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명장, 빵집 명인… 도대체 뭐가 진짜인가요? [視리즈]
빵집 명인 비틀어진 열전➋
국내에 16명뿐인 빵집 명장
명인·달인은 민간에서 주는데
돈 받고 간판 내주기에 급급
명장 사칭 엄연히 불법이나
과태료 문 적 한번도 없어
# 요즘 '한국 명인' '대한민국 대표' 등의 간판을 내걸고 제빵 실력을 뽐내는 빵집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른바 '명인 빵집'입니다.
# 하지만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제과‧제빵 분야의 '명장'은 16명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단체에서 저마다의 기준으로 지급한 타이틀입니다. 명장·명인·달인 등의 용어가 교묘하게 혼용되고 있다는 건데,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소비자는 거의 없습니다.
# 문제는 현재로선 이런 상황을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관련법이 있긴 하지만 적용하는 게 쉽지 않아 몇년째 행정조치 수준에서 그치고 있습니다. 제빵업계가 '명인 마케팅'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빵집 명인 비틀어진 열전' 2편입니다.
우리는 視리즈 '빵집 명인 비틀어진 열전' 첫번째 편에서 제빵 업계에서 쓰이는 '명장'과 '명인'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살펴봤습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타이틀은 '대한민국명장'입니다. 매년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해서인지, 제과·제빵 분야의 명장은 16명뿐입니다.
명인, 대한민국 대표 등 다른 타이틀은 모두 민간단체에서 지급하는 겁니다. 회원제로 운영하는 사단법인 단체들이 자체적인 심사 기준을 거쳐 명인을 뽑는데, 단체마다 선정 기준이 다른데다 그 기준이 모호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돈을 받고 명인 타이틀을 내주고 있어 '명인 마케팅'이란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문제는 평범한 소비자가 이런 호칭의 옥석을 가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점입니다. 민간단체가 지급한 명패엔 태극기가 그려져 있거나 대통령실을 연상케 하는 봉황으로 장식해놓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국가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호칭을 부여한 것으로 혼동할 여지가 큽니다.
법적 테두리가 있긴 합니다만, 무분별한 호칭 사용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숙련기술장려법 제4장 제26조에 따르면, 대한민국명장이 아닌 자가 대한민국명장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명장과 명인이 일반 명사에 해당해 유사 명칭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행여 적발한다 하더라도 행정조치 선에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일례로,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아 대한민국명장 제도를 운영해 온 대한민국명장회는 지난 3월 11일 한 민원을 접수했습니다. 3월 10일 방영한 한 공영방송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명장이 아닌 인물을 명장 칭호로 묘사했다는 게 민원의 내용이었죠.
대한민국명장회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방송 내용을 정정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제작진에 내용증명을 보내 대한민국명장이라고 표기한 자막을 삭제해 영상을 재업로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출연자에겐 가게 목판에 표기한 '대한민국명장'을 제거하라는 행정조치를 내렸습니다. 대한민국명장회 관계자는 "과태료는 고용노동부와 연계하고 법률 자문을 구해야 하는 등 복잡한 요소가 많아 부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정부 외 단체가 준 명장·명인 칭호는 모두 믿어선 안 되는 걸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인천시가 지난 6월 3일 접수를 시작한 '인천광역시명장'의 사례를 살펴보시죠. 37개 분야 85개 직종에 1명씩 수여하는 이 호칭은 인천 산업현장에서 15년 이상 종사하고, 숙련기술 보유가 높고 성과가 우수하며, 대한민국 명장 경력이 없는 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군수·구청장, 관내 기업체의 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 등 여러 단체의 추천서를 받아야 하고, 서류심사부터 현장실사, 면접심사까지 거치는 등 선정 과정도 깐깐하게 진행합니다.
그렇게 인천광역시명장으로 뽑히면 인증서와 인증패를 수여하고 인천시청역에 위치한 '명장의 전당'에 인물 부조浮彫(모양)를 등재합니다. 또 기술장려금으로 5년에 걸쳐 매년 200만원씩 1000만원도 지급합니다. 이는 명인 타이틀을 얻는 데만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 민간단체와 다른 부분입니다.
인천에서 10년 넘게 빵집을 운영한 한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간단체가 단순히 가게 홍보를 위한 메달이나 명패만 주고 끝내선 안 된다. 해당 가게가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단체에서 노력을 해줘야 한다. 이런 명인·명장 제도의 본질을 흐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 여기까지가 전국의 수많은 '명인 빵집'을 둘러싼 현주소입니다. 한 우물을 판 장인의 실력을 드높여야 할 명인이란 칭호는 어느샌가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해 돈을 주고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둔다면 소비자의 눈을 흐리게 만들고 신뢰감을 떨어뜨려 궁극적으론 전체 산업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번쯤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소비자가 없으면 명인이든 명장이든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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