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곳에 살면 성기도 짧아진다?”...기온의 차이가 크기를 결정한다는데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6. 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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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30] 183cm VS 157cm.

세계에서 가장 큰 신장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남성들의 평균키는 180cm를 훌쩍 뛰어 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키 좀 크다’하는 사람들도 그곳에서만큼은 평범해지기 일쑤입니다. 마치 거인국에 도착한 걸리버가 된 느낌입니다.

평균키가 가장 작은 나라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입니다. 이곳에서는 160cm가 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아담한 체격을 가진 사람들이 활기차게 살아가는 나라이지요.

“뭔데 이렇게 작아?” 걸리버를 들고 있는 거인을 묘사한 삽화.
같은 인류끼리 키 차이가 무려 26cm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력의 차이에 따른 영양상태도 지적되긴 하지만, 근본적인 유전자가 격차를 벌렸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이 차이를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19세기 독일 학자 칼 베르그만이었습니다. 그는 날씨가 추운 곳에 사는 생명체가 더운 곳에 사는 같은 종의 동물보다 큰 ‘경향’이 있다고 결론내립니다. 1847년 발표된 ‘베르그만의 법칙’이었습니다. 이 법칙과 후속 연구가 성기 크기에 대한 웃지 못할 오해도 불렀습니다. 오늘 서른 번째 생색의 주제입니다.

기온 차에 따른 동물 크기의 차이를 발견한 베르그만
“추운 곳에 사는 동물은 몸집이 더 크다.”

베르그만은 동물들을 주의깊게 관찰할 줄 아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의문을 가졌지요. 같은 종의 동물인데, 서식지에 따라 미세하게 차이가 났던 것입니다. 북극곰의 크기가 불곰보다 컸고, 북부 지방에 사는 여우가 남부쪽에 사는 녀석들보다 우람했습니다. 여러 관찰을 거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지요. “추운 기후가 개체의 몸집에 영향을 미쳤다.”

“같은 동물인데 왜 이렇게 크기가 차이가 나지.” 칼 베르그만.
그의 주장의 얼개는 이렇습니다. 추운 기후에서 동물들은 큰 몸집일 수록 유리합니다. 신체 내부의 용적이 커야 열을 보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추위에 노출되는 표면적은 몸 부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늘어 열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큰 강과 작은 실개천 중 어떤 것이 더 빨리 뜨거워지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더운 장소에서는 작은 동물들이 생존에 유리합니다. 더 빨리 열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m에 달하는 북극곰. [사진출처= Arturo de Frias Marques]
태양곰은 최대 크기가 140cm에 불과하다. 북극곰 대비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사진출처=Siew Te Wong 외]
베르그만의 법칙이 나오면서 같은 동물의 체격 차이에 대한 의문점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남극펭귄의 크기가 왜 아르헨티나 펭귄가 크기가 두배나 되는지 알 길이 없었지요.

북유럽 사람들의 거대한 키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작은 키 차이에 대한 이론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과거 함경도 사람들이 거구로 유명했지요. 중국에서도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 사람들의 키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베르그만의 법칙이 인간에게도 어느정도는 적용되는 셈이지요.

“이렇게 운동을 하니까 큰 것이제.” 남극의 황제펭귄. [사진출처=크리스토퍼 미셸]
영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브 브루사테는 “기후위기가 더 급하게 진행될 수록, 인간의 평균키는 줄어들 것”이라는 신박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길이만 13m...대왕오징어에도 적용되는 베르그만 법
베르그만의 법칙은 해양생명에게도 적용됩니다. 심해에 사는 ‘대왕 오징어’가 그 예입니다. 대왕 오징어는 아주 깊은 심해에 서식하는 녀석입니다. 크기가 13m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녀석이지요. 과학자들은 이 놈들의 거대한 크기에도 베르그만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와~ 이거 오징어집이 몇 봉지야~~”. 9.2m 크기의 대왕오징어. [사진출처=NTNU Vitenskapsmuseet ]
대왕 오징어가 서식하는 곳은 알다시피 심해입니다. 태양빛이 도달하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이 가득한 곳. 수온은 0-3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열을 보존할 수 있는 거대한 몸뚱이가 필요하지요. 심해 거대화 현상(Deep-sea gigantism)이 일어나는 배경입니다.

