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통신심의는 온라인 검열…‘무한한 재량권’ 축소해야”

박강수 기자 2024. 6. 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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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픈넷 ‘방심위 인터넷 검열’ 세미나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지난 2월 접속을 차단한 ‘윤석열 대통령 연설 짜깁기 영상’. 유튜브 갈무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2011년 한 트위터 이용자의 아이디 ‘2MB18nomA’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 ‘유해정보’라고 판단하고 계정을 차단했다. 2020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회의 석상에서 왼손으로 경례를 하고 있는 합성 사진을 ‘사회 혼란 야기 정보’로 보고 삭제·접속 차단 등 시정요구를 의결했다. 지난 2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방송을 짜깁기한 풍자 영상에 역시 ‘사회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접속을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들은 방심위 출범(2008년) 이래 꾸준히 불거졌던 ‘인터넷 검열’ 논란의 일부 사례들이다. 지난 28일 시민단체 오픈넷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손지원 변호사는 이러한 사례를 열거하며 “방심위의 통신심의 제도가 온라인 표현물에 대한 사실상의 행정 검열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심위는 연간 약 20만 건에 달하는 인터넷 정보를 삭제·차단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무이한 수준의 온라인 행정 검열”이라는 것이 손 변호사의 설명이다.

손 변호사는 방심위가 애매모호하고 광범위한 심의 기준을 앞세워 “국민이 볼 것과 안 볼 것을 결정하는 ‘정보 통제’와 ‘건전성 검열’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방심위는 정보통신망법(44조7)에 규정된 ‘불법 정보’, 방통위법(21조4항)에 규정된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에 필요한 정보’를 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건전한 통신윤리” 같은 표현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방심위 통신심의규정에도 ‘사회질서를 해할 우려’, ‘사회적 혼란 야기’ 등 모호한 규정이 빼곡하다.

방심위는 스스로 ‘민간독립기구’라고 주장하며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방심위원 구성이 정부와 여야 정당의 추천을 거쳐 정치적으로 구성될 뿐 아니라 방심위 의결은 행정처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행정기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손 변호사는 “사법부가 아닌 행정기관에 의한 심의는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합법적인 표현물을 억제하고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남용될 위험이 높기에 헌법적으로도 금기시된다”고 말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2월6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 대회의실에서 제4차 방송심의소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그 결과 방심위의 통신심의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억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6년 방심위는 영국인 기자가 운영하는 북한의 정보기술 관련 보도 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를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보고 접속 차단했다가 법원에서 ‘위법한 처분’ 판단을 받아 철회했고, 2015년에는 성인용 웹툰을 ‘음란물’로 규정하고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접속 차단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한 웹드라마의 동성 키스신을 ‘청소년 유해정보’라며 규제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0년 현 통신심의제도가 검열로 기능할 위험이 높다며 심의·시정요구 권한을 민간자율기구에 이양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권고한 바 있다. 손 변호사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법원 명령이나 민간기구 요청에 따라 자율규제가 이루어지며, 그 대상도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저작권 침해 정보에 한정된다”며 “한국도 통신심의 권한을 자율기구에 이양하고, 불법정보 삭제·차단은 법원 명령에 따르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현재 방심위의 가장 큰 문제는 ‘무한한 재량권’이다. 방심위원은 법원의 판단을 가져야 하는 사법적인 사안에서도 처분 권한을 갖고 있다”며 “심의 규정을 보면 ‘그 밖의’, ‘등등’의 표현이 있어 사실상 모든 정보에 대한 심의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규정은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간 지금의 제도를 바꾸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여야 모두 현 제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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