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봤던 인천 송도 장독대…알고 보니[현장+]
세계 최대 규모 LNG 저장·생산 용량
LNG 수송선 매일 1~2대 접안해 하역
“사고·위협 대비해 이중으로 운영”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착륙할 때 창밖을 보면, 인천 송도국제도시 인근의 대규모 시설을 확인할 수 있다. 흡사 군용 벙커처럼 생겼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면 시설은 점점 작아져 마치 장독이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 같아 보인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검색해보지만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위성 지도로 바꾸면 위성 사진은 확인할 수 있다. 분명 비행기에서 본 게 맞는데 대체 뭘까. 그 궁금함이 최근 해결됐다. 이 시설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저장·생산하는 한국가스공사 인천 LNG 기지였다.
인천 기지는 국가중요시설에 해당해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이나 영상 촬영도 제한하고, 방문자는 개인정보 등 사전에 등록해야 출입할 수 있다. 가스공사는 지난 27일 산업통상자원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인천 기지의 문을 일시적으로 열었다.
기지 입구 앞에는 방호벽이 지그재그로 놓여 있어 차량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기지 방문에 앞서 가스과학관에서 대략적인 소개를 들었다. 가스과학관은 학생이나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장소로, 예약만 하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도시가스뿐 아니라 발전소, 산업단지 등에도 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공사의 국내 LNG 기지는 평택·인천·통영·삼척·제주 5곳에 있다. 인천 기지는 1996년 10월 첫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주로 인천과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 서쪽 지역에 공급되는 가스는 대부분 인천 기지에서 기화(생산)한 것이다. 지난해 1207만4000t을 생산해 국내 가스 생산의 33.2%를 담당했다.
인천 기지의 설비 규모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최대 수준이다. 탱크는 23개로, 총 155만5560t(348만㎘)을 저장할 수 있다. 시간당 6270t을 생산할 수 있는데, 생산량은 수요에 따라 정해진다. 역대 가장 수요가 많았던 2021년 1월8일에는 하루에만 9만4t을 생산했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LNG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액체로 수송하는 LNG가 아니라 대부분 파이프를 통해 수송되는 천연가스(PNG)를 쓴다.
인천 기지에는 3가지 종류의 탱크가 있었다. 탱크 바닥 아래 기둥을 받쳐 지면에서 띄운 고상식, 탱크 대부분이 지하에 묻혀 있는 지중식, 탱크 바닥이 지면과 붙어 있는 지상식이다. 지중식의 모습은 땅에 묻혀 있는 장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정성 등을 이유로 과거에는 고상식·지중식 탱크를 사용했지만, 기술 발달로 현재는 대부분 지상식으로 짓고 규모 6.5 지진도 견딜 수 있다고 가스공사 측은 설명했다. 탱크의 크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큰 지상식의 경우 높이만 아파트 25층에 해당하는 50m에 달했다.
기지의 핵심 역할은 해외에서 배로 들여오는 LNG를 저장하고, 필요한 만큼 기체로 바꿔 주 배관에 공급하는 것이다. 가스 자체는 냄새가 없어, 일명 ‘가스 냄새’로 통용되는 냄새를 첨가하는 것도 기지에서 하는 일이다.
인천 기지에는 접안이 가능한 부두 2곳이 자리한다. 1부두는 7만5000t급, 2부두는 12만7000t급 LNG 수송선이 정박해 하역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하루 1대, 가스 수요가 많은 겨울철에는 하루 2~3대가 인천 기지를 오간다.
이날 오후 2부두에서 하역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박해 있는 LNG 수송선인 ‘SM 이글호’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사빈 패스에서 실은 셰일 가스를 하역하고 있었다. 고형탁 SM 이글호 선장은 “파나마 운하를 거쳐 오면 30일이면 한국에 도착하는데, 최근 파나마 운하가 가물어 이용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며 “이번에 대서양 쪽으로 왔는데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수에즈 운하가 아닌 희망봉을 경유하다 보니 42일 걸렸다”고 말했다.
LNG 수송선에는 공 모양 탱크가 달린 모스형, 각진 사다리꼴 모양 탱크가 달린 멤브레인형이 있다. 멤브레인이 저장량에서 효율적이라 최근에는 멤브레인형으로만 주문한다고 했다. SM 이글호는 멤브레인형으로, 2017년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에서 만든 총 t수가 11만5700t인 선박이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마이너스 160도인 LNG가 이동하는 설비(암·Arm)는 하얀 성에, 얼음덩어리가 뒤덮고 있었다. 바람에 얼음덩어리가 날아가도 금세 새로운 얼음덩어리가 암을 휘감았다. 날아가는 얼음덩어리는 공중에서 조각나 눈처럼 주변에 휘날렸다.
저장 탱크 속 LNG를 기화하는 방식은 해수식, 연소식 두 가지였다. 해수식은 밀푀유나베처럼 가스관을 얇게 세워두고 위에서 바닷물을 부어 데우는 방식이고, 연소식은 가스를 태운 열로 데우는 방식이다. 최선환 인천기지 설비운영1부장은 “해수 온도가 5도 이상만 되면 해수식을 이용할 수 있다”며 “경제성이 좋아 주로 해수식을 사용하는데, 겨울에는 해수가 5도 밑으로 떨어지고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연소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가스 공급의 33%, 수도권만으로는 65%를 담당하는 인천 기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정성이다. 고장이나 사고, 위협에 최대한 대비하고 있다고 가스공사 측은 설명했다. 김영길 인천기지본부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스 공급이 중단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탱크나 전력 설비 모두 서로 백업할 수 있도록 나눠서 운영하고 있다”며 “드론 위협에도 대응하기 위해 2021년 12월 전파 교란으로 드론을 무력화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고 말했다.
인천 |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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