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거래 지침, 중국보다도 불투명”…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 못 들어가는 이유
해외 금융기관들은 한국 자본시장이 양적으론 세계 상위권의 선진시장이지만 편의성과 효율성 측면에선 시장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본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한국의 거래 규정이나 지침이 중국에 비해서도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8일 낸 ‘한국 자본시장의 시장접근성(Market Accessibility): 해외 금융기관의 시각’ 보고서에서 한국 자본시장이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규모에 걸맞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조2000억 달러로 세계 11위, 상장기업 수는 2318개로 세계 8위다. 한국 채권시장 발행잔액도 2조2000억 달러로 세계 11위다.
그럼에도 세계 주요 지수 산출기관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와 FT러셀 모두 한국 주식과 국채를 신흥시장지수에 포함하고 있다. 보고서는 MSCI와 FT러셀이 한국을 신흥시장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시장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기관 모두 지수에 포함할 국가를 결정하기 위해 양적 평가와 질적 평가로 구성된 국가 분류 기준을 두고 있다. 한국은 양적 평가에선 선진시장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지만, 시장접근성으로 명칭되는 질적 평가에 있어선 선진시장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게 보고서 분석이다. 따라서 선진시장으로 분류되려면 두 기관이 정의하는 시장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국 자본시장의 시장접근성에 대한 해외 금융기관의 시각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해외 금융기관 15곳의 45명과 진행한 인터뷰를 담았다고 밝혔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상업·투자은행, 커스터디은행, 증권사, 헤지펀드, 시장조성자, 시스템 트레이더 등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인터뷰는 2023년 1~ 9월 한국과 홍콩에서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이뤄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뷰에서 한국의 시장접근성 제고를 위해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이 한국의 거래 가이드라인 불투명성이다. 특히 이상거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상거래 관련 경고나 제재에 있어서 사전 및 사후적 규명 절차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글로벌 증권사 관계자는 “이상거래 관련 지침의 투명성 제고는 한국이 선진국 시장으로 격상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로, 한국은 선진시장에 비해 유연성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했다.
한 시스템 트레이더는 “특정 국가에서의 트레이딩 알고리즘에는 시장 요소뿐 아니라 규제, 규정, 지침 등의 거래 요소도 모두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는데, 한국 시장에서는 거래 규정이나 지침이 홍콩, 싱가포르 등 선진시장에 비해 투명하지 못하며, 심지어 중국에 비해서도 한국의 거래 지침 투명성은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중국은 시장참여 및 취급 가능 거래 상품이 제한된 반면, 거래가 허용되는 금융상품에 있어서는 거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다는 말이다. 이 트레이더는 “한국 시장은 수수께끼 같은 부분이 많고, 공정한 경쟁 시장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며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했다.
공매도 제도 개선 역시 선진시장 격상을 위해 풀어야 할 주요 과제로 꼽혔다. 공매도를 단순히 트레이딩 전략 구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도 차원에서 중요한 요소로 봤다.
한 글로벌 은행 관계자는 “한국이 선진시장으로 격상되길 원한다면 거래 지침의 투명성과 시장의 탄력성을 갖춰야 한다”며 시장 탄력성의 핵심 요소로 공매도를 꼽았다. 현재 한국에선 어느 종목을 공매도할 수 있는지 제약이 있고, 어떻게 공매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이 불명확해 비효율성이 발생한다고 했다.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공매도는 시장의 전체적 유동성 공급과 가격 발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헤지펀드 등 공매도를 집중적으로 하는 특정 섹터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라고 했다. 공매도를 제약하면 시장의 다양성과 경쟁도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글로벌 은행 관계자는 “시장조성자 등 다양한 플레이어가 시장에 참여해 유동성 공급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공매도와 같은 도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보고서는 인터뷰 참가자들이 한국은 공매도가 허용되는 종목에 있어서도 제약이 과도하고 거래에 대한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무차입 공매도로 지정되는 기준이 매우 엄격하고 여러 예외적인 경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한 이해 부족도 주요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한 글로벌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의 공매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느껴진다”며 “이런 인식은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원인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의 일반 투자자들은 공매도를 시장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영문 공시 부족을 지적한 목소리도 나왔다. 주요 정보 제공을 제한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차별로도 인식된다는 것이다. 한국 시장은 진입장벽이 주요 선진시장에 비해 높아 시장 경쟁력과 혁신이 훼손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도 변경 등 중요한 변화에 앞서 해외 금융회사 등 시장 참여자의 의견 수렴도 부족하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시장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선 포괄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 과정의 특정 단계나 부분만 개선하고 다른 부분에 문제가 남아 있을 경우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개선 과정에 제도나 규제 자체뿐 아니라 절차와 관행도 포함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 자본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절차, 관행,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와 해외 금융기관과의 소통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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