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텐 프리'니까 건강하겠지"…당신은 마케팅에 속았다

김아름 2024. 6. 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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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글루텐 프리의 진실
락토프리와 달리 한국인 대상자 적어
건강식과도 무관…기업 마케팅 포인트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음식이 곧 약이 된다는 말입니다. 음식이 무슨 약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 음식은 어디어디에 좋다"는 설명이 잔뜩 붙어 있는 식당들이 있죠? 약식동원과 뜻하는 바가 같습니다. 좋은 음식으로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거죠.

요즘 말로 하면 '케어 푸드(Care Food)'나 '푸드테라피(FoodTherapy)'라고 할 수 있겠네요. 최근 식품업계에 불고 있는 비건 열풍이나 락토프리 우유, 단백질 강화 식품들도 넓게 보면 약식동원의 한 갈래입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맛을 위해 먹는 게 아닌 건강을 고려해 먹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들이죠. 

이런 식품들 중 어느새 우리 주변에 꽤 많이 보이게 된 제품 중 하나가 바로 '글루텐 프리' 제품입니다. 우유를 마시면 배탈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락토프리 우유,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뛰는 사람들을 위한 디카페인 커피와 같이 글루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나온 맞춤형 식품입니다. 

한 대형마트의 우유 진열대/사진=김지우 기자 zuzu@

주로 식품 기업들이 내놓는 가정간편식에서 글루텐 프리 제품이 많이 보이는데요. 콩으로 만든 면이나 두유로 만든 푸딩, 쌀과자 등이 주로 '글루텐 프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정부가 쌀 소비 촉진을 위해 기업에 가루쌀 사용을 권장, 글루텐 프리 식품이 늘면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글루텐 프리 제품이 알레르기 예방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쩐지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밀가루 음식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게 혹시 밀가루에 들어 있는 글루텐 때문일까요? 그럼 글루텐 프리 제품을 먹으면 소화가 더 잘 될까요. [생활의 발견]에서 글루텐 프리의 모든 것을 알아봅니다.

글루텐 왜 빼?

글루텐 프리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글루텐에 대해 설명해야겠죠. '글루텐(gluten)'은 밀과 보리 등의 곡물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일종입니다. 밀가루에 물을 붓고 반죽을 하면 반죽에 점성이 생기는 게 바로 글루텐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에도 풀(glue)을 의미하는 'glu'가 들어 있죠.

밀가루 반죽으로 튀김을 만들 때는 튀김옷이 재료에 착 달라붙는데 꿔바로우처럼 찹쌀 반죽으로 만들 때는 튀김옷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도 글루텐 유무에 따른 차이입니다. 쌀이나 찹쌀에는 글루텐이 없어 반죽을 해도 밀가루처럼 쫀쫀해지거나 늘어나지 않고 툭툭 끊어지죠. 밀가루면의 포기할 수 없는 식감도 다 이 글루텐에서 나옵니다.

사진=pexels

락토프리 우유는 유당을 섭취하면 배탈이 나는 유당불내증 환자들을 위해 유당을 제거한 우유죠. 디카페인 커피는 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는 카페인에 과반응해 심장이 빨리 뛰거나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을 위해 카페인을 제거한 커피구요.

하지만 글루텐 프리 식품은 주로 글루텐이 들어 있는 밀가루 등의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식품을 의미합니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만든 면이나 밀을 사용하지 않은 요리 등에 '글루텐 프리' 마크를 붙이죠. 글루텐 민감증이 있는 사람들, 글루텐을 섭취하면 장에 염증이 생기는 '셀리악병' 환자를 위서입니다.

글루텐 민감증 환자가 많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글루텐 프리 시장이 매우 크게 발달해 있습니다. '글루텐 프리=건강식'이라는 이미지도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글루텐 프리 식품을 찾는 서양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거죠.

글루텐에 대한 오해

그런데 적어도 한국에 오면 '글루텐 프리=건강'이라는 공식이 잘 먹히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엔 글루텐 민감증 환자가 많지 않습니다. 학계에 따르면 셀리악병을 일으키는 HLA-DQ2 유전자를 갖고 있는 서구인은 30~40%에 달하는데, 이 중 1~6%가 실제로 글루텐 섭취 후 증상을 보입니다.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 따르면 미국인 133명당 1명이 글루텐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인 중 HLA-DQ2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글루텐에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는 극히 드뭅니다. 셀리악병으로 밝혀진 환자는 단 한 명입니다. 반면 락토프리의 경우 한국인의 75%가 유당불내증이 있다고 합니다. 차이가 크죠. 적어도 글루텐 민감증 때문에 글루텐 프리 식품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글루텐 프리 식품이 상대적으로 더 건강한 식품일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에 가깝습니다. 글루텐이 들어 있는 밀가루를 대신하기 위해 쌀가루나 옥수수가루 등을 넣으면서 탄수화물 함량이 크게 올라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글루텐 프리 식품은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딱히 영양 밸런스나 건강에 더 신경을 쓴 식품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글루텐 프리 마크를 붙였지만 일반 밀가루 제품보다 칼로리와 당 함량이 높은 제품이 수두룩합니다.

글루텐 마케팅

하지만 기업들은 자사 제품들에 글루텐 프리를 내세우며 마치 글루텐 프리 제품이 더 몸에 좋은 것처럼 홍보하곤 합니다. 글루텐 프리와 함께 유기농·무항생제·고품질 등의 수식어를 함께 사용해 글루텐 프리라는 말을 더 건강하고 품질이 좋은 식품을 의미하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거죠.

실제로 최근 대상은 두유로 만든 '청정원 콩담백면'에 대해 "글루텐 프리 제품으로, 식이 조절이 필수인 당뇨환자에게 안성맞춤"이라고 알렸는데요. 사실 해당 제품이 당뇨환자에게 좋은 건 30㎉의 저칼로리와 당류가 없다는 점 때문이지 글루텐 프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롯데웰푸드의 글루텐 프리 브랜드 '더쌀로'/사진제공=롯데웰푸드

물론 반대로 글루텐 프리 제품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맛 이외에 쌀 소비 촉진, 농가 지원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보다 국산 쌀을 이용하는 글루텐 프리 제품이 낫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기업들의 글루텐 프리 마케팅은 건강 마케팅이라기보다는 '공포 마케팅'에 가깝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자극해 가격을 올리고 프리미엄 제품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한 전략이죠. 그 다음으로는 글루텐 프리 수요가 많은 미국·유럽으로의 수출을 위한 안배일 겁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우리가 밀가루 과자가 무서워서 쌀과자를 고를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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