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웃음은 불가항력! 《핸섬가이즈》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4. 6. 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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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급 감성’, 탁월한 연출과 연기 만나 ‘A급 재미’로 출력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극장에서 웃다가 울어본 적이 언제인가. 웃기는 재미와 울리는 감동을 다 갖춘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났던 기억. 그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 일인 것 같다면, 이 강렬한 2인조의 활약을 통해 웃음의 경험치를 업데이트할 때가 됐다.

《핸섬가이즈》는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 콤비가 선보이는 활력 넘치는 코미디다. 슬래셔 무비, 슬랩스틱 코미디, 오컬트까지 온갖 장르가 믹스 테이프처럼 한데 모인 가운데 공포와 웃음 사이를 사정없이 오가는 영화라면 그나마 일단 근접한 설명일까. B무비를 낭창하게 넘어서는 C급 감성을 소유했지만, 그 결과물이 너무도 기막히기에 A무비라 부르고 싶은 코미디다. 대작 한국 영화가 여러 편 격돌하는 여름 극장가에 범상치 않은 다크호스가 나타났다.

인상만으로는 도저히 마땅한 적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곱디고운 마음씨에 그렇지 못한 생김새. 재필과 상구는 어딜 가나 '강력범죄자 몽타주'로 오해받지만, 실은 순하고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시민이다. 형제 같은 사이의 두 남자, 어쩐지 꽤 아련한 눈빛을 장착한 그들의 반려견 봉구는 꿈에 그리던 전원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 온다. 사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실제 매물에 좌절하던 것도 잠시, 재필과 상구는 다 허물어져 가는 폐가를 예쁘게 단장하려는 꿈에 부푼다.

ⓒNEW 제공

짜릿한 장르 롤러코스터

이들은 이사 첫날부터 근처 펜션으로 놀러 온 대학생 무리와 사소한 시비가 붙는다. 마트에서 넘어진 미나(공승연)를 일으켜주려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남들 눈에는 불순한 의도를 지닌 불량배의 행동처럼 보였다는 게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그날 밤에 일어난다. 재필과 상구는 일행과 잠시 떨어진 사이에 홀로 물에 빠져 정신을 잃은 미나를 구해 집에 데려와 정성껏 보살핀다. 그러나 미나 친구들의 눈에는 그들이 납치범이자 극악한 연쇄 살인마로 보일 뿐이다. 재필과 상구가 미나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사이, 이 집에 몰래 잠입한 학생들은 자꾸만 알아서(?) 죽어나간다. 여기에 정점을 찍는 것은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있던 염소 악령 '바포메트'가 깨어나는 사건이다. 하필이면 재필과 상구의 소중한 새집의 지하실에서.

이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한데 융화될까? 놀랍게도 《핸섬가이즈》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원작은 캐나다의 코믹 호러 《터커 & 데일 Vs 이블》(2010). 공포 영화의 익숙한 장치들을 가져와 재조립하는 진행 방식과 죄 없이 사건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주인공 캐릭터의 줄기는 그대로 가져와 이식했다. 미국에서 '힐빌리'라 불리는 중부 농민들을 향한 편견을 꼬집은 원작의 핵심은 외모 때문에 억울하게 오해받는 이들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원작에는 없던 오컬트 장치가 추가됐다는 점. 오래전 한 외국인 사제가 구마 의식을 통해 봉인한 악령이 다시 깨어난다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101분간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는 장르 롤러코스터 그 자체가 된다. 안전한 현지화를 모색할 뿐 독자적인 매력을 더하는 데는 실패하는 리메이크의 일반적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데서 우선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험상궂은 외모의 주인공들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다소 뻔뻔한 제목에서부터 짐작 가능하듯, 《핸섬가이즈》에 애매한 타협이란 없다. 이 영화는 적당한 웃음과 감동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익숙한 공식이 아니라 낯설더라도 일단 돌진하는 에너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설득해 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 곳곳에서는 《총알 탄 사나이》 시리즈로 대변되는 레슬리 닐슨식 코미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를 주름잡았던 주성치표 코미디처럼 언뜻 과장됐지만 결코 밉지 않은 폭소를 동반하는 작품들의 향수가 물씬하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DNA를 찾자면 《조용한 가족》(1998), 《시실리 2km》(2004) 등의 영화가 떠오른다. 무리하게 작품의 외연만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똘똘한 아이디어로 씨앗을 심어 장르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피워낸 결과물. 《핸섬가이즈》의 남다른 패기가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영화는 일차원적 외모 비하를 일삼는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서로와 타인에게 더없이 예의를 갖추며 사는 무해한 두 남자, 재필과 상구의 매력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데 더 골몰한다. 겉모습은 우락부락한 중년 남자지만 귀한 물건은 주인에게 어떻게든 돌려주려 하고, 젊은 여성 앞에서는 말을 가려 할 줄 아는 두 주인공의 '반전 매력'은 온몸을 내던지다시피 한 배우 이성민과 이희준의 탁월한 연기로 완성됐다. 그간 《마약왕》(2018), 《남산의 부장들》(2020) 등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했던 두 사람이 이제야 코미디로 호흡을 맞춘 게 아까울 정도다. 영혼을 갈아끼운 듯한 이들의 열연은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진양철 회장이나,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O난감》의 살인마 송촌의 모습을 온데간데없이 지운다.

영화 《핸섬가이즈》의 한 장면 ⓒNEW 제공

예측불허, 점입가경의 코미디

코미디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타이밍의 기술이다. 이 영화는 그 점에서 역시 좋은 감각을 발휘한다. 감칠맛 넘치는 대사들이 재미를 돋우는 사이에 예측불허, 점입가경 같은 단어를 모조리 동원해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은 모두 각본의 치밀한 계산하에 펼쳐진다. 뿌려놓은 아이디어를 전부 거두는 수습 과정이 훌륭하다는 얘기다. 낡은 기둥, 나무 밑동, 고장 난 기계까지 허투루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정확한 타율을 아는 영리한 각본이 있었기에 배우들의 혼신의 열연 또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잔혹한 장면이 적지 않지만, 슬래셔 무비 특유의 장르적 허용으로 바라본다면 어디까지나 납득 가능한 수준이다. 《베스트셀러》(2010), 《티끌모아 로맨스》(2011) 등 한국 영화 현장에서 오랜 시간 조감독으로 다양한 경력을 쌓았던 남동협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준비된 신인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출연한 모든 배우는 한동안 그들의 대표작으로 이 영화를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재필과 상구 사이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 미나 역의 공승연은 물론, 미나의 친구들로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낭비되는 장면 하나 없이 인상적 방점을 찍고 퇴장한다. 《범죄도시》 시리즈 장이수 역으로 익숙한 박지환은 이 영화가 공개된 이후에는 마을 경찰 최 소장으로 더 강렬하게 기억될 것 같다. 마이클 잭슨과 좀비 사이 그 어딘가의 격렬한 몸짓이 압권. 어리바리한 남 순경 역의 이규형 역시 짧지만 확실한 웃음을 책임진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왁자지껄 극장에 몰려가 마음껏 폭소를 터뜨리며 웃고픈 여름밤에 제격인 영화다. 부디 황당함은 황당함대로 마음껏 즐기시라는 당부를 미리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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