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윔블던[박준용의 인앤아웃]

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 SPOTV 해설위원(loveis5517@naver.com) 2024. 6. 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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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코리아



전 세계 테니스인들의 축제 윔블던이 다가왔다.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센터코트, 푸른 잔디 그리고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자줏빛이 조화를 이루는 윔블던은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나 뛰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다.

뿐만 아니라 윔블던은 4대 그랜드슬램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오랜 전통을 여전히 고집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한 대회다. 대표적인 것이 코트 표면이다. 윔블던은 1877년 첫 대회가 열린 이후 지금까지 잔디코트를 고수하고 있다.

호주오픈과 US오픈 역시 잔디코트로 시작했지만 호주오픈은 1988년에 하드코트, US오픈은 1975년 잔디코트에서 클레이코트, 1978년에 하드코트로 교체하였다.

4대 그랜드슬램의 공식 대회 명칭을 살펴보면 ‘Australasian Championships’으로 시작한 호주오픈의 현재 공식 명칭은 ‘Australian Open’이다. 롤랑가로스는 ‘French Men’s Singles Championship’의 이름으로 시작해 대회 장소가 변경되면서 ‘Roland Garros’를 현재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US오픈은 National Championship Tournaments였던 명칭이 ‘US오픈’으로 변경되었다. 윔블던의 공식 명칭은 ‘The Championships’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고 최고의 대회라는 뜻이다.

센터코트 명칭 역시 윔블던을 제외한 다른 그랜드슬램은 자국 테니스의 영웅 이름을 따 명명하였다. 호주오픈의 센터코트는 캘린더 그랜드슬램(1년에 4대 그랜드슬램을 모두 우승한 것을 의미)을 두 차례 달성한 로드 레이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로드 레이버 아레나’, 롤랑가로스는 선수와 테니스 행정가로 활약한 필립 샤트리에의 이름을 따 ‘필립 샤트리에 코트’, US오픈의 센터코트는 흑인 남자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정상에 오른 아서 애시를 기념하기 위해 ‘아서 애시 스타디움’으로 지었다.

윔블던의 센터코트는 그대로 ‘Centre Court’다. 즉, 테니스 센터코트 중의 센터코트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즌 세 번째 그랜드슬램 윔블던 개막을 앞두고 다른 그랜드슬램에서는 볼 수 없는 윔블던만의 매력을 살펴보자.

1. 흰색 의상

테니스를 모르더라도 윔블던하면 떠오르는 것이 흰색 의상이다. 테니스는 태생부터 흰색 의상을 입는 것을 암묵적으로 여겨졌는데 그 이유가 옷에 밴 땀 얼룩을 부적절하게 여겨 왕과 귀족들이 즐기는 테니스에 흰색 의상을 강요한 것이다. 이후 모든 테니스 대회에 흰색 의상을 입는 것이 규정되었다. 1968년 미국 데이비스컵 선수들이 노란색 옷을 입는 것을 시작으로 테니스 의상의 색은 다양화되었지만 윔블던만큼은 현재까지도 흰색 의상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윔블던 1회전에서 로저 페더러(스위스, 은퇴)는 밑창이 주황색인 테니스화를 착용했다가 윔블던 조직위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아무리 ‘테니스 황제’일지라도 이러한 윔블던의 전통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테니스가 윔블던 코트에서 열렸는데 이 때만 흰색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한시적으로 풀었다.

2013년 윔블던에서 페더러가 지적받은 신발. 게티이미지코리아



2. 미들 선데이(Middle Sunday)

윔블던은 대회 둘째 주가 시작되는 일요일에 경기를 열지 않았다. 잔디를 보호하고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미들 선데이에는 비로 연기된 경기가 열렸었는데 그 횟수는 네 차례(91년, 97년, 04년, 16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잔디를 보호 및 유지하는 기술이 발달하였고 어떤 선수는 쉬고 어떤 선수는 경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면서 2022년 미들 선데이는 공식 폐지됐다.

3. 시드 배정

시드는 대회 초반부터 톱랭커들끼리 맞붙는 것을 피하고자 만든 규정이다. 대회 초반부터 톱랭커가 탈락하면 흥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드는 대회 전 세계랭킹에 따라 부여된다. 예를 들어 대회 출전한 선수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는 1번, 두 번째로 높은 선수는 2번을 받게 되는데 대진표에서도 1번과 2번시드 선수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즉, 1번시드와 2번시드가 대결하는 경우는 결승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시드의 기준이 되는 것은 세계랭킹이다. 하지만 윔블던은 다른 방법으로 시드를 배정해 왔는데 기준은 세계랭킹이 아닌 잔디코트 성적이다. 즉, 윔블던은 잔디코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윔블던 초반에 만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시드를 배정해 왔다.

윔블던 시작 1주전 랭킹포인트 + 전년도 잔디코트 시즌에서 획득한 랭킹포인트 + 전전년도 잔디시즌에서 획득한 최고 랭킹포인트의 75%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픈 윔블던만의 독특한 시드 배정 공식은 그동안 선수들에게 불만이었다. 예를 들어 클레이코트나 하드코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톱랭커들이 잔디코트에서의 성적이 좋지 못하면 윔블던 초반부터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잔디코트에서 성적이 좋으면 현재 자신의 세계랭킹보다 높은 시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선수들의 꾸준한 불공정 제기에 윔블던 조직위는 위 시드 배정 공식을 2021년에 폐지하였다.

참고로 현재 모든 그랜드슬램 단식은 128드로인데 지금의 드로 수를 최초로 도입한 그랜드슬램은 1919년 윔블던이다. 128은 2의 7제곱으로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7차례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남녀 상금 평등화

윔블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녀상금 평등화다. 4대 그랜드슬램 중 가장 먼저 남녀 상금 평등화가 이루어진 대회는 US오픈으로 1973년에 남녀 선수들에게 같은 상금이 주어졌다. 호주오픈은 2001년, 프랑스오픈은 2006년에 남녀 상금 평등화가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윔블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윔블던 조직위는 “남자는 5세트 경기를 치르고 여자는 3세트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같은 상금을 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남녀 상금 평등화를 거부해 왔다. 이는 영국 정치권에서도 이슈가 되었는데 당시 영국 총리였던 블레어 총리가 의회에서 “왜 윔블던에서 남녀 선수들에게 같은 상금을 주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남녀 상금 평등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라며 여자 선수들의 편에 섰고 테사 조웰 체육부 장관은 윔블던 조직위에 남녀 상금 조정 권고안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윔블던 조직위는 두 손을 들고 2007년부터 남녀 선수에게 같은 상금을 주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세계 여성 스포츠 15대 사건 가운데 1위에 오를 만큼 세계 스포츠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5. 군인 자원봉사자

윔블던을 보면 경기장 곳곳에 꼿꼿한 자세의 군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을 보며 경기장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이 역시 윔블던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이다.

유럽의 지리와 정치적 형태를 바꾼 제2차 세계대전 때 윔블던 센터코트가 독일군의 폭격으로 일부가 파괴되었다. 당시 군인들이 센터코트에 주둔하며 영국 국민들을 보호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대회가 안전하게 개최될 수 있도록 도왔는데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군인들이 선수와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대회에 약 450명의 군인이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는데 군인들이 윔블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휴가를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한다.

6. 상업광고? No!

윔블던 A보드를 보면 대회 공식사용구 브랜드가 조그맣게 새겨져 있을 뿐 다른 그랜드슬램처럼 스폰서 광고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코트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깨끗한 미적 감각을 제공하여 관중과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윔블던만의 전통이다.

<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 SPOTV 해설위원(loveis55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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