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니 절교니 하는 것들 졸업한 줄”…엄마들의 세계선 비일비재, 나 어쩌죠?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4. 6. 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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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10대. 한창 친구가 세상의 중심이던 때가 있다. 친구가 가족보다 소중하고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온 세상이 무너져버리는 것 같던 때다. 중고등학생, 우리시절의 속된말로 하면 ‘중삐리, 고삐리 시절’이 그랬다. 여전히 친구는 나의 인생의 중요한 동반자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인디언의 말처럼 친구의 존재는 어린시절이든 다 커버린 지금이든 여전히 큰 의지와 힘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사람들을 알아가며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좋은 활력소가 된다.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더 성숙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더 조심할 줄 알고, 상대방을 헤아릴 줄도 알고, 못할 말을 삼킬줄도 아는, 참으로 이상적인 어른스러운 관계를 만들어갈 줄 알았다.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가 되면 아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서라도 더더욱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는 모습을 아이들에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꽤 오랜 사회 생활을 거치고 새로 진입하게 된 ‘엄마들의 세상’은 생각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풍노도의 ‘중삐리’ 시절 같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나 오늘 A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 눌렀다고 다른 엄마들한테 엄청 지적 받았어.”

“오늘 절교 문자를 받았어요. 더이상 저를 보지 않고 싶다고 관계를 끊자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된 동료와 친구들이 토로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30대 후반, 혹은 40대에 접어든 나이에 일어나는 일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왕따니, 절교니 하는 것들은 10대를 벗어나며 졸업한 것이 아니었나.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꽤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지만, 적절한 거리두기와 예의라는 것이 존재했다. 잘 맞는 사람들과는 오랫동안 좋은 인연을 이어가며 학창시절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혹은 이를 뛰어넘을 만큼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반면 결이 다른 사람들과는 업무적인 관계 이상의 관계를 맺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거리를 뒀다. 때문에 절교라는 단어는 크게 들어본 경우가 근 20년간 없다시피했는데, 엄마들의 관계 속에서는 이제는 낯설어졌다고 생각한 단어나 행동들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직간접적으로 지나치게 감정적인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싶을 정도로 혼란이 왔다. 하나 더 드는 생각은 ‘나는 이런 관계 속에서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가’였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뒤졌다. ‘엄마들만 아는 세계’라는 책에서 일부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았다. 이 책의 저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생각과느낌 의원 원장은 엄마들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게 아니라 아이들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특히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압박감이 드는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아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면 엄마의 성향 차이 때문에 대놓고 멀어지기도 쉽지 않다. 그는 아이에게 친구는 중요하기 때문에 엄마는 억지로 참으며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기도 한다고 했다.

정 원장은 스트레스를 참거나 ‘나와 참 많이 다른 그 엄마를 어떻게 할거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고 조언한다. ‘내가 왜 나와 다른 저 엄마를 그렇게 불편해 할까’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는 ‘저 사람의 행동에 대해 나는 왜 이렇게 반응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가지다보면, 내 마음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관계 자체에 회의가 들거나, 아이를 돌보는 데 지장이 있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고민은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고개가 끄덕여졌다.‘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교집합 하나로 묶인 관계, 결이 다르면 자연히 멀어질 수 있는 다른 집단과 달리 ‘아이’라는 교집합이 쉽게 관계를 끊지 못하게 만든다. 여기에 엄마들은 때로는 자신보다 아이에게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성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감정이 조금 더 쉽게 들끓고 이로 인한 갈등도 더 많이 발생한다고, 그렇게 이해하며 제 3자의 시선으로 이 사회를 지켜보기로 했다.

자, 그렇다면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봐야할 것 같다. 사실 나는 워킹맘이기에 상대적으로 엄마들의 사회에서는 ‘아웃사이더’인 편이다. 때문에 엄마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는 갈등의 당사자가 되기보다는 전해듣거나 간접 경험을 하는 수준에 가깝다. 그럼에도 엄마사회의 햇병아리인 나는 ‘관계에서 앞으로 내가 가지고 가야할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된다. 언젠가 내가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되면 어떻게 대응해야할까에 대한 두려움도 앞선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내게 많은 육아 선배들은 ‘초연해지라’는 조언을 했다. 엄마들의 관계에 진입하는 이유는 크게 ‘아이의 교우관계를 위해서’와 ‘아이 교육 등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인데, 이 둘을 꼭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찾지 말라는 말이다. 아이들의 교우관계를 엄마들이 만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과잉육아라는 그들의 조언에 일견 동의를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의 오랜 친구들 중에 ‘엄마가 만들어준 친구’는 없다. 때로 ‘엄마친구딸’(엄친딸), ‘엄마친구아들’(엄친아)와 어울린 적이 있지만 그들의 이름조차 가물하다. 마음의 결이 맞는 친구는 누군가 정해줘서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좋았던 친구와의 관계가 소홀해지기도 하고, 역으로 데면데면 했던 친구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깨달아왔던 것 같다.

교육에 대한 부분은 엄마들 보다는 오히려 남편과 논의하며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어느정도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겠지만, 오히려 모임에서 정보를 얻으려다보면 나와 남의 아이들이 비교의 대상에 오르고, 교육관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긴다. 나의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가장 강력한 육아동지는 ‘남편’이다. 다행히 나의 남편은 그 역할을 아주 성실히 해주고 있고, 바람직한 교육·육아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내 준다. 아이의 교육에 무관심한, 혹은 너무나도 바쁜 남편을 뒀다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면 감히 내가 말을 보탤 수 있는 주제가 못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되고 싶은 엄마, 내가 내 아이를 키우고 싶은 방법에 대해 충분히 혼자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라는 책을 쓴 강빈맘은 인터뷰를 통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 소모적인 모임에는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들의 모임도 좋지만 정보는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얻는게 더 편하다고 조언한다.

여러 책과 주변 육아 선배들이 주는 조언들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엄마들의 모임을 갖지 말라’거나 ‘관계를 맺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계 자체에 집착을 하지 말라는 것. 엄마들과의 세상이 내 아이에게 너무나도 중요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처럼 ‘엄마들의 관계’에서 두려움을 갖게 된 햇병아리 엄마들에게 한 소설에서 등장인물을 묘사한 구절을 공유하고 싶다.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에 나오는 ‘이도라’라는 아이에 대한 설명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아이를 이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메모해 둔 것인데 이제와서 보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되고싶었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저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아이’, 이런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나도 도라처럼 ‘그저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관계 최상의 난도라는 ‘엄마들의 관계’속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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