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맥베스’의 피를 마셨다고?...덕수궁 옆 영국대사관에서 무슨 일이 [푸디人]
5년여 전에 완전히 개통된 덕수궁 돌담길을 생전 처음 걷게 됐습니다. 영국대사관에 막혀 끊겨 있었던 덕수궁 돌담길이 2018년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와 5년여가 지났는데 말이죠. ‘등잔 밑이 어둡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온 것 아니냐’는 자기반성을 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참고로 막혀있던 돌담길 170m 구간 중 100m(대사관 직원 숙소 앞~영국대사관 후문)는 2017년 8월에, 나머지 70m 구간(영국대사관 후문~정문)은 2018년 12월에 순차적으로 개방되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오후 시간의 대사관저와 로얄 가든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있었나’라고 느낄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1891년에 지어진 대사관저(2호관은 1892년 완공)는 빅토리아풍의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개화기 대사관 중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사용되는 유일한 외교공관입니다. 시멘트와 철조건물이 가득한 서울 도심에 이렇게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영국 여왕 초상화와 세계적인 조각가 헨리 밀러의 작품이 있다고 하네요.
대사관저 앞에는 짙푸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정원이 있는데, 바로 로얄 가든입니다. 시원한 녹음 사이로 풋풋한 잔디 향이 기분을 싱그럽게 만듭니다. 이런 곳에서 로얄 브라클라와 페어링된 저녁 식사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죠!
콜리플라워 관자구이는 얇게 저민 콜리플라워와 숙성시킨 가리비 관자구이, 콜리플라워 퓌레를 이용해 입맛을 돋웠습니다. 뱅어스&살구 살사에 나온, 돼지고기와 양창자를 이용해 직접 만든 수제소시지는 펜넬 허브, 과일터치의 살사와 어울렸습니다. 무화과 그레이징 오리가슴살 스테이크는 로얄 브라클라 21년을 이용해 졸여 만든 무화과 소스에 숙성시켰다고 하네요.
로얄 브라클라는 셰리 캐스크(셰리 와인을 숙성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오크통)에 피니싱해 풍부한 과일 향이 돋보입니다. 최고의 퍼스트 필 셰리 캐스크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캐스크는 스페인에서 직접 공급받고 있죠.
이번에 국내에 공식 선보이는 로얄 브라클라는 12년, 18년, 21년이었습니다.
로얄 브라클라 12년은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OLOROSO SHERRY CASK)로 마무리되어 잘 익은 복숭아, 블랙체리, 아몬드초콜릿, 설탕의 풍미가 느껴집니다.
팔로 코르타코 셰리 캐스크(PALO CORTADO SHERRY CASK)로 마무리되어 복합적 풍미를 선사하는 로얄 브라클라 18년은 풍부한 향신료와 부드러운 바닐라 크림, 과일과 코코아 파우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가운데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균형을 더합니다.
로얄 브라클라 21년은 올로로소, 팔로 코르타도 그리고 페데로 히메네즈(OLOROSO, PALO CORTADO & PEDRO XIMENEZ SHERRY CASK)에서 마무리했습니다. 향은 부드러우며 은은한 느낌의 셰리와 시트러스, 바닐라 향이 느껴지고 맛은 달고 진득한 느낌의 고소한 토피와 농익은 베리, 시나몬 등이 나는 듯합니다.
모든 제품은 알코올 도수가 46%이며 색소를 첨가하지 않았고 냉각 여과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로얄 브라클라의 로고를 통해 200년 넘는 역사를 인상적이게 소개해준 조 기자의 설명을 일부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선 맨 위에 “최초의 왕실 스카치 위스키(The First Royal Scotch Whisky)”는 최초 영국 왕실 인증을 받은 스코틀랜드 증류소라는 뜻입니다. ‘로얄(Royal)’ 이란 이름이 붙은 스카치 증류소는 원래 3곳이었는데 ‘글렌누리 로얄’이 1980년대 문을 닫아 지금은 ‘로얄 브라클라’와 ‘로얄 로크나가’ 두 곳만 남았습니다.
브라클라가 영국 왕실 인증을 받아 ‘로얄 브라클라’가 된 사연을 짧게 설명드려 볼게요.
1767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코더(Cawdor)에서 태어난 윌리엄 프레이저(William Fraser)는 불과 15세에 영국군에 입대해 인도에서 14년을 복무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인도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하이랜드 고원에 있는 자기 고향인 코더에 1812년 브라클라(Brackla)라는 이름의 증류소를 설립했습니다.
군인 출신답게 원칙을 지켜 위스키를 생산하던 그는 위스키 맛이 좋아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위스키 생산지역인 하이랜드에는 당시 불법 증류소들이 성행했습니다. 그는 하이랜드 내에서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일환으로 생산한 대부분의 위스키를 잉글랜드에 판매했고, 그것이 뜻밖의 행운을 가져옵니다.
하노버 왕가가 배출한 다섯 번째 군주이자 영국의 왕이었던 윌리엄 4세가 브라클라의 맛을 직접 보기 위해 증류소를 방문한 것이었죠. 브라클라 위스키의 훌륭함에 매료된 윌리엄 4세는 1833년 스카치위스키로는 처음으로 로얄 워런트를 하사했습니다. 이때 증류소 이름도 브라클라에서 로얄 브라클라로 바꿨습니다. 참고로 로얄 로크나가는 1848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로얄 워런트를 받았습니다.
1838년 윌리엄 4세가 사망하자 빅토리아 여왕이 로얄 브라클라의 로얄 워런트를 갱신해 줬습니다. 이듬해인 1839년에는 ‘William Fraser & Co.’를 설립하고 로얄 브라클라라는 이름으로 아예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로고 왼쪽에 있는 새 한 마리는 영국 공군을 의미합니다. 로얄 브라클라 증류소 인근에는 넓은 보리밭이 있었는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활주로로 사용하면서 증류소는 공군 기지로 사용됐다고 하네요. 당연히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는 증류소 운영이 중단됐고 종전 후 전시 보리 공급 제한이 풀리면서 생산이 재개됐습니다.
1964~1966년 사이에는 1960년대 경제 부흥과 함께 스카치위스키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로얄 브라클라는 생산 용량을 늘리기 위해 증류소를 잠시 폐쇄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화이트 스피릿의 인기와 위스키 과잉 생산 등의 이유로 스카치위스키 업계 전반에 불황이 닥쳤고 1985년 폐쇄되었습니다.
또 로고 아래에 적힌 ‘Endeavour(노력)’라는 글자는 창업주 윌리엄 프레이저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endeavour’는 당시 영국 군대에서 쓰던 구호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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