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개혁파 후보 깜짝 1위…‘결집한 보수’와 다음달 결선

김서영 기자 2024. 6. 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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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발표된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다음달 5일 보수파 사이드 잘릴리 후보(왼쪽)와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맞붙게 됐다. AFP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추락사 이후 치러진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개혁파 후보가 깜짝 1위로 등극했다. 다만 당선 확정에 필요한 과반 지지율은 확보하지 못해 다음달 5일 결선 투표에서 보수 진영 후보와 맞대결을 치러야 한다. 보수 세력이 결집할 결선에서 개혁파 후보가 승기를 잡으려면 이날 투표하지 않은 젊은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소로 나가야 한다. 정치에 대한 젊은층의 환멸이 결선의 변수가 될 수 있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이란 내무부는 전날 치른 대선 보궐 투표를 잠정 집계한 결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70)가 1041만여표(42.5%)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극우 보수 성향 사이드 잘릴리 후보(59)는 947만여표(38.6%)로 2위에 올랐으며, 당선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모하마드 바게리 갈리바프 후보(63)는 338만여표(13.8%)에 그쳤다.

‘보수 4인 대 개혁 1인’ 구도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페제시키안 후보는 최종 대선 후보 5명 중 유일한 개혁파 후보였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24.4.%)에 등극해 잘릴리 후보(24%)를 근소하게 앞지른 적은 있으나, 실제 선거에서 그보다 더 많이 득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심장외과의 출신이며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다. 5선 의원이고 보건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가 대권에 도전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서방과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 제재 완화, 히잡 단속 합리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타결을 이끌어낸 것으로 인지도가 높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교장관이 그를 지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선 확정에 필요한 지지율 과반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다음달 5일 2위 잘릴리 후보와 결선을 치르게 됐다. 이란 대선에서 결선 투표가 열리는 것은 2005년 이후 두 번째다.

외교관 출신인 잘릴리 후보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이자 충성파로 꼽힌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에 혁명수비대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큰 부상을 입어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으며, 2007·2013년 핵협상에 대표로 나서며 강경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잘릴리 후보 역시 대선 출마는 이번이 세 번째다.

결선은 개혁파와 보수파 후보가 일대일로 맞붙는 구도로, 각 진영의 표가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 계산으로는 잘릴리 후보가 3위 갈리바프 후보의 표를 끌어오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갈리바프 후보는 잘릴리 후보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자신의 지지층에 보수의 승리를 위해 뭉쳐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이전 여론조사에서 갈리바프를 지지한 이들 중 다수는 잘릴리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페제시키안 후보는 잘릴리의 당선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표를 얻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테헤란 거리에 29일(현지시간) 대통령 후보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 일부가 찢어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투표를 외면했던 젊은층이 결선 투표장에 나타난다면 페제시키안 후보에게 유리해질 수 있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우리는 다시 한번 일어나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 나라를 가난, 거짓말, 차별, 불의로부터 구하자”고 촉구했다. 알자지라는 “결선에서는 더 높은 투표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보수 진영의 연합을 물리치기 위해 더 많은 표가 필요한 페제시키안 후보에게 대체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전날 1차 투표의 투표율이 낮았다는 사실은 결선 투표율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전날 투표율은 39.9%로, 역대 대선 중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던 2021년 대선(48.8%)보다도 한참 낮았다. 전체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찍었던 지난 3월 총선(40.6%)보다도 낮다. 무효표는 100만표가 넘는다.

이처럼 저조한 투표율은 기존 보수 정권의 강경 노선과 탄압에 지친 대중의 좌절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이란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출신 아바스 아콘디 박사는 “이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들은 제도화된 차별에 반대하고, 소수가 부과한 ‘2등 시민’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가디언에 밝혔다. 사남 바킬 채텀하우스 연구원은 “이는 항의 그 자체다. 후보와 시스템 모두를 거부한 선택으로,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좌절을 보여준다”고 AP통신에 밝혔다. 그는 “(결선은) 집에 머물렀던 60%가 나와서 투표할 것인지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정치 권력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쥐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누가 된다고 해도 이란의 핵 개발이나 중동 정책이 크게 바뀌긴 힘들다. 다만 대통령은 정부를 운영하며 정책 기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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