기본적으로 심해의 낮은 용존산소도 생명체의 몸집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몸뚱이가 커야 적은 산소를 효율적으로 보존하면서 사용할 수 있어서입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향유고래와 함께 전시한 대왕오징어 모형. [사진출처=Mike Goren]
짧은 팔다리, 귀와 코 크기도 기온과 관련 있다고?
“더운 곳에 사는 동물일 수록, 팔·다리·귀가 길다.”

베르그만의 법칙이 나오면서 후속 연구도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앨런의 법칙이 대표적입니다. 미국 동물학자 조엘 아삽 앨런은 같은 동물이더라도 더운 지방에서 서식하는 동물의 팔, 다리, 귀, 꼬리가 더 길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표면적을 조금이라도 늘려야 열을 발산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더운 곳에 사는 사막 여우의 다리와 귀가 북극 여우의 그곳보다 길게 뻗어나 있습니다.

추운 곳에 서식하는 여우(왼쪽)는 사막에 사는 여우보다 귀나 다리가 짧다. 체온을 지키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Umberto Nicoletti Sumeet Moghe]
페루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안데스 산맥에서 거주하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후에 사는 페루인들은 팔 다리가 다소 짧았던 반면, 보다 더운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의 팔·다리가 길었기 때문입니다.
페루 고산지대 원주민의 짧은 팔과 다리는 앨런의 법칙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사진출처=AgainErick]
성기 크기도 엘런의 법칙이 적용되나?
여기서 발칙한 질문이 하나 튀어나옵니다. 더운 곳에 사는 사람일 수록 성기가 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막 여우의 귀처럼, 사람도 열을 발산하기 위해 성기를 키울 수도 있지 않냐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더운 지방에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성기는 큰 것으로 알려진 반면, 추운 지역의 아시아 사람들은 성기가 작다는 사실을 근거로 댑니다.
“거시기가는 기온이랑 관계가 읎어~” 침팬지. [사진출처=Giles Laurent]
과학자들은 그러나 성기 크기와 기온과는 크게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 내립니다. 포유류의 성기는 주로 암컷과의 성선택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친척 격인 고릴라의 성기가 다소 작은 이유도 두목 수컷이 암컷을 독점하는 구조라 성기를 키울 요인이 없어서였습니다. 기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침팬치는 반면 여러 암컷이 자유롭게 교미하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성기와 고환이 고릴라에 비해 큰 편입니다. 그래야 자기의 씨앗이 수정될 확률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기후와는 연관성을 찾기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삶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베르그만-앨런의 법칙은 그러나 완전한 과학적 진리는 아닙니다. 일말의 경향성을 보여줄 뿐, 이를 반증하는 증거도 무수히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빙하기가 찾아온 홍적세(약 258만년 전~1만년 전) 동안 유럽의 하마 크기가 작아진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추운데도 몸집이 작아진 건 베르그만 법칙을 반박하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이 경향을 따르는 동물들이 있다는 건 명확합니다.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키가 크거나, 작거나, 다리가 길거나, 짧거나,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 모든 생명체가 수 억년의 변화 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아름다운 지구. [사진출처=Thomas Fuhrmann]
*지난주 사색(史色)에서 예고했던 스핀오프 기사는 기술적 문제로 한주 연기합니다. 혼란을 드려 송구합니다.

<세줄요약>

ㅇ19세기 과학자 베르그만은 추운 곳에 사는 생명체는 몸집이 더 큰 경향성을 발견했다.

ㅇ북유럽 사람들이 평균 키가 큰 이유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작은 평균 키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ㅇ그러나 성기 크기는 기후와 관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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