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가 제주에서 평화 잎사귀를 물고 오다
(시사저널=심정택 칼럼니스트)
지난 4월 제주시 일원에서 제31회 4·3 미술제가 열렸다. 30년간 지속된 이 미술제 한가운데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박경훈 작가(62)가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제주도 최초의 대중 집회로 평가받는 4·3 41주기 추모제(1989년)는 '사월제 공동준비위원회(공준위)'가 주도했다. 박경훈 작가는 당시 공준위 소속의 그림패 '바람코지'(1988년 2월 결성) 대표로 참여해 전시회를 가졌다. 1990년에도 전시회는 이어졌다.
제주도 도의회는 1992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4·3 사건의 피해 조사를 시작했다. 1993년 바람코지가 해체되고 9월 '탐미협'(탐라미술인협회)이 창립됐다. 탐미협은 1994년 제1회 4·3 미술제를 개최했다. 미술제 초창기는 희생자를 위로하는 제의적 (祭儀的) 성격이 뚜렷했다.
"매년 행해지는 제사는 기억 전승이 골격을 이룬다. 전승은 주기적인 이벤트가 필요하며 지속성이 중요했다. 한꺼번에 쏟아붓는 행사였으면 30년을 오지 못했다."
"망자를 기억하는 게 제사 아닌가. 미술제는 제의적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매년 햇곡식으로 제를 올리는 행위와 신작(新作)으로 전시를 꾸미는 일은 상통한다. 전시 자체가 저항이고 4·3 정신의 복원이었다."
인류학자 엘렌 디사나야케는 저서 《미학적 인간 : Homo Aestheticus》에서 '예술이 인류에게 생존 및 선택 가치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제의와의 결합 때문'이라고 했다.
"4·3 사건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유족들의 증언도 전무했던 터라, 작가들도 4·3을 공부해야 했다.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4·3을 알리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체험하지 못한 역사적 사건을 그려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박경훈은 2008년 개관한 제주 4·3 평화공원 및 기념관에 5년여 동안 전시기획팀장으로 참여했다. 4·3 미술제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4·3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 문제까지 제기하며 시야를 동아시아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2013년 미술제 20주년 세미나는 지난 10년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10년을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 동아시아 평화 미술제 구상이 처음 나왔다"고 밝혔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주민 40만 명의 25%인 10만여 명이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희생된 오키나와, 1947년 2월 중국 대륙에서 상륙한 국민당 군에 의해 3만여 명의 내성인이 학살된 2·28 사건의 대만, 중일전쟁 초기에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중국 난징도 평화미술제의 학술분과에 포함됐다.
2014년 21회 4·3 미술제는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2018년 제주도립미술관이 주최한 '4·3 70주년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 전시는 제주 4·3, 광주 5·18, 하얼빈 731부대, 베트남 전쟁 등 국가 폭력에 의한 제노사이드를 조명했다. 박경훈은 제주도 원주민을 의미하는 '토민(土民)'의 삶을 표현한 판화 연작 40여 점을 선보였다.
2019년 박경훈이 준비위원장으로 개최한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EAPAP)에는 일본, 대만, 홍콩, 베트남 예술인들이 초청됐다. 같은 해 6월 박경훈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지역의 원로 작가 초대로 가진 개인전 《4·3정명(正名)》에 판화 20여 점을 전시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 본토 교두보인 오키나와에서 대규모 미군 희생자가 나오자 미국은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다.
"제주가 오키나와 비극을 재현할 뻔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함락 직후 제주 주민을 총동원한 '옥쇄(玉碎)' 작전을 짜고 있었다. 일본은 나가사키, 히로시마를 앞세워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나 전쟁 중 자국민을 대량 학살한 이중성을 보인다."
박경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된 EAPAP가 복원되기를 바란다. 그의 국제적 시각은 '제주민예총'과 '제주문화재단' 이사장 등 문화단체 행정가와 국제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했던 경험, 출판사를 경영하며 쌓은 인문학적 지식에서 우러나온다.
세계 최고 권위 갖게 된 카셀 도큐멘타
"제주만 섬이 아니다. 오랜 분단 고착화로 대한민국 전체가 섬이다. 미국 대 중국, 미국 대 러시아 간 극한적 대립으로 한반도의 전장화가 우려된다. 전쟁은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인 크고 작은 섬들에 가장 많은 피해를 가져온다. 섬들이 연계하고 연대해 대양과 대륙을 중재하는 게 우리가 생존하는 길이다. 지진 나기 전 새들의 급한 비상처럼 예술로 미래 생존의 위기의식을 일깨우고자 한다."
박경훈은 스스로 한 마리의 카나리아가 되어 무리의 선두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미술로 평화의 기운을 싹틔우고자 한다.
1955년 창설돼 5년마다 독일 중부 헤센주 카셀에서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는 동시대 미술의 풍향계로 유명하다. 나치 정권하 카셀역, 'ab Kassel!'(카셀을 떠나라!) 직인이 찍힌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치 수용소로 향했다. 독일 사회는 전후에 복구 및 경제 성장에 총력을 기울여 나치 정권 만행을 제대로 되돌아보지 않았다. 미술인들은 나치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 자각을 전위에서 독려했다. 창설 반세기에 이른 2022년 제15회 조직위원회는 '3W 없는 카셀 도큐멘타'를 설계했다. 백인(Being White), 서양 중심주의(Western), 세계적인 아티스트(World famous)에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는 미술제임을 입증했다.
2023년 4·3 미술제 30주년에 광주시립미술관이 《박경훈 : 4·3 기억 투쟁, 새김과 그림》 개인전을 열었다. 작가의 오랜 지인인 해양인문학자 주강현(69)은 SNS에 "거대한 크기의 잠수함 그림은 한반도의 남녘이자 태평양이 시작되는 바다의 수면에서 올라온 불길한 어떤 현실성을 상징한다"는 글을 남겼다.
박경훈은 동아시아 평화미술제 첫 단계로 글로벌 아트 웹진 창간과 역내 예술가들의 순회 전시를 제안한다. 4·3 사건은 감성적 글로벌 보편성을 갖고 있고 (섬)국가 간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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