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토크쇼 흥행의 비결은? [콘텐츠의 순간들]
많은 말에 시달릴수록 좋은 대화에 대한 갈증은 커진다. 그래서 나는 꽤 괜찮았던 하루를 기억하고 싶은 밤에도, 심란해서 잠에 잘 들지 못하는 밤에도 언제나 유튜브를 켜서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를 시청한다. 제목이 서정적인 이 시리즈는 코미디언, 배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문상훈이 유명인을 초청해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다. 하지만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는 ‘쇼’라는 단어가 시원하게 어울리는 콘텐츠는 아니다.
이 ‘토크’는 아늑한 조명이 켜진 작은 거실에서 수많은 ‘부캐’들을 숨긴 호스트 문상훈의 수줍은 얼굴로 시작한다. 하이라이트를 미리 요약해서 보여주거나 요란하게 게스트를 소개하는 시간도 없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은 문상훈과 게스트의 어색한 인사가 오프닝의 전부다. 마치 친구 둘이서 찍은 브이로그를 보는 것처럼 편안한 웃음이 계속된다. ‘본캐’ 문상훈의 모습이 사실은 치밀하게 설계된 또 다른 ‘부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피소드의 제목이 ‘오지 않는 쌀국수를 기다리며’ ‘오지 않는 김치찌개를 기다리며’와 같은 형식인 이유는 20분 남짓 되는 영상 속 대화가 ‘배달 음식이 오기 전까지’라는 시간적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인데, 흔히 ‘본론’이 나오기 힘든 이 ‘식전 대화’라는 포맷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토크’의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요리를 기다리는 시간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문상훈은 그 분위기를 이용해 ‘잘 모르는 명사’에게 편지를 건네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바로 그때부터 호스트 문상훈의 진짜 ‘쇼’가 시작된다. “보통 남겨진 편이세요? 떠나는 편이세요?” “말이 더 좋아요? 글이 더 좋아요?” “세상이 너무 빠른데 중심을 어떻게 잡고 계시나요?” 그는 ‘스몰토크’와 비교해 감정의 닻을 깊이 내려야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게스트 눈앞에 내려놓고, 태연한 척하는 대신 ‘이런 질문이 어색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아’ 하는 얼굴로 게스트의 답변을 기다린다. 자신의 길티 플레저, 좋아하는 음악, 산책 코스 등을 답하던 게스트들은 그의 호흡에 동화되어 편지에 답장을 하듯 신중하게 대답하는데, 그때 그들은 하나같이 벅찬 표정을 짓는다. 아이유도, 송은이도, 장기하도, 이슬아도. 비로소 자신들이 그려온 궤적에 걸맞은 질문을 만난 것처럼.
‘전성시대’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최근 인기 있는 유튜브의 판도를 보면 다른 말이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2023년 유튜브 연말 결산에서 ‘최고 인기 동영상’을 차지한 것은 이영지의 ‘취중’ 토크쇼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었다. 같은 해 ‘피식대학’의 〈피식쇼〉는 유튜브 콘텐츠 최초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가수 조현아의 〈조현아의 목요일 밤〉, 댄서 가비의 〈대세갑이주〉, 방송인 덱스의 〈냉터뷰〉 등은 앞선 두 작품처럼 기성 미디어에 정착할 기회가 없었던 새로운 얼굴들을 유튜브를 통해 대중에게 정착시켰다. 아이유의 〈팔레트〉, BTS 슈가의 〈슈취타〉, 김재중의 〈재친구〉, 혜리의 〈혤’s Club〉 등은 유튜브 케이팝 문화에 토크 콘텐츠를 더했다.
유재석의 유튜브 〈핑계고〉에 출연한 이정재는 허름한 촬영장을 한참 동안 신기하게 두리번거리다 “이렇게도 방송이 가능하군요”라고 말한다. 텔레비전 시대에 활동한 연예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유튜브 토크쇼는 텔레비전 방송과 비교해 인력과 자본을 최소화한 ‘가성비’ 제작 방식을 취한다. 토크쇼 포맷은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 다른 어떤 요소보다 출연하는 게스트의 이름값이 중요하기에 대부분의 쇼가 캐스팅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베테랑 코미디언들은 지체없이 유튜브로 가 변화를 받아들였다. 이경규(〈르크크〉), 유재석(〈핑계고〉), 박명수(〈할명수〉), 신동엽(〈짠한형〉), 김대희(〈밥묵자〉), 탁재훈(〈노빠꾸 탁재훈〉) 등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페르소나를 유튜브에 그대로 가져와 본인들의 강점을 살린 토크쇼를 론칭했고, 특유의 캐릭터로 환경의 변화에서 발생하는 위화감을 지웠다.
대중은 텔레비전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 인기 코미디 유튜버는 〈라디오스타〉(MBC)에 출연해 “제가 〈라디오스타〉에도 나오고 진짜 출세했네요”라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코미디언도 “〈유퀴즈〉에 나가는 날까지 파이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음에도 이들이 여전히 텔레비전 토크쇼를 하나의 목표로 삼는 이유는 〈무릎팍도사〉와 〈힐링캠프〉처럼 게스트에게 절대적 권위를 실어주던 텔레비전 토크쇼의 영향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은 이제 텔레비전 토크쇼의 방식을 예전만큼 신뢰하지 않는다. 강호동과 이승기가 12년 만에 뭉친 〈강심장 리그〉는 예상만큼의 호응을 이끌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유퀴즈 온 더 블럭〉을 두고도 초창기 포맷인 길거리 시민 인터뷰를 그리워하는 시청자 의견이 적지 않다. 텔레비전 토크쇼는 출연자와 시청자 간의 거리를 벌려 스타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익숙한 매체다. 출연자와 시청자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소재와 표현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는 유튜브 토크쇼와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의 방식이 토크쇼에 미치는 영향은 일시적이다. 대중은 토크쇼에 적응할수록 호스트 특유의 개성과 역량에 집중한다. 회차가 늘어날수록 게스트의 캐릭터나 솔직한 답변보다 질문자의 태도와 발화가 더 중요해진다. 텔레비전에서 맹활약했던 일부 방송인들의 유튜브 토크쇼가 고루하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호스트가 여전히 자신에게 익숙한 화법에 의존해 질문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장도연의 〈살롱드립〉, 정재형의 〈요정재형〉, 문상훈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등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장점을 ‘선을 넘어도 되는 것’에 한정하지 않는다. 호스트가 자신의 질문을 점검하고, 그 폭을 넓혀가려는 시도야말로 ‘뜨는’ 유튜브 토크쇼의 원동력이다.
‘나’로만 사는 것은 재미없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나의 경계를 궁금해하고, 내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타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이 토크쇼를 보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성취와 성공을 조명하는 것만으로 귀결되는 대화에서 그 마음을 충족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어지러운 토크쇼 전성시대에 누구나 혹할 만한 이야기를 추궁하는 호스트보다, 게스트의 ‘길티 플레저’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호스트를 지지한다. “긍정적인 생각은 글로 쓰고, 부정적인 생각은 말로 한다”는 문상훈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를 본다. 다 본 뒤에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놓는다. 좀 더 형편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줄 수 있는 이상한 호스트를 기다리기 위해서.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