버리 사태가 빚어질까 우려된다.
충청인들은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 부산 엑스포 유치에 5744억원이나 써놓고, 충청권 U대회 개·폐막식 경기장도 안 짓는 것은 지역차별"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것 뿐이 아니다. 제2대덕연구단지 조성, 충청권 지역은행 설립, 경부-호남선 도심 지하화, 충남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중부권 동서횡단철도(서산-충북-경북 울진) 등도 지지부진하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도 2031년으로 미뤄졌다.
□ 지역 볼모 양당, 제몫만 챙기는 적대적 공생관계
충청인들은 현재처럼 영호남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충청도가 설 자리도, 미래도 없다고 여기고 있다. 양대정당은 엄격하게 말해 국민의힘=영남당, 더불어민주당=호남당이다. 외견상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고 있지만 '권위적 보수' '리버럴 보수' 정도로 별반 다르지 않다. 해방 이후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체제가 이식됐고, 냉전과 6.25를 거치면서 사회주의와 좌파는 모두 몰락했다.
이 틈을 타고 지역정당이 들어섰다. 영악한 정치인들이 지역구도를 만들어 선거에 임했고, 영남과 호남에서는 이들 정당을 밀어주고 지역 이익을 챙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기이한 한국형 정당이 등장했다. 지역을 볼모로 정당 간판을 내건 채 진보와 보수, 영남과 호남이 각각 제 몫을 챙기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당은 국정현안을 풀어내는데 무관심하거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청년실업, 연금개혁, 고금리, 고물가, 인구감소, 농촌소멸, 가계부채, 전세사기 등 민생 현안이 쌓여있지만 김건희와 이재명이라는 두 인물을 싸고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념과 정책, 정체성보다는 특정인, 특정지역에 얽매인 정당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 양당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주장도 많다. 농경시대나 산업화시대보다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가 훨씬 다양해져 진보와 보수라는 2가지 틀로 담아내는 게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미국 민주당과 트럼프의 공화당이 그 사례를 잘 보여준다. 양당이 현대 사회의 복잡한 현안에 대안도 없이 극한 대결만 일삼는 현실에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혐오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 양당구도 지식정보화시대 다양한 요구 못담아내
양당 구조를 타파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다양한 색깔의 정당이 계층과 지역, 집단의 이해관계를 담아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우선 정당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정당법 3조와 17조는 정당 설립 요건으로 수도 소재 중앙당과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정당의 등장을 가로막는 등 정당조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게 중론이다.
소선거구제의 개선도 시급하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와 소선거구제도가 도입됐지만 지역갈등 구도가 고착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국민의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이 거론됐지만 거대 양당의 기득권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돕기 위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에 의해 무력화됐다.
□ 충청권 정치역량 결집, 지역-정치 발전 이뤄내야
충청권 정치 역량의 결집도 필요하다. 지역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충청권 전체가 함께 힘을 모은 경우가 별로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충청권 U대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여야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시민사회계 등이 나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모이지도 않는데 힘이 생길리 없으며, 떠들지도 않는데 챙겨줄 사람도 없다. 정치적 힘이 모아져야 세력도 인물도 생겨난다.
충청인들이 갖고 있는 정서적 정치적 중립성과 균형감각은 큰 자산이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편협하고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정치세력을 대체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단결력만 더해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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