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쇼크` 현실로…車·배터리·방산 등 비상
관세 인상으로 대미 수출 타격 예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압승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에도 '피봇'(pivot·방향선회)이 필요한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한미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등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이차전지, 반도체, 완성차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대(對)미 투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기에 제동이 걸릴 시 제조업에서만 27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길을 잃을 가능성마저 있다.
30일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이번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패배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미국 유권자의 60%가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교체돼야 한다고 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유권자 20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0%가 전날 TV 토론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확실히' 또는 '아마도' 후보에서 교체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이 백지화될 위기감이 고조됐다. 바이든 정부는 제조업의 탈탄소화를 적극 지원한 바 있다. 이와 관련된 환경 규제로 인해 전기차 판매가 호조를 보였으며, 배터리, 배터리 소재, 태양전지 등도 함께 성장세를 이뤘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전통산업 보호를 외치며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산업 규제 완화를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TV 토론 다음날 진행된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유세에서 "내가 승리하면 석유 시추를 3배로 늘리고, 전기차 의무 정책을 취소할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주요 정책인 IRA 폐지를 거듭 강조했다.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 등에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IRA 시행에 따른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IRA가 폐지될 시 전기차 가격 인상, 내연기관차 선호 증가로 전반적인 전기차 시장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
또 올 4분기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준공하고 본격 양산을 시작하면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현대차그룹에게도 악재로 분석된다.
여기에 트럼프 재집권 시 미국 자동차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보편적 관세' 대상 국가에 한국을 포함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수출에서 대미 수출은 절반에 가까운 42.9%의 비중을 차지했다. 따라서 추가 관세는 국내 완성차 수출 하락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완성차뿐 아니라 반도체 및 이차전지 등에도 피해가 예상된다. 미국이 반도체과학법과 IRA를 통해 첨단 제조시설을 적극 유치함에 따라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에 생산거점을 구축 중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산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현황과 경제적 창출 효과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와 이차전지의 대미 투자비중은 각각 99.2%, 70.4%로 1위를 차지했다. 완성차 등 전방 산업에 제동이 걸리고, 예상했던 보조금 혜택에서 열외 될 시 타격은 불가피하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트럼프는 전기차나 배터리에 보조금을 주는 것을 꺼려하며, 석유 자원으로의 회귀를 원하고 있다"며 "IRA 폐기는 어렵겠지만 중국산 원자재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고 보조금 액수가 줄어드는 것은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기에 트럽프 재집권을 대비해 플랜B, 플랜C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수석 부총재 출신의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지난 28일 서울 국제 금융컨퍼런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후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서 탈퇴했고 보호무역을 시작했다"며 "미 행정부는 다른 나라에 관세 보복을 가하고 자국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공정 경쟁 환경을 마련하지 못해 모든 국가에 '루즈루즈(lose-lose)'가 된다"고 지적했다.
방산 업계도 긴장감이 고조됐다. 한미 국방 부문에서 무역 장벽을 완화하기 위한 협정인 RDP-A 체결에 제동이 예상돼서다. 한국 정부는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해 연내 체결을 목표로 신속하게 진행했으나, 바이든 정부조차도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 협정이 미국산 구매 의무를 따르지 않아도 돼 미국 노동자에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주희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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