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약한 고리 파고든 참사 [아침햇발]

황보연 기자 2024. 6. 3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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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다문화공원에 설치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추모객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보연 ㅣ논설위원

베트남에서 온 형과 동생이 지난해 8월 경기도 한 신축 공사장에서 한날 숨졌다. 9층 바닥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가 시설물이 무너져 내린 사고였다. 당시 공사장에선 아래층에 동바리 (지지대)를 받치지 않는 데크플레이트 공법이 쓰였다. 비용과 공정을 줄일 수 있어 건설사들이 선호하지만 작업 순서나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배치됐다. 당시 같은 사고를 당한 뒤 구조된 4 명도 전부 중국 국적이었다.

흔히 건설업은 원래 위험한 일터이고 그래서 산재 사고가 빈번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슬아슬한 높이의 공사장을 바라볼 때면 특히 그렇다. 그런데 한국 건설업 사망만인율(1만명당 사망자·퍼미리어드)은 1.65(2021년 기준)로 미국(0.97)이나 일본(0.79), 싱가포르(0.29) 등에 견줘서도 월등히 높다. 왜일까.

위험은 노동의 약한 고리, 즉 취약한 고용구조를 파고든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은 건설 현장을 더 위험한 일터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원래는 공사 발주처가 원청 건설사에 일을 맡기면 이를 다시 분야별로 전문화된 업체들에 하청을 주는 것까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은 현장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일용직으로 채우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건설 현장엔 여러단계에 걸친 불법 하도급이 만연해 있다. 많게는 6차, 7차 하청으로 이어진다. 수익을 남기려면 비용을 줄이고 공기를 단축시켜야 한다.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지난 24일 경기도 화성의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사고는 제조업에 만연한 불법 파견이 ‘약한 고리’로 작동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아리셀 공장의 직원 100여명 가운데 50명 이상이 일용직 이주노동자였다. 희생자 중 이주노동자도 18명에 이른다. ‘위장 도급’을 위해 메이셀이란 회사를 차려두고 필요할 때마다 이주노동자를 공급받는 ‘불법 파견’의 통로로 삼았다. 주문량에 따라 그때그때 인력 규모를 고무줄처럼 조정할 수 있고 노무 비용과 관리 책임도 줄이려 한 것이다. 현장에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최정규 변호사)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한국 사회가 사실상 눈감아온 불안정 노동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에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엔 희생된 이주노동자들이 많았던 검수와 포장 업무도 해당된다. 파견이 금지된 것은 기간산업인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고용 환경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잦은 인력 교체가 초래할 부작용이 더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 제조업체가 몰린 공단 지역에선 불법 파견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아리셀에서 차로 30분 거리 안산에는 파견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퍼져 있다. 매일 아침 통근버스가 이들을 공장으로 실어 나른다. 당국의 단속·적발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의 약한 고리와 이주노동자가 만나면 일터의 위험은 증폭된다. 내국인보다 더 세심한 안전교육을 필요로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아리셀에서 불법파견으로 일한 노동자들은 “안전교육을 받은 적도 비상구가 어디인지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 임금노동자는 전체의 4.2%(87만3천명·2023년 5월) 수준인데 산재 사망자 중 외국인 비중은 10.5%(85명·2023년)로 훨씬 높다.

정부는 최근 몇년 새 외국 인력 도입 규모를 급격히 늘려왔다.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 수급 문제를 배경으로 거론하지만 실상은 낮은 처우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빈 일자리를 메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택배 상하차, 음식점 주방 보조, 호텔 청소원 등의 업종에 고용허가제가 새로 허용됐다. 정책 결정 과정에선 사업주단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내국인 기피 업무가 이주노동자 위주의 질 낮은 일자리로 굳어지면, 노동의 약한 고리가 개선되기는커녕 고착화되는 경로를 밟는다. 땜질식 도입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신원 확인에만 며칠이 걸린 외국인 희생자들의 빈소에는 한동안 이름 대신 식별번호만 붙어 있었다. 곡소리가 나오는 대신 적막이 흘렀다. 이들에게는 함께 목소리를 높여줄 노조도 없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다시 이주노동자에게로 위험이 전가되는 동안, 우리 사회가 ‘일터의 죽음’에 무덤덤해져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화성 참사의 교훈이 아리셀만의 문제로 좁혀져선 곤란하다. 안전한 사회로의 전환, 사람이 귀한 사회로의 전환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을 찾아내고 바꿔야 한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